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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창의적 참여로부터 출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커뮤니티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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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풀뿌리 민주주의는 소수 엘리트 계급이 절대다수의 민중들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평범한 민중들이 지역 공동체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일상에  변화를 꾀하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실천방식은 전문예술가와 주민 공동체가 상호작용하며 예술개념을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시키는 ‘커뮤니티 아트’와 맞닿아 있다. 

필자는 2020년부터 예술단체 이랑고랑 팀원들과 함께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에서 초고령 어르신을 대상으로 커뮤니티 아트를 진행해왔다. 마을벽화 제작 의뢰를 계기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주민 스스로’라는 원칙에 주목하여 마을과의 협업으로 발전되었다. 벽화 원화를 제작하기 위해 마련한 미술수업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었다.

 농사로 바쁜 주민들을 대신해 주로 80세에서 100세 사이의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팔십 평생 붓을 처음 잡는다는 초고령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없애는 과정이 중요했다. 시작은 종이를 보지 않고 한번에 한 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놀이부터 했다. 이 과정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이 어떤 형태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눈으로 확인하며 그리지 않았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타나자 서로 그게 내 얼굴이냐며 웃음을 터뜨리며 예술가에 대한 경계심도 자연스럽게 허물어갔다.

재료에 익숙해지자 어르신들은 작물이나 익숙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물을 키워 본 오랜 농사경험이 그림으로 녹아들어 독특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로 표현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특정 예술 양식으로의 편향을 막고 가르침 보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어르신들의 서투름 속에서 나오는 특유의 그림체가 나오길 기다리는 과정은 예술가가 관찰자를 넘어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창의적 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예술가는 어르신들이 스스로 그려내는 방식을 지지하고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때를 지나면 비로소 어르신들의 독창적인 보는 방식이 그림에 발현되는 예술적 참여의 가치를 목격하게 된다. 

이랑고랑은 이러한 움직임을 확장하기 위해서 어르신들의 창작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20년부터 그림 수업을 통해 양성한 어르신 한 분을 2023년 인턴과정을 거치고 정규직으로 고용하여 그림을 활용한 상품을 제작하고, 서울일러스트페어 참가를 위해 4박5일 출장에 동행했다. 구몬학습의 매거진과 전북특별자치도 도정 소식지 얼쑤전북의 표지 디자인에 어르신의 그림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는 가림막 울타리 디자인 공모지원을 계획하거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영화제에 출품하는 등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초고령 어르신들의 아마추어 작가, 모델, 배우로서 잃어버린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지역사회에 기여할 기회로 이어진다.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나이 듦과 예술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며 예술이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사회변화를 촉매하는 문화예술이 공동체의 복지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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