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토끼를 쫓았습니다. 수십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돌고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쫓기는 토끼도 쫓는 개도 그만 힘이 다해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것을 발견한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를 했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왕이 대치 중인 위(魏)나라를 치려 하자 제나라의 관료 순우곤(淳于髡)이 왕에게 올린 진언이다. 이 말을 들은 제나라 왕은 전쟁을 포기하고, 부국강병에 힘을 쏟았다.
중국의 역사서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로, ‘견토지쟁(犬兎之爭)’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개와 토끼의 싸움이라는 뜻의 이 성어는 ‘전혀 쓸데없는 다툼’, 또는 ‘양자 간 싸움에서 제3자가 이득을 보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새만금 관할권을 놓고 10년 넘게 다투고 있는 군산과 김제·부안 등 3개 지자체의 모습이 꼭 이렇다. 특히 외부의 강한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군산과 김제시의 극한 충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 쫓고 쫓기다 지쳐 죽어가는 개와 토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지난 8월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이후 외부에서 새만금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런데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내부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김제시민과 군산시민들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각각 집회를 열고 관할권 사수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새만금이 잼버리 파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내부에서는 땅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새만금 예산 삭감과 기본계획 재수립의 빌미가 됐다. 실제 한덕수 총리는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새만금 기본계획 재수립 방침과 관련해 관할권 다툼 문제를 끄집어냈다.
전북도가 군산과 김제·부안을 하나로 묶는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를 분쟁의 해법으로 내놨지만 관할권 문제와 맞물려 답보상태다. 출구를 찾던 전북도가 군산과 김제·부안 등 3개 시·군이 참여하는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오는 7일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김제시가 일찌감치 불참을 통보하면서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2010년 행정안전부의 새만금 3·4호 방조제 행정구역 귀속지 결정을 놓고 행정소송과 함께 시작된 지자체 간 분쟁은 새만금 동서도로와 신항만으로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올 7월 개통된 남북도로와 지난 6월 부지 매립공사를 마친 스마트 수변도시도 분쟁의 땅이 될 게 분명하다.
오랫동안 그려온 새만금의 청사진을 이제 속도감 있게 실현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주민 감정 대립과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는 내부 다툼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새만금사업을 더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성공적인 새만금 개발이 우선이다. 내부 갈등과 분쟁은 결국 새만금 개발의 발목을 잡는 행위일 뿐이다. 지금은 새만금의 미래를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우선 견토지쟁부터 중단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