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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노벨문학상 보유국의 품격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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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창 극작가·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강의 시선은 깊다. 그는 동시대의 아픔, 가까운 지난 시대의 아픔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여느 작가들과는 그 결을 조금 달리한다. 그의 시선이 남달리 깊다는 것은 곧 그가 견뎌오고 있는 시대의 아픔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드러낸다. 역사적 참상을 전달하되 그 참상의 외면에 집착하거나 분노하고 호소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참상의 내면, 어찌하여 일이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는지에 대하여 그는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며 거기 연루된 모든 인간 군상들의 내면 그 깊은 속을 더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희생자들, 희생당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곡진하게 드러낸다. 그가 보내는 애도의 시선은 그래서 누구보다 깊고 간절하다. 애도의 우물이 있다면 그가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그 우물의 맨 밑바닥에 잠겨있는 눈물 한 방울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 문학이 지난 몇십 년 간 이룩해온 빛나는 리얼리즘의 성취를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4.3이나 광주를 이야기할 때 그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우리는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에 빠져 있는 작가가 아니다. 좌와 우의 상호 정당성 따위를 논하지 않고도 우리가 들여다 봐야 할 진실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그의 문장들은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만든 이 세상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연약한가? 이 유리그릇같은 세상에 우연히 찾아오는 폭력의 유혹들은 얼마나 강렬하고 치명적인 것인가를 말한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모두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입은 인간들을 그린다. 그 인간들은 때로 일그러진 욕망에 사로잡혀있기도 하고 물리적 장애에 직면해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일상의 이면에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상처들이 존재하는지 그는 천착한다. 그리고 그 연약한 존재들의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눈길을 받아내려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아픈 존재들의 아우성을 더 정확하게 받아 그려낼 수 있을까가 그의 필생의 고민인 듯 보인다. 

  이런 그가 큰 상을 받았다. 그가 받은 큰 상은 그래서 한국문학의 경사를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진보이다. 당연히 이 기구한 근현대사를 견디고 있는 한민족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더 안타깝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무지, 예술의 본질과 그 효용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대놓고 드러내는 이들의 발호가 지금도 심심찮게 이어진다.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를 못 벗어나는 이들, 좌와 우, 가해와 피해, 진보와 보수의 진영 놀음에 갇힌 저 외눈박이들이 참으로 처량해 보인다. 이런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저런 몰상식의 어법들을 그냥 간과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바탕에는 문학, 문화예술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 자행되어 온 출판산업진흥이나 학교문화예술 강사들에 대한 지원금 삭감 움직임에 개탄한다. 이게 다 우리 시대의 문학, 연극, 영화 등 거의 대부분의 예술 행위가 좌파들의 놀이터라는 인식, 그 뿌리깊은 피해의식과 선입견 탓이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 아무리 빛나는 경사도 그 빛이 바랠 수 있다. 예술을 지원하고 그 토양을 장기적으로 비옥하게 만들 사명을 지닌 정부 기관 관계자들의 맹렬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의 품격과 할 일을 생각할 때이다.       

곽병창 극작가·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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