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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와 문화유산 보호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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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히 주목을 받은 전시가 있다. 한지 조형작가 전광영의 <재창조된 시간들>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와 국가관의 전시로 이루어지지만 같은 기간 동안 세계 각국의 수백 명 작가가 별개의 개인전을 연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들 중 소수의 작가를 선정해 비엔날레의 엠블럼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른바 비엔날레가 인정하는 공식 병행 전시다.

지난해에는 230여 명이 개인전을 열었다. 비엔날레가 병행 전시로 선정한 작가는 그중 20여 명, 생존 작가는 전광영을 포함한 4명이었다. 전광영은 90년대 중반부터 한지를 소재로 한 독특한 회화 방식의 연작 시리즈로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성공적으로 현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전시에서도 각국의 전문가들과 관람객을 불러들인 것은 한지를 활용한 부조와 설치작품이었다. 한지를 널리 알리는 통로가 된 그의 전시와 더불어 한지의 가치를 주목하게 한 작업이 또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의 실험적 건축물 <한지 하우스>. 스테파노는 전광영의 전시장 앞에 한지로 싼 종이집을 지어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이끌었다.

한지가 현대 미술 작업의 소재로 활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인사동에는 한지를 구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외국 작가들이 뒤를 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주문 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반가운 것은 외국 작가들이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보다 한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지의 쓰임은 미술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추세다. 재료로서의 독창성,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한지는 우리보다 앞서 종이를 발명한 중국으로부터 제작 기술을 도입해 만든 전통 종이지만 재료나 기법은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와 다르다. 품질이 우수하고 수명도 선지나 화지보다 긴 특성을 갖게 된 것은 재료와 기술의 차별성 덕분이다.

문화재청이 한지를 2024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등재 신청대상으로 선정했다. 선지(2009)와 화지(2014)가 이미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유네스코에 등재되려면 유산에 부합되어야 하는 자격요건과 함께 문화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 유산에 대한 적절한 보호 조치가 있어야 하고, 공동체 문화로 이어지면서 현재에도 잘 향유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어야 한다.

한지가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니 과제가 적지 않다. 한지는 정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가. 온전히 향유되고 있는가. 그 답을 찾는 일이 더 절박해졌다. /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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