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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새벽메아리] 빈집에서의 마을살이 그리고 나의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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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이전부터 ‘촌집’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서까래와 대들보가 살아있고 윤이 나는 툇마루가 있는 한옥이면 더 좋을 것이다. 직접 텃밭도 꾸려서 오이나 상추를 따고 지인들을 초청해서 삼겹살 파티도 열고 싶다. 시골살이에 대한 이런 로망은 확실히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생긴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런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지역으로 내려온 지 8년차가 되어서야 드디어 나는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이런 기회를 얻게 된 배경에는 ‘희망하우스’라는 빈집재생 사업이 있다. 1년 이상 방치된 빈집의 경우 국가의 지원금으로 집 일부를 정비할 수 있다. 그리고 리모델링된 주택은 5년간 무상으로 임대를 내어줌으로써 빈집의 활용성을 높인다. 타 시군의 1만원 주택도 사실상 무상의 개념이니 같은 제도다. 임대인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저소득층, 귀농귀촌인, 청년, 신혼부부,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외국인 근로자 그리고 ‘지역문화예술활동가’(!)이다. 나의 경우 엄격한 심사 과정은 없었으나 이장님을 위시하여 마을분들이 나름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이주를 승인하였다. 

빈집 정책은 2017년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지자체별로 빈집 실태와 현황조사를 시작하던 초기를 지나 최근에는 지역재생, 청년주거, 커뮤니티 활성화와 맞물려 다양한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택을 주택으로 바꾸는 경우는 좀 얌전한 경우이고 마을호텔과 게스트하우스, 공방과 카페 등으로 바꾸기도 하고 아예 빈집을 덜어내고 공용주차장이나 쌈지공원 등 공공장소로 전환하기도 한다. 몇몇 성공적인 사례들이 생기면서 빈집은 흉물에서 마을발전의 동력이 되는 공공자원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빈집과 인연이 깊다. 2006년 군산 해망동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이다. 달동네이던 해망동 곳곳에는 황량하게 남겨진 빈집들이 제법 있었다. 기획팀은 집주인을 수소문하여 일시적인 사용 허락을 얻었다. 빈집의 상태에 따라 수선의 규모는 달랐지만 원칙은 원래 그 빈집이 갖고 있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것. 문패의 이름을 따서 빈집 다섯채가 ‘누구씨네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빈집은 예술가와 만남으로써 새로운 공간으로 경험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벽화나 조형물을 공공미술로 인식하던 시기에 특정 지역 전체를 문화적으로 디자인한다는 발상은 지금은 오히려 지역재생의 접근법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도시재생, 지역활성화 사업에서 물리적 외관의 재생은 두 번째 문제이다. 어떤 공간으로 어떤 장소로 바뀌어야 하는가를 지역민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결정하는 참여 디자인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이 과정에 사회적협동조합, 도시재생지원센터, 공공건축가, 커뮤니티 빌더 등이 결합되어 자립모델을 함께 구상하고 마을과의 협력모델을 구축하기도 한다. 외관보다 프로그램의 재생, 사람의 재생, 삶의 재생이 우선한다는 이야기다. 

이장님이 희망하우스에 문화활동가(나!)를 들이면서 마을사람들의 기대가 크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처음으로 마을살이를 감행하는 나로서는 약간 걱정이 들기도 한다. 낮에는 문화활동가이지만 밤에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익명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기획과 삶이 통합되는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지만 이를 실천할 용기가 부족했다. 어쩌면 이번 빈집에서의 시골살이는 마을의 재생 이전에 나의 삶을 재생시키고 전환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내일 마을회관의 점심에 정식으로 초대되었다. 시골살이, 마을살이의 시작이다! 

 

△전민정 사무국장은 군산 해망동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장소특정적 공공미술, 리서치와 관계중심의 커뮤니티아트 등을 기획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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