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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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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원제 ‘노르웨이 숲’)으로 출간돼 큰 인기를 끈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삶의 방향을 잃고 공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주인공을 묘사하면서⋯. 소설은 청춘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삶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겪는 상실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지금 전북도민의 심경이 소설 말미의 주인공 모습과 닮아 있다. 허무하고 허탈하다. 허망하게 밟히고,  빼앗기고, 잃었다. 다시 ‘상실의 시대’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균형발전을 외치던 정권은 졸렬한 억지 주장을 내세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곳을 가차 없이 짓밟고 있다. 지역사회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사라지는 ‘소멸의 시대’가 앞당겨질까 걱정이다.

20세기 산업화 시대, 철저히 소외돼 상실의 시대를 살다가 부여잡은 기회의 땅 새만금에 30년 넘게 공을 들이며 집착했다. 계획대로라면 진작 번듯한 수변 관광도시가 돼 있어야 할 곳이다. 그랬다면 그곳에 야영장이 설치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고, 행여 도움이 될까 기대했던 국제행사는 되레 새만금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가 새만금 SOC 예산 칼질에 이어 아예 기본계획을 재수립하기로 했다. 잼버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필 이 시점에 20년 넘게 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전주 KCC이지스 프로농구단이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겼다. 일사천리였다. 구단에 지역을 떠날 명분과 구실을 쥐어준 전주시에 비난의 화살이 쏠린다. 체육관 신축과 관련해 지자체의 속 터지는 행보를 기업 시각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와서 책임을 따지고, 떠나간 구단과 기업을 성토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부질없다. 떠나지 못하는 농구팬과 시민의 상실감을 보듬는 게 먼저다. 추석이 코앞인데 농도 전북의 민심이 바닥부터 흔들린다. 대책 없는 쌀값 폭락에 풍년이 들어도 농심은 근심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온몸으로 울부짖는 리더가 없다. 그저 시늉만 낸다. 민심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선출직들의 공허한 외침은 상실감만 키울 뿐이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을 억지로라도 붙잡아보려 했다. 그런데 이제 떠나려는 그들을 붙잡을 논리도 힘도 없다. 상실감에 빠져 무기력해진 도민의 감정이 여기저기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꿔낼 힘이 없는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그나마 분출되는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내 희망으로 승화시키지 못한다면, 갈 곳 없는 그 미약한 기운은 결국 좌절과 체념으로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체념이 아주 편안하게 다가올까 걱정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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