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전주대사습은 스물 아홉 살 젊은 소리꾼을 명창의 반열에 올렸다. 소리판의 주목을 받던 소리꾼 장문희였다. 대사습 도전은 처음. 기쁨도 그만큼 컸을 법하지만, 단박에 명창이 된 제자에게 그의 스승은 "못해도 두세 번은 떨어져 봐야 허는디 암만 생각해도 너무 빨리 되어 버렸다"며 이른 등용을 걱정했다.
첫 도전으로 명창이 된 제자가 기쁨에만 들뜰까 우려하며 더 큰 가르침을 안겨준 스승. 이일주 명창이다. 그는 줄타기 고수로, 소리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날치의 후손이다. 이날치는 서편제의 대가다. 그의 아버지 이기중 또한 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렸으니 집안 내력으로 치자면 서편제 소리를 대물림했어야지만 그는 동초제 소리로 판소리 대중화를 이끌었다.
첫 스승은 이기중이다.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소리 공부하기 싫어하는 그를 엄하게 가르쳤다. 소리꾼으로 이름을 얻은 후에도 당대의 명창 박초월 김소희를 찾아다니며 토막소리를 소리를 배웠고, 후에는 동초제 소리를 온전히 계승한 오정숙 명창의 제자가 되어 동초제 소리를 받았다.
그가 이어낸 동초제 판소리는 전북지역 판소리 맥을 이어오는 기둥이다. 창극에 열정을 쏟았던 동초 김연수가 말년에 동편제의 우람함과 서편제의 애절하고 아련한 특성에 연극적 요소를 담아 새로 짠 판제다. 동편제나 서편제의 대목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 색채나 맛이 새롭다는 평을 받는다. 동초제는 여러 바디 중에서도 다섯 바탕이 모두 전해지는 유일한 바디다. 그만큼 의미가 크다.
판소리에서 최고로 치는 소리는 ‘높고 단단하고 제대로 쉰 치열한 소리’다. 판소리 연구가 최동현 교수는 여기에 거친 맛과 부드러운 맛, 슬픔과 너그러움, 그리고 깊은 그늘을 표현해내는 좋은 목까지 갖춘 소리꾼으로 이일주를 꼽았다.
뱃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통성과 구성 있는 목으로 소리판을 아우르던 그는 단단하고 힘차고 높고 거친 소리가 만들어내는 치열한 소리로 절정을 구사했다. 극적 요소가 특징인 동초제 소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빼어난 음악성 덕분이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해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던 그는 치열해야만 소리 길을 갈 수 있다는 신념을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러니 제자가 되기도 어렵고 소리 한 대목 배우는데도 고단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의 문하에는 소리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뒤를 이었다. 오늘날 동초제 소리가 더 넓고 힘있게 맥을 이을 수 있게 된 바탕이다.
이일주 명창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치열하고 힘 있는 동초제 판소리로 대중들을 이끌었던 생애. 고인에게 감사하며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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