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정치인의 용기와 비선실세

image
일러스트/정윤성

암울했던 1980년대 5공시절. 정치권에는 심심치 않게 실세라는 말이 유행했다. 정치규제에 묶여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김대중, 김영삼 등 소위 양김씨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민우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한민주당 지도부는 가슴에 배지를 달고 있고 명패도 있지만 이들은 허세에 불과했고, 당의 실질적 오너는 민추협때부터 함께 꾸려온 동교동과 상도동 등 양김씨였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실세를 인정하지 않고 허세와 대화를 해왔는데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양김씨가 현실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왜 실세회담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 어떤 때는 실세와의 담판이 필요하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외교문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실세회담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어느사회에든 소위 비선실세(秘線實勢)가 암약하기 마련이다.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비밀리에 관계를 맺어 실체가 드러나지 않게 권력이나 세력을 행사하는 배후 인물을 의미하는데 비선실세의 준동 여부는 그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임엔 분명하다. 2000년 12월 청와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정동영 의원은 DJ의 가신그룹 좌장이자 최고 실세인 권노갑 상임고문을 향해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권력역학상 구상유취한 철없는 행동처럼 보였으나 이후 권노갑은 퇴진했고, 정동영은 단박에 집권당 대표와 대선후보로 등장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행동의 옳고 그름은 훗날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만 일개 재선의원이 정풍운동의 한 중심에 서면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만해도 정동영은 패기만만한 용기있는 정치인이었다. 

지난 13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은 "주요결정은 최고위원회가 아닌 당내 5인회가 다 한다"고 발언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과 관련해 "정말 힘들었다. 지옥을 경험한 느낌으로 오(5)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는 오징어, 오뎅 등 오(五)자가 들어간 음식도 안 먹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당 지도부가 이용호 의원 발언을 크게 불편해하자 자신의 언급 내용을 실언 정도로 스스로 격하시킨 것이다. 앞서 지난 2일 이 의원은 전국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5인회'발언은  '잘못 선택한 어휘였다'며 공개사과했다.   '5인회'논란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으나 지금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선실세가 과연 누구냐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집권여당에 비선실세가 없다고 자신의 말을 취소한 이용호 의원은 과연 단순히 실언을 한 것일까, 아니면 거대한 권력에 맞서기엔 정치적 용기가 부족했던 것일까. 중국 후한(後漢) 말기, 어린 황제를 조종해 부패한 정치를 행한 환관 집단 10상시가 있었다. 간신이자 탐관오리의 대명사인데 머지않아 멸문지화를 당한것은 물론, 나라가 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어느 시대건, 어느 곳이건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비선실세가 있게 마련이다. 이를 바로잡는게 지도자의 숙명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위병기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