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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표의 모눈노트] ‘알아야 즐긴다’⋯ 문화의 시대, 문화예술 향유능력

문화적 소양·감성 중시되는 사회
문화를 누리고 예술을 즐기는 삶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 확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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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표 논설위원

# 미술관 강당에 속옷만 하나씩 걸친 유치원생들이 붓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흰색 대형 도화지가 빼곡하게 깔린 바닥은 아이들의 그림판이다. 윗옷은 모두 벗었으니 이 널찍한 그림 놀이터에서 거칠 게 없다.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색을 칠하고,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색색의 추상화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몸 이곳저곳에 잔뜩 묻은 물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색과 그림을 놀이로 즐기고 있었다.

10여년 전 필자가 해외 문화예술교육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의 ‘어린이 아틀리에’ 프로그램이다. 그림과 색채, 그리고 미술관과의 거리를 좁히자는 취지로 각 유치원의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고 했다. 단체로 미술관에 온 아이들은 마치 놀이처럼 그림을 즐긴다. 미술관에 온 만큼, 전시실 작품 관람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예술 영재교육 차원의 프로그램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예술작품 감상 능력을 길러주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놀면서 색채를 느끼고,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요코하마미술관은 단순한 작품관람 장소가 아니라 직접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화예술 교육·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의 힘이 지식과 정보 못지않게 중시되는 사회다. 문화적 소양과 감성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없게 됐다.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 삶의 질과 연관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문화예술은 알아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학교 안팎의 우리 문화예술교육은 주로 소수의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엘리트 교육에 치우쳐 있었다. 그래서 음악·미술·연극 등 예술교과는 친숙하고 즐길 만한 것, 꼭 필요한 수업이라기보다 의례적 통과 과목으로 여겨졌다. 이런 까닭에 성인이 되어서도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현대미술 거장의 명작을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또 아예 그런 기회마저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문화예술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니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생활수준과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문화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리고 그 교육은 전문 예술인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문화예술 향유능력을 기르기 위한 체험교육이어야 한다.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 문화예술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10여년 전 전주시가 역점 추진했던 ‘전주시민 한 소리 하기’와 같은 참신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당시 전주시는 ‘판소리의 고장, 예향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판소리 한 대목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특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시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상당 기간 지속된 이 프로젝트는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국악원에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통 국악기를 마음껏 만지고 두드리면서 그 오묘한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고, 또 미술관에서 그림과 친숙해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에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면 성장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신청사를 개관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을 비롯해서 도립미술관, 그리고 전북문화관광재단·전주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예술 기관·단체의 시대적 역할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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