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희망의 싹

image
정상덕  (지리산 흥부마을, 전 금융감독원 국장)

늦추위 기승에 이어 봄비가 한여름 장마처럼 퍼부었다. 날이 개니 어느새 까치는 둥지로 나뭇가지 물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들녘에 스며드는 봄바람이 농촌의 선 잠을 깨우고 선거를 앞둔 후보자들의 기대도 덩달아 부푼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앙가주망, engagement)가 중요하지만 사회 운동가(activist)는 감당이 어려운 70 중반 연배이니 글로라도 넋두리해 본다.

 

선거와 공천

공직에 맞는 사람을 추천하고 가려 뽑는 선거는 후한(後漢) 창시자 광무제가 도입한 일종의 인재 추천 제도로 나중에 과거(科擧)제도로 진화하게 되었다. 승상이나 태수(太守)는 인재를 추천할 의무가 있었고 기본적인 덕목은 예의, 정의, 청렴 그리고 도덕적 결함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이른바 예의염치(禮義廉恥)였다고 전해진다. 

지망생에게는 등용문이었지만 추천자 책임은 무거웠다. 추천받은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추천해 준 사람의 책임이었고 이 같은 부담이 두려워 추천을 게을리하면 직무 태만으로 책임을 추궁당할 정도였다. 단순한 연고로 적당히 추천할 수는 없었으며 명성이 높고 청렴한 인재를 가려 뽑아 추천했단다. 이 제도가 문란해지면서 광무제의 이상주의 정치가 빛이 바래게 되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요새 정당들의 국회의원 공천 관리(심사)위원회의 책무와 다를 바 없다. 낙점의 주체가 군주에서 국민으로 바뀐 점이 다를 뿐이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공천을 허투루 할 수는 없다. 공자는 정치(政)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라 해서 ‘政之正也.’ 라 일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각 당의 공천 위원회가 금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 정(定). 당의 실권자와 교감을 갖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미리 정해 놓고 심사하는 행태는 공당을 사당화하는 첫걸음이다.

다음은 정(情).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연고나 친소 정도를 따져서 걸러내는 이기주의 작태로 나라를 병들게 하는 독버섯이다.

셋째로 정(征). 정당 내부나 다른 당의 정치세력을 견제하거나 굴복시키려고 표적 공천하는 것도 하책이다. 정치란 상대를 굴복시켜 KO승을 하면 파국이 오기 마련이다. 

넷째는 정(呈). 금품이나 편익을 제공하고 거래하려는 파렴치한 후보자를 옹호해서도 안 된다. 수뢰 횡령 권력 남용으로 임기도 못 채운 국회의원이 어디 한 둘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정(整). 심사하는 원칙이 합리적으로 정리가 돼 있어야 한다. 다선 의원에게 적용한 과도한 감점 기준은 납득이 안 간다. 

초선의원의 열기와 재선 삼선의 경험 그리고 4선 이상 원로의 경륜이 어우러진 조화가 긴요한 때다. 적의 편에 가깝다고 인재를 배척하는 졸장부 지도자가 교언영색으로 선거에는 이기고 정작 정치에는 지는 구태는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 관중(管仲)을 본받을 때가 되었다. 관중은 죽마고우인 포숙아(鮑叔牙)의 추천으로 제나라 환공(桓公)의 재상이 되어 주군을 춘추시대(春秋時代) 최고의 패자(覇者)로 이끈 인물이다.

자신의 차지가 될 재상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한 포숙아나 적의 편에 가담하여 자기에게 화살을 쏜 관중을 대범하게 받아들인 환공이 없었더라면 관중의 실용주의 부국강병책과 인재를 발굴하는 안목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을 것이다. 관중의 죽음이 환공의 몰락의 시작이 되었으나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환공과 관중의 눈으로 보면 이번 공천에서는 납득이 안가는 사례가 허다하다. 정치의 가치도 정치인의 신의도 유권자의 선택권도 헌 신짝 신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투표로 본때를 보여주는 수 밖에.......

 

투표 혁명 

정치나 선거 문화의 개선도 결국은 투표하는 국민의 몫이다. 어둡던 시절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통해 간선제로 군부 항명을 용인해 준 것도 모두가 국민이 투표로 결정한 일이 아니었던가? 찍어 주고 후회하는 일은 물론이고 정당이나 정치인의 잘못에 기인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에 되돌아오는 사례가 예삿일이 됐다. 이번 총선부터는 ‘투표라도 제대로 됐으면’하는 바람이 있다. 유권자가 깨우쳐야 하는 이유다.

먼저 정당들의 공천 과정에서 저지른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충언을 마다하지 않은 정치인을 정당 지배자의 입맛이나 정당의 정체성과 다르다는 구실로 배척했는지, 이렇게 잘라낸 신청자의 대타로 정당 유력인사와 간이 맞다는 구실로 채운 어중이떠중이인지 여부다.

다음으로 후보자의 선량한 자질이다. 파렴치 행위로 오염이 됐어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기회로 삼기 위해 술수로 당선만 되고 보자는 후보는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 사익을 앞세워 공익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선거꾼과 결탁 유혹에서 벗어나기도 어렵고 연고나 돈으로 당선만을 노릴 소지도 클 것이다. 전문성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다.

마지막으로 지역 정서의 잣대로 후보자를 골라서도 안 된다. 지역감정은 정치와 선거 문화의 독버섯이다. 정당들이 공천을 가관으로 하고도 시치미 떼는 까닭이다.

 

막걸리 

‘타락 선거’하면 연상되는 것 중 하나가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갈증도 풀고 허기도 채워주는 농주(農酒)라 정감이 가는 서민적 술이다. 막걸리를 짜서 술독에 두면 표면은 맑아도 바닥은 누렇다. 평상시엔 표면이 맑고 고요해도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이 흔들어 대니 술독은 금방 누렇게 소용돌이친다. 많은 유권자도 지역주의 바람에 휩쓸려 표를 던지고 만다. 지역감정은 선거 때마다 청산해야 할 과제로 꼽혀도 매번 도로 아미타불이다.

막걸리가 농익으면 용수를 걸고 떠내는 것이 청주(淸酒)다. 남은 술과 지게미에 물을 섞어서 짜내면 막걸리가 된다. 이걸 증류하면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소주(燒酒)가 된다. 이번에는 청주처럼 맑은 정신으로 투표하고 선거 후엔 국론을 통합하고 정치권의 갈등을 풀 수 있는 화합의 막걸리가 되고 이와 같은 본보기가 시발점이 되어 소주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선거에서 그 희망의 싹이라도 보고 싶다.

/정상덕  (지리산 흥부마을, 전 금융감독원 국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외교 ‘강행군’ 여파 속 일정 불참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전주시 6시간 28분 49초로 종합우승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통산 3번째 종합우승 전주시…“내년도 좋은 성적으로 보답”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종합우승 전주시와 준우승 군산시 역대 최고의 박빙 승부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최우수 지도자상 김미숙, “팀워크의 힘으로 일군 2연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