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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새벽메아리] 식물과의 교감, 그 감응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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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대도시를 떠나 인구 5만의 소도시로 이주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풀 한포기’ 때문이었다. 지리산 자락 하동에서 열린 야생차문화제에 갔다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마삭줄’을 만났다. 그때 만해도 소유욕이 강했는지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 마삭줄의 일부를 가위로 잘라 유리병에 담아왔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지리산을 기념하는 나의 채집물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잘라온 줄기의 끝부분 어딘가에서 뿌리가 난 것이었다. 당분간의 싱그러움을 맛보고자 물에 꽂아둔 것일 뿐 녀석에게 지속적인 생명을 보장할 마음은 없었다. 식물에게서 뿌리가 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처음으로 ‘목격’하였고, 이 사건으로 나는 식물에 빠져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식물의 재생 능력’에 꽂힌 나는 꽃집에서 식물을 사다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식물계에 입문한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허브류였다. 페파민트, 애플민트, 로즈마리, 라벤더 같은 허브들은 키우기도 쉽고 증식도 뛰어났다. 1대 어머니의 몸에서 잘라 낸 허브 가지들은 2대, 3대, 4대로 무수하게 번식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식물의 ‘생장점’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식물에 따라 다양한 뿌리 모양들이 있으며 마치 뿌리는 인간의 ‘치열’처럼 하얗게 빛나며, 물속의 영양분을 씹어삼키는 소화기관임을 직관했다. 

집은 점점 더 다양한 식물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몬스테라, 알로카시아, 스킨답서스, 후마타고사리, 틸란드시아 등 이름도 낯선 외래종이었다. 이들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식물의 재생능력에 슬슬 질리던 시기에 발견되었다. 이들은 아름다웠다. ‘녹색’이라는 한단어로 묶을 수 없는 미세한 색감들과 종에 따라 필요한 물의 양과 빈도, 꽃피는 시기 등등 개체의 다양성을 체감하였다. 이 시기에는 잎 상태만 보아도 식물이 뭘 요구하는지 느낄 정도였다. 다종다양한 이들의 요청에 맞추다보니 나는 속칭 ‘식물집사’가 되어 있었다. 물을 줘야하기에 긴 여행을 떠나지 못했고 성장 속도에 맞춰 화분을 갈아주다보니 쏠쏠하게 돈이 들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양지바른 자리는 식물이 먼저였고 먹는 것, 자는 것 등은 부차적이었다. 

결국 이런 식물의 세계를 좀더 광활하고 찬란하게 살펴볼 환경이면 좋겠다는 열망이 귀촌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귀촌 후 나의 ‘인테리어적인’ 식물 지식은 농부들, 생태주의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확대되었다. 봄철 들에 피어난 웬만한 것들은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머위, 쑥부쟁이, 원추리, 참나물, 곰보배추, 꽃마리, 개망초, 질경이 그리고 쑥. 이들이 매년 같은 자리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나물 지도를 만들고 싶었다. 2월 말 매화에서부터 시작해서 벚꽃, 살구꽃, 앵두꽃, 등나무꽃, 자두꽃, 배꽃 등 이들의 개화로 일년살이가 가능하니 아름다운 꽃달력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9월경 추수를 앞두고 벼꽃은 얼마나 달큰한지, ‘벼꽃향’을 닮은 향수를 만든다면 대박이겠구나 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욕망은 잠깐잠깐 떠오르긴 했으나 현실화되지 않았고 식물은 다음 세계로 나를 인도하였다. 이제는 화분을 키우지도 들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내가 식물을 돌본 것이 아니라 식물이 나를 돌보는 ‘감응의 세계’에 머물렀던 것 같다. 식물로부터 배운 것도 많지만 이제는 떠나보낼 때이다. 그래야 더 큰 자연과의 감응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전민정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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