1. 난 전주든 부안이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할 수 있다. 내가 살 집을 내 맘대로 계약하고 직업도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렇듯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기본권이다.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정치적 기본권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지만 범법자,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친 자는 제한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범법자가 아닌데도 교사는 정치적 기본권을 누리지 못한다.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이다.
2. 며칠 전 교원단체들이 주관한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회복을 위한 포럼’에 다녀왔다. 교총, 전교조, 교사노조에 실천교사, 혁신교육네트워크 등 전북의 주요 교원단체가 손을 잡고 한목소리를 냈다.
“교사에게 정치활동, 선거운동, 선거 출마를 할 정치적 권리를 달라”
한마디로 일반 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교사에게도 허하라는 주장이다. 대학 교수는 온갖 정치활동을 제한 없이 하는데 교사는 안 된다? 그 차별이 어색하다.
교사가 정치기본권을 가지려면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안은 이미 발의된 상태인데 잠자고 있단다. 교원들의 정치활동을 곱지 않게 보는 여론 때문이다. 교원의 정치활동이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 성향을 주입하거나 강요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3. 정치는 시끄럽다. 생활 속에서 정치를 화제로 올리면 시끄러워진다. 오랜 친구, 동창 단톡방에서도 정치 이슈가 올라오면 탈퇴자가 속출한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정치’인가? 원자력 발전을 확장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새만금 개발인가, 갯벌 복원인가? 최저임금은 얼마여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이슈들은 대부분 정치 이슈가 된다, 정치가 바로 삶이다. 교육은 배움을 삶 속에서 구현하도록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니 교육은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다.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 민주시민, 나아가 세계시민으로 키우는 것인데 교실에서 어찌 정치를 외면할 것인가?
4. 교사들이 교실에서 정치적 사안을 어떻게 다뤄야할지에 대해 일찍이 독일에서 깊은 논의가 있었다. 이념 갈등이 심각했던 1976년, 진보 보수 교육학자, 정치가, 연구자들이 보이텔스바흐에서 모여 논쟁적인 정치 주제를 다룰 때의 세 가지 원칙에 대해 합의했는데 이것이 민주시민 정치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첫째, 강압, 교화 금지의 원칙이다. 교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들에게 특정한 견해를 주입하거나 감화시켜 그들이 독립적인 의견을 갖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된다.
둘째, 논쟁성 유지의 원칙이다.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교실에 가져오되 다양한 논쟁점이 수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학생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강화이다. 학생이 정치 사안을 분석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독일은 교사들에게 정치권을 주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정치교육의 헌법으로 삼아 민주시민을 길러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교육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수준을 발전시키는게 정치적 편향성 우려보다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정치적 중립’은 환상일 뿐이다. 어떤 정치적 견해도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고 중립을 지키려 애쓴다 해도 작은 교화를 막을 수는 없다. 중립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학생이 교사에게. 서로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면 일방적 주입을 막을 수 있다. 교사는 정치 백치가 아니라 정치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한긍수 전라북도교육청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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