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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춘향수절가>와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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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각본(坊刻本)은 조선 시대에 민간에서 판매하기 위해 간행한 책을 이른다. 조선 중기에 등장했으니 그 역사는 400여 년을 훌쩍 넘는다. 당시 방각본 출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은 서울과 전주, 안성 정도다. 책 보급이 활발했던 상업지역이거나 종이가 생산되었던 지역이다. 초기에는 교육과 경전, 의학이나 농사법, 관혼상제 등 실용서가 주를 이루었지만, 후에는 소설류까지 확장됐다. 특히 한글을 새겨 찍어낸 방각본 소설들은 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춘향전>은 가장 많이 읽고 즐겨 찾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방각본 <춘향전>은 소설류 중 조금씩 다른 내용의 이본(異本)이 가장 많다. 그 수많은 이본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책은 전주에서 만들어진 완판 방각본 <열녀춘향수절가>.

서포라 불리었던 전주의 책방에서 제작된 완판 방각본은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전주의 서포들은 다양한 종류의 책을 출판했지만, 그중에서도 한글 고전소설류는 그 규모나 내용이 서울에서 만들었던 경판본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행했다고 전한다. 자료에 따르면 완판 방각본 고전소설은 20여 종. <열녀춘향수절가> <심청가> 등 판소리계 소설이 주를 이룬다.

전주의 출판문화 궤적은 넓다. 방각본에 앞서 조선 시대 서적 간행을 주도했던 것은 중앙기관과 각 지방의 감영이었다. 전주에 있던 전라감영에서도 많은 책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완영본이다. 전해지기로는 조선 후기에만 전라감영에서 90여 종, 수많은 책이 만들어졌다. 그 책을 만드는 데 쓰였던 재료의 풍요로움과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수들의 기량이 민간에도 영향을 미쳐 완판 방각본의 발전을 이끌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전주의 풍요로웠던 출판문화를 증명해주는 유산, 전라감영에서 만들어진 완영책판 목판의 존재다. 이들 목판은 쓰임을 다하자 1899년 전주향교로 옮겨졌다. 당시 그 분량은 15천여 점.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수가 소실되었고, 이후 향교에 장판각을 지어 보관했으나 그 과정에서도 훼손되어 지금은 5천 여 점이 남았다. 이들 책판은 2004,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전북대 박물관에 위탁되어 보관 중이다. 책을 찍어냈던 목판본은 적지 않으나 감영 책판이 이처럼 다량으로 남아있는 것은 완영책판이 유일하다. 그만큼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때마침 전주의 출판문화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선의 베스트셀러 한양가와 춘향전>으로 만나는 전주의 출판역사, 들여다보니 그 면면이 빛나는 이유를 알려주는 이 전시회가 반갑다.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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