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일이다. SNS를 통해 한 지역 서점이 화제가 됐다. 경남 진주에 있는 진주문고다. 이 서점은 그해 초, 특별한 책 두 권을 진열대에 올렸다. 한 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고, 또 한 권은 이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사용한 천문학적 비용을 고발하며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조명한 <MB의 비용>이었다. 같은 이슈를 상반된 시각으로 다룬 이 두 권의 책이 놓인 진열대에는 ‘판단은 당신의 몫’이라는 팻말이 놓였다. 그 뒤 SNS에는 ‘단 한 부 남은 책(MB의 비용)과 단 한 부 팔린 책(대통령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전시된 책 사진이 다시 올라왔다. ‘주말 동안에 스코어는 이렇게 벌어졌습니다‘란 덧글이 붙었다.
얼마 되지 않아 진주문고는 또 한차례 관심을 모았다. 역시 진열대가 화제였다. 그해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기존에 실행해오던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삭감하면서 무상급식을 중단했다. 그러자 진주문고는 '경남도지사에게 권하는 책'이라며 아홉 권 책을 별도의 진열대를 만들어 배치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쓴 <징검다리 교육감>을 비롯해 <개념원리 수학1>,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밥값 했는가> <꿈의 도시 꾸리찌바> 등이었다. 도지사에 취임한 뒤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한 데 이어 무상급식까지 중단하는 홍 지사의 정책을 비판하며 주민들과 인식을 공유하고자 했던 서점의 의지는 큰 반향을 불렀다. 유쾌하면서도 강단 있는 지역 서점의 행보에 환호하는 독자들은 많았다.
최근 알라딘이 독자 3,63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새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했다. 1위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을 꼽은 독자들은 ’그날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을 나라를 만들어 주시길‘ ’오늘을 있게 해준 5월의 영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등 댓글로 추천이유를 밝혔다. 뒤를 이은 책은 <어른 김장하>, <공정하다는 착각>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다. 모두가 우리 사회의 궁핍한 면면을 드러내거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들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와 같이 국가 존립의 기반이 되는 정체성 위기를 성찰하게 하는 책들도 이어진다. 책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다시 보인다.
독자들과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려는 지역 서점, 새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열망을 책으로 전달하려는 독자들의 풍경. 책을 통해 인식을 공유하며 연대하는 사회가 반갑고 미덥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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