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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의 모눈노트] 민선 지방자치 30년, 지역의 주인은 누구였나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역주권 실현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법정 기념일이다. 주민이 지역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민선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 노력이 이어졌다. 주민주권 강화·실질적 자치권 확대를 골자로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도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주민이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됐을까? 그렇지 않다. 30년이나 흘렀지만 항상 성과보다는 과제가 먼저 부각된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참여고, 이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그렇다면 전북지역 30년 지방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일당독식 구도’에 흔들림이 없었다. 집행부와 지방의회가 민주당 일색으로 짜여지면서 지방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인 선거구도에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입지자들은 유권자의 표심보다 당의 선택을 받는 데 더 몰두했다. 물론 당의 공천 과정에서 주민 여론을 반영하기도 했지만, 역시 민심(民心)보다는 당심(黨心)이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지역사회 민주당원이 넘쳐나게 됐다. 경선 후보들의 사활을 건 경쟁 덕분에 주변 연결고리에 얽혀 자기도 모르게 당원이 되기도 했다. 지방선거 입지자와 현역 단체장·지방의원들의 발길은 투표권을 가진 지역주민보다 공천권을 쥔 중앙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먼저 향했다. 그렇게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일당 독주체제도 탄탄해졌다. 또 내편·네편을 나누는 대립과 반목의 정치로 국민이 극단적으로 분열되면서 민주당은 지역사회에서 성역이 됐다. 지역사회 정치적 소수 견해와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매도돼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속담에 ‘잡아놓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전북의 이런 정치구도, 선거행태가 지역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없이 확인했다. 낚싯대를 펴기도 전에 어망에 들어가 있는 물고기에 밑밥을 주며 신경 쓸 낚시꾼은 없다. 물고기를 더 잡아야 하는 어망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역에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물밑에서는 이미 선거 레이스가 시작됐다. 지방의원들의 볼썽사나운 줄서기 충성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지방정치는 실종되고, 지역 패거리 정치만 횡행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민주당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낸 유권자들의 책임이 크다. 입지자들이 지역주민보다 정당과 국회의원 눈치보기·줄서기에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런 정치구도 때문이다. 소중한 국민의 권리를 특정 정당에 통째로 맡겨 놓고서 그들의 줄서기, 줄 세우기 행태를 나무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탄핵정국 이후 우리 사회 분열과 대립,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공약은 흘려버리고 오로지 정당만 보고 선택하는 ‘묻지마 투표’ 양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까 걱정이다. 우리 지역 시장·군수, 지방의원을 사실상 지역주민이 아닌 특정 정당, 지역정치인이 선택하는 비정상적인 선거행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난맥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지역주민이, 유권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성역은 없다. 주인의식을 갖고 철저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편견을 내려놓고, 다양한 시각과 함께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두는 자세도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10.28 18:25

[김종표의 모눈노트] ‘알아야 즐긴다’⋯ 문화의 시대, 문화예술 향유능력

# 미술관 강당에 속옷만 하나씩 걸친 유치원생들이 붓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흰색 대형 도화지가 빼곡하게 깔린 바닥은 아이들의 그림판이다. 윗옷은 모두 벗었으니 이 널찍한 그림 놀이터에서 거칠 게 없다.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색을 칠하고,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색색의 추상화가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몸 이곳저곳에 잔뜩 묻은 물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색과 그림을 놀이로 즐기고 있었다. 10여년 전 필자가 해외 문화예술교육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의 ‘어린이 아틀리에’ 프로그램이다. 그림과 색채, 그리고 미술관과의 거리를 좁히자는 취지로 각 유치원의 신청을 받아 진행한다고 했다. 단체로 미술관에 온 아이들은 마치 놀이처럼 그림을 즐긴다. 미술관에 온 만큼, 전시실 작품 관람도 이어진다. 그렇다고 예술 영재교육 차원의 프로그램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예술작품 감상 능력을 길러주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놀면서 색채를 느끼고,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요코하마미술관은 단순한 작품관람 장소가 아니라 직접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지역사회 문화예술 교육·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의 힘이 지식과 정보 못지않게 중시되는 사회다. 문화적 소양과 감성을 갖추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없게 됐다.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개인 삶의 질과 연관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문화예술은 알아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 학교 안팎의 우리 문화예술교육은 주로 소수의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엘리트 교육에 치우쳐 있었다. 그래서 음악·미술·연극 등 예술교과는 친숙하고 즐길 만한 것, 꼭 필요한 수업이라기보다 의례적 통과 과목으로 여겨졌다. 이런 까닭에 성인이 되어서도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현대미술 거장의 명작을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또 아예 그런 기회마저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문화예술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으니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없다. 생활수준과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문화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다. 그리고 그 교육은 전문 예술인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문화예술 향유능력을 기르기 위한 체험교육이어야 한다.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 문화예술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10여년 전 전주시가 역점 추진했던 ‘전주시민 한 소리 하기’와 같은 참신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당시 전주시는 ‘판소리의 고장, 예향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판소리 한 대목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특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시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상당 기간 지속된 이 프로젝트는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국악원에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통 국악기를 마음껏 만지고 두드리면서 그 오묘한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고, 또 미술관에서 그림과 친숙해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에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면 성장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신청사를 개관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을 비롯해서 도립미술관, 그리고 전북문화관광재단·전주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예술 기관·단체의 시대적 역할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9.09 19:04

​[김종표의 모눈노트] 통합 익산시 30년, 학교에 붙잡힌 ‘이리’

학교에만 남았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뀌면서 모두 잊혀지고 사라졌는데 유독 학교에서만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다. 익산의 옛 지명인 ‘이리(裡里)’ 이야기다. 전주·완주 통합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2025년, 이웃 도시 익산은 시·군 통합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해 도·농 복합도시로 새출발했다. 당시 통합도시의 이름은 별 논란 없이 ‘익산(益山)’으로 정해졌다. 익산이라는 지명이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고, 익산군 주민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또 이리가 예로부터 사악한 존재로 여겨져 온 야생동물 늑대의 다른 이름이고,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점도 ‘이리를 버리고 익산을 선택’한 이유다. 통합 직후 각 기관 및 단체, 그리고 공공시설의 명칭에 사용된 지명이 이리에서 익산으로 일제히 바뀌었고, 여기저기서 쓰인 고유명사 이리가 익산으로 속속 대체됐다. 그렇게 이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학교가 떠나는 이리를 붙잡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역 대표성을 담기 위해 지명을 그대로 옮겨 교명으로 정한 이리초·이리중·이리고가 그렇다. 이들 학교는 그렇다 쳐도 지금 옛 이리시 지역 대다수의 학교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리모현초·이리북일초·이리영등중·이리남성여고 등이다. 통합 전 시 지역 학교는 대부분 교명에 지명인 ‘이리’를 덧붙였다. 반면 옛 익산군 지역의 농촌학교는 익산중·익산고를 빼고는 교명에 지명 익산이 포함된 곳이 없다. 그래서 시·군 통합 이후 시 지역 학교에서 교명에 접두사처럼 일괄적으로 붙은 옛 지명 ‘이리’를 아예 빼버리거나 익산으로 바꿔도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런데 한 곳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이해하기 힘든 교명도 있다. 1995년 통합 익산시 출범 이후에 문을 연 이리백제초등학교(2000년 개교)와 이리마한초(2000년)·이리부천초(1997년)·이리영등초등학교(1997년 개교)는 잊혀지고 있던 지명 ‘이리’를 굳이 되살려내 교명에 붙였다. 신설 학교명에 지명으로 이리 대신 익산이 쓰인 것은 통합 6년째인 2001년, 익산어양초등학교부터다. 이와 별도로 이리여자중학교는 2000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익산지원중으로 바꿨다. 교명의 원칙과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이 지역에 잇따라 신설된 학교 이름에 이리와 익산이 혼재하면서 시민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2010년과 2014년, 각각 통합의 역사를 쓴 창원(마산·창원·진해시)과 청주(청주시·청원군)의 사례를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 창원시에도 옛 지명 마산·진해를 여전히 교명에 쓰고 있는 학교가 적지 않다. 마산중앙초·마산제일여중·마산용마고·진해남산초·진해용원고 등이다. 하지만 익산과는 많이 다르다. 창원시에는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진해구 등 옛 지명이 현재의 행정구역명에 그대로 살아 있고, 교명에 옛 지명을 사용하는 학교도 모두 해당 행정구역에 위치하고 있어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또 청원군과 통합한 청주시의 경우에는 현 행정구역상 청원구에 위치한 청원초와 청원고 2개 학교만이 교명에 청원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다. 교명은 학교 구성원과 학부모·동문회 등 지역사회의 합의를 통해 변경할 수 있다. 옛 시 지역과 군 지역 학교를 이름으로 애써 구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교육당국에서 교명 정비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통합 익산시 출범 30주년을 계기로, 먼저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05 17:49

[김종표의 모눈노트] 모교도 몰라볼 판인데⋯, 또 바꾼다고?

‘새 이름을 지어주세요.’ 전북지역 모 특성화고는 지난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교명을 공모했다. ‘전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전문 특성화 학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가 교명 변경의 이유다. 이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와 조례 개정 등 관련 절차를 거쳐 내년부터 새 이름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이 학교는 1951년 변산수산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뒤 줄포수산고, 줄포고, 줄포공고, 줄포자동차공고를 거쳐 5번째 개명, 6번째 교명을 갖게 된다. 이처럼 수시로 교명을 바꿔온 학교가 적지 않다. 전북지역의 경우 4번 이상 교명을 바꾼 학교가 8곳에 이른다. 대부분 특성화 고교다. 올해도 고창 영선고가 전북인공지능고, 전북하이텍고등학교가 수소에너지고등학교로 각각 변신했다. 삼례고로 개교한 수소에너지고는 삼례종합고, 삼례공고를 거쳐 2020년 전북하이텍고로 개명한 뒤, 불과 5년 만에 다시 새 이름을 달았다. 이번에는 교명에서 지역을 유추할 수도 없어 더 생소해졌다. 이 정도면 동문들이 자신의 모교도 못 알아볼 판이다. 졸업 후에 교명이 4~5번씩이나 바뀌었으니 모교를 알아보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 수차례 개명 후 다시 첫 교명으로의 복귀를 추진하는 학교도 있다. 전주여자상업고에서 전주영상미디어고, 전주상업정보고로 이름을 바꾼 이 학교는 최근 총동창회와 함께 전주여상으로의 교명 복원을 추진해 관심을 모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개명(改名) 열풍이 불면서 어렵게만 여겼던 이름 바꾸기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사람은 물론, 회사와 아파트, 그리고 학교까지 속속 이름 바꾸기에 동참했다. 표면상으로 그럴싸한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이미지 세탁’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까지도 그 이름을 수시로 바꾸는 판에 교명 변경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신입생 모집난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에서 시작된 교명 변경 열풍이 특성화 고교로까지 번졌다. 상당수 학교는 기존 체제로는 반복되는 신입생 모집난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AI·수소 등 첨단산업 분야나 취업 유망 분야로 학과를 개편하고, 교명을 바꿔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생존 위기 극복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일면 안타깝다. 그런가 하면 기존 체제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이미지 쇄신을 내세워 새 교명을 채택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학과 개편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특성화고가 선택한 이같은 자구책은 의도한 성과로 이어졌을까? 그랬다면 4번, 5번씩이나 연속해서, 그리고 이름을 바꾼지 5년 만에 다시 교명을 바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급하게 이름부터 바꿀 일은 아니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자산이다. 그래서 보통은 교명에서 그 학교의 특성과 함께 지역정서까지 유추할 수 있다. 교명 변경에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첨단 산업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기에 편승해 기본 토대도 갖추지 못한 채 성급하게 간판부터 바꾸고 새 얼굴 내밀기에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자칫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다가 또 간판을 바꿔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고심 끝에 학교의 이정표를 새로 정했다면 당연히 해당 분야 교육역량 강화 노력이 우선이다. 지금의 특성화고 위기는 학교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문제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래도 다방면에서의 치열한 자구 노력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개명이 능사는 아니다. ‘바꾸고, 또 바꾸고…’ 언제까지 이럴텐가.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6.17 17:24

[김종표의 모눈노트] ‘갈등(葛藤)’의 계절, 대선과 새만금 분쟁

5월, 절정을 지난 연보랏빛 등나무 꽃이 후드득 떨어진다. 이제 덩굴이 무성해지면서 뙤약볕 도심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다. 더 화려한 봄꽃에 밀려 상춘객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유용한 식물이다. 그런데 이 나무가 자라는 방식이 거슬린다. 다른 나무나 구조물을 칭칭 감고 올라가는 등나무는 같은 덩굴식물인 칡과 함께 ‘갈등’의 한 축이다. 등나무는 시계방향, 칡은 반시계 방향으로 감아오르려는 습성 때문에 둘이 만나면 얽히고설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칡(葛)과 등나무(藤)의 뒤엉킴에서 ‘갈등(葛藤)’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고 한다. 등나무 그늘을 찾기 시작하는 이 계절, 우리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격화된 정치적 갈등이 대선 국면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걱정이다. 다음달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우리 사회 극한 반목과 갈등은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대선시계’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고, 각 지자체에서도 지역공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힘이 많이 떨어졌지만 전북은 또 새만금이다. 수십년째 단골 공약인 새만금이 이번에도 어쨌든 빠지지 않았다. 30년 넘게 역대 대통령들이 외쳐온 새만금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새만금 관련 최대 이슈는 대선 공약이 아니라 첨예한 내부 분쟁이다. 새만금 관할권을 놓고 군산과 김제·부안이 양보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방조제 관할권으로 시작된 3개 시·군의 다툼은 내부도로와 신항만, 수변도시 등으로 번지고 있다. 법정까지 넘나드는 이 갈등을 조정하거나 분쟁을 막을 대안조차 보이지 않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 쫓고 쫓기다 지쳐 함께 쓰러져 죽고 만 개와 토끼를 비유해 ‘전혀 쓸데없는 다툼’을 이르는 고사성어 ‘견토지쟁(犬兎之爭)’이 떠오른다. ‘기회의 땅’ 새만금이 언제부턴가 ‘갈등의 땅’이 돼 버렸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새만금권역 3개 시·군 상생발전을 위해 역점 추진한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는 출범을 앞두고 물거품이 됐다. 최근에는 행안부가 새만금 수변도시 매립지를 김제시 관할로 결정한 데 대해 군산시와 부안군이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또 해양수산부가 논란을 빚은 새만금 신항만 운영방식을 결정했지만, 이를 놓고 대립각을 세워온 군산시와 김제시는 그 결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끊이지 않는 시·군간 갈등을 풀어내자는 취지로 전북특별자치도가 오래전부터 조례를 통해 갈등조정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유명무실’이다. 변죽만 울린 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예로부터 ‘없는 집에 분란이 많다’고 했다. ‘가난이 싸움이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하면 작은 이해(利害)를 놓고도 서로 다투게 되어 큰 불화가 된다는 의미다. 지금 전북이 꼭 그 꼴이다. 이념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사회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새만금 관할권’처럼 ‘소지역주의’가 갈등의 원인이라면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 대선의 계절, 국가 대전환의 비전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미래 지역발전 동력을 찾아 ‘전북 대전환’의 발판을 놓아야 할 때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집안싸움은 공멸의 길이다. 새만금은 지금도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실현 가능성마저 불확실한 뜬구름 잡기식 청사진에 매달리기 앞서 지역상생의 길부터 찾아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5.13 12:47

‘ONLY 전북’ 특성화·차별화가 경쟁력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대전환의 시대’다. 디지털 전환을 넘어선 AI(인공지능) 혁명, 초고령사회 진입, 기후위기 등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낙오자가 되고,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전환’해야 한다. 관점을 바꿔 목표와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북이 그렇다. 소외와 차별, 낙후라는 단어에 익숙해진 ‘상실의 시대’를 묵묵히 버텨온 전북만큼 대전환의 필요성이 큰 곳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생각부터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ONLY 전북’이어야 한다. 글로벌시대, 지역 경쟁력은 특성화·차별화에서 나온다. 오직 전북만이 할 수 있는 것, 전북이 더 잘할 수 있는 것, 전북이 해야 하는 것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 이후 이미 여러 걸음을 뒤처진 상태에서 기를 쓰고 따라가봐야 맨 앞에 서기는 어렵다. 간신히 뒤쫓아가면 상대는 또 저만치 멀어져 있을 게 분명하다. 중앙을 향해 소외와 차별을 하소연하며 ‘우리도~’를 외쳤던 그간의 행보에서 벗어나 ‘우리만~’을 찾아보면 어떨까. 전북이 수십년간 공들여온 약속의 땅 새만금은 지금 ‘ONLY 전북, ONLY 새만금’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차별화된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백화점이 됐다. 관광산업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스마트팜, 바이오, 방위산업, 2차전지 등 다방면에서 ‘백화점식 전략’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의료용 대마산업(헴프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면서 새만금에 ‘헴프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전북특별자치도가 관련 산업 육성 방안을 모색하는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공력을 들여 추진했다가 헛발질로 끝난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새만금이 선명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핵심 산업을 찾기 어렵다. ‘지금 전북, 그리고 새만금이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다’는 반박도 있다.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적어도 ‘새만금’ 하면 떠오를 수 있는 앵커산업은 정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선 8기 전북특별자치도가 내세운 ‘대한민국 농생명산업 수도’ 비전은 타당하다. 더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 농생명산업의 수도 전북,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고, 구매할 수 있는 음식이나 지역 한정 상품이 있다면 어떨까? 일본 3대 맥주로 꼽히는 ‘삿포로맥주’의 본고장 홋가이도에는 이곳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특별한 맥주(삿포로 클래식)가 있다. 수요가 늘면서 점차 판매처가 확대됐지만 생맥주로 마셔보려면 지금도 꼭 현지까지 가야 한다. 맥주 말고도 홋가이도에서만 살 수 있는 한정판 상품이 적지 않다. 이런 지역 한정판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의 또 다른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아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전북 대전환’의 발판이 마련됐다. 전북이 ‘2036년 올림픽 대한민국 후보도시’ 로 선정됐다. 무엇보다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 새로운 도전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북이 골리앗 서울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방도시 연대라는 차별화 전략에 있었다. 이제 국제무대에서의 올림픽 유치 전략도, 지역발전 전략도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차별화해야 한다. 조기 대선 여부를 결정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1년 후엔 지방선거도 있다. 전북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살펴봐야 할 때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육성할 ‘ONLY 전북’, ‘ONLY 전주’ 전략과 이행 방안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3.25 15:18

‘페넬로페의 베짜기’ 새만금, 언제까지⋯

“이 베를 다 짤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 페넬로페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렸다. 그녀의 남편인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10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닷길에서 다시 10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그 사이 구혼자들의 등쌀을 견뎌내기 어려웠던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기 시작했고, 이 베짜기가 끝나면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고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짜놓은 베를 풀어버린 후 다음날 다시 짜기를 반복했다. 여기에서 ‘페넬로페의 베짜기’라는 말이 나왔다.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는데도 끝나지 않는 일’, ‘언제 끝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을 가르킨다. 새만금이 꼭 그렇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役事)’라는 수식어 속에 1991년 첫 삽을 뜬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본계획은 바뀌고 또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실현될 것 같은 장밋빛 청사진이 발표돼 잔뜩 기대를 품으면 어느 순간 슬그머니 풀리면서 다시 처음이다. 법정다툼과 사업 추진체계 변경도 잦았다. 관할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정권이 8번이나 바뀌었다. 선거 때마다 새만금은 전북지역 단골 공약이었다. 매번 각 정당 후보들이 장밋빛 청사진을 앞다퉈 내놓았다. 역대 정권의 공약이 말잔치로 끝났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이다. 말만 국책사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임기 내에 새만금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했다. 믿지 않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정부가 새만금잼버리 파행을 빌미로 새만금 SOC 적정성 재검토와 기본계획(MP) 재수립 절차에 들어가면서 다시 시간을 허비했다. 사업을 중단하고 8개월에 걸쳐 추진된 SOC 재검토 결과 ‘사업 적정성’이 입증됐다. 공항과 철도, 도로 등 새만금 SOC 사업이 모두 적정하게 추진된 것으로 재차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사업 지연의 책임은 물을 길이 없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다시 새만금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번엔 국제공항이다. 지난해 말 발생한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가 도화선이 됐다. 사고 직후 무안공항 주변이 철새도래지라는 점을 들어 입지선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화살은 지방공항의 열악한 시설과 적자운영 실태를 지적하는 쪽으로 향했고, 결국 새만금국제공항을 비롯해 아직 첫 삽도 뜨지 않은 지방 신공항이 타깃이 됐다. 급기야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등 7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전국 신공항백지화연대’가 10일 국토교통부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의 공항은 필요없다’며 신공항 건설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생태계 파괴와 경제성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본궤도에 오른 새만금 핵심 SOC사업이 정부의 사업 적정성 재검토 절차를 통과한 지 1년도 안 돼, 그것도 올해 착공을 눈앞에 두고 다시 살얼음판이다. 물론 조류 충돌 위험성 등 ‘안전’ 문제는 몇 번이라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지방 신공항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는 성급한 판단은 안될 일이다. 올해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여야 후보들이 전북 공약으로 다시 새만금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0년을 훌쩍 넘긴 미완의 사업인데다 시급한 현안이 많아 지자체와 지역정치권에서도 이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안타깝다. 전북이, 전북도민이 새만금에 발목을 잡혔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전북의 현안 과제에서, 그리고 주요 선거공약에서 새만금을 찾아볼 수 없게 될 날을 기다린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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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2.11 16:45

늘어나는 공립학원, 전북 ‘교육협치’ 갈 길 멀다

겨울의 길목, 다시 입시철이다. 이 계절이 오면 지역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사실 다수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학교교육을 받는데 기초적으로 필요한 학습능력을 뜻하는 기초학력은 국가 차원의 진단평가를 통해 통계를 내고, 이를 지역별로도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학력신장 공약을 내건 교육감들의 정책도 대부분 기초학력 향상에 집중된다. 하지만 정작 학부모들이 지적하는 학력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른바 명문대 합격생 수를 비교한 평가지표를 들어 학력 신장을 강조한다. 결국 입시성적을 문제삼는 것이다. 교육청 대신 지자체가 학부모들의 요구에 직설적으로 응답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지난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으뜸인재육성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에는 전주를 제외한 도내 13개 시·군이 참여했다. 지역 중‧고교생 가운데 소수의 성적우수자를 뽑아 모아놓고 외부 학원강사를 초빙해 입시교육을 시키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순창군이 지난 2003년 전국 최초로 설립한 기숙형 공립학원 옥천인재숙은 공교육의 본질과 형평성을 훼손한다는 거센 비판 속에서도 지자체 교육사업의 모델이 됐다. 이후 전북에서는 으뜸인재육성사업과 연계해 김제 지평선학당과 임실 봉황학당이 설립됐다. 이처럼 소수의 학생을 뽑아 수도권 전문학원에 위탁해 입시교육을 하거나 아예 공립 입시학원까지 설립해 운영하는 방식의 지자체 인재육성사업은 숱한 논란을 불렀다. 그런데도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이 그 토대다. 농촌지역에서는 ‘교육문제로 인한 인구유출을 막고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명분까지 보태지면서 더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지자체의 인재육성사업은 갈수록 확대‧강화되고 있다. 남원시는 시장 공약사업인 ‘남원 인재학당’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2026년 개관해 전국 최고의 공립학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전북에서는 순창·김제·임실에 이어 4번째다. 2022년 행정안전부 지방소멸대응기금 공모사업에 선정돼 150억원의 기금도 확보했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지자체의 공립학원 운영 명분은 더 강해졌다. 앞으로 농촌지역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한 공립학원 설립 계획이 잇따라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공교육기관을 외면한 채 한 해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수도권 전문 입시학원에 위탁해 수월성교육·입시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은 여전히 문제가 있다. 민선 8기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자체와의 교육협치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민선 8기 출범 2년이 넘었는데도 으뜸인재육성사업을 놓고 지자체와 교육청의 소통·협력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올해 교육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전북특별자치도와 도내 11개 시·군이 추진하는 교육발전특구 사업도 지자체와 교육청, 대학, 지역 공공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다. 당장 접점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모두 지역의 미래인 우리 학생들을 위한 일이다. 몇몇 지자체가 교육청을 제쳐놓고 직접 교육사업을 수행하겠다며 수도권 유명 입시학원과 손잡고 공립학원을 세우면서 지역사회 교육행정의 주체와 교육목표가 둘로 갈라졌다. 교육협치는 이 문제를 풀어내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교육청도 지자체의 공립학원 운영에 대해 분명하게 견해를 밝혀야 할 것이다. 공교육의 가치를 지켜내면서 지역주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북형 교육협치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선 8기 교육감과 지자체장들이 소리 높여 외친 교육협치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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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11.26 18:04

“제발 엄벌해 주세요”⋯ ‘모범시민’의 나라를 위해

#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렇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영화는 처음이다. 올 추석 가장 뜨거웠던 한국영화 ‘베테랑2’ 얘기다. 영화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악인을 직접 응징하는 ‘사적제재(私的制裁)’ 실행자와 동조자를 최종 빌런으로 설정하고, 뻔한 ‘정의구현’으로 끝을 맺는다. 10여년 전 강렬한 기억을 남긴 미국 영화 ‘모범시민(Law Abiding Citizen)’이 떠오른다. 불합리한 사법시스템에 분노한 남자의 치밀한 복수극을 담은 액션 스릴러다. 주인공은 범죄자를 무자비하게 처단하고, 연루된 판사와 검사‧변호사를 조롱하면서 사법체계의 결함과 모순을 꼬집는다. 세상을 향한 통쾌한 복수극으로 치닫던 영화는 예상치 못한 불편한 결말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절차적 정의’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반면 ‘베테랑2’는 결말이 명료하다. 얼핏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해놓은 답에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불편했다. # “딸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부디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세요.” 고가 외제차 운전자의 159km 음주‧과속 사고로 열아홉 살 딸을 떠나보낸 유족들이 지난 8월 말 전주지법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울음을 쏟아냈다. 사고 직후 가해자는 법망의 빈틈을 노렸다. 음주 측정을 방해하기 위해 이른바 ‘술타기 수법’을 사용했고, 검찰은 범죄자의 음주 수치를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최저치로 낮춰야 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노련한 범죄자들이 악용하고 있다. ‘초범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신혼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는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 물론 일면만 들춰내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눈높이에서 그렇다. 정말 온갖 사정을 다 챙겨주며 선처와 감형을 아끼지 않는다. 사형제도도 사실상 폐지했다. 관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법부의 판단이 끝나도, 행정부가 남발해온 면죄부, 사면·복권 제도가 남아있다. 속이 터진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억울한 피해자들이 자신을 해한 범죄자의 출소 후 보복을 두려워하며 발을 뻗지 못한다. 저지른 범죄에 비해 너무나 일찍 출소한 흉악범·성폭행범들로 인해 주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범죄자 인권보호에 부족함이 없는 나라다. 상식 밖의 판결을 받아들고 가슴을 치며 세상을 원망하는 피해자, 유족들이 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사적제재(私的制裁)’를 소재로 한 TV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져 나오더니, 정의구현을 표방하며 이를 현실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유튜버들이 늘어 논란이 됐다. 사법기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댔다. ‘사법 불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잔뜩 벼르고 있었을 것이다. 공권력과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사적제재는 엄연한 불법이다. 정당화하거나 영웅시할 일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대중이 이런 불법행위에 열광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범죄자에 대한 사법기관의 처벌 수위가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 울분이 터져나와도 응답은 없다. 우리 국민 모두는 너무 쉽게 사회로 돌아온 범죄자들의 누범으로 인한 제2, 제3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선 대법원 양형기준부터 국민 법감정에 맞춰 대폭 손질해야 한다. 천인공노할 범죄자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그 뒤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이 피울음을 삼키는 모습을 보며 이 땅을 떠나고 싶은 모범시민이 더 늘어나기 전에 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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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10.01 13:45

기후대응댐 논란과 전북의 물그릇

정부가 다시 대규모 댐 건설을 추진한다. 14년 만이다. 기후위기 시대, 극한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미래 물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새로운 물그릇이 필요하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이런 취지에서 새로 건설할 댐을 ‘기후대응댐’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최근 신규 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했다. 논란이 뜨겁다. 해당 지역에서는 환영과 우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전북은 빠졌다. 만경강과 동진강, 그리고 금강·섬진강 상류를 품고 있는 전북에 댐 후보지는 없다. 당장 환경문제와 주민 동의 여부 등을 놓고 예상되는 논란과 갈등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편치 않다. 환경부가 지난해 댐 신설 계획을 발표한 후 전국 17개 지자체가 일찌감치 댐 건설을 신청했는데 전북에서는 단 한 곳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놓고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최근 수년간 전북 곳곳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적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우선 기후대응댐이 과연 예측 불가능한 극한기후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시대에 역행하는 환경정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에서 소외된 전북의 대응이 연상된다. 당시 전북도는 ‘만경강 전통뱃길 복원’과 ‘금강~만경강 물길 잇기’ 등 다수의 하천정비 사업을 발굴해 국가정책에 반영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헛심만 쓴 채 물거품으로 끝났다. 그렇다고 전북이 한반도 수자원 개발의 역사에서 소외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세기까지만 해도 대규모 수리시설이 밀집된 수자원 개발의 중심지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도 전북에 있다. 한반도 농경문화의 발상지인 전북은 지리적으로 물이 풍족한 고장이 아니다. 전북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의 유량은 수요에 한참이나 모자란다. 그래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의 상당량을 금강·섬진강 수계에서 끌어쓰고 있다. 댐을 세워 물길을 돌리는 유역변경 프로젝트는 20세기 초에 시작됐다. 일제(日帝)의 쌀 수탈 정책과 맞물린다. 일제는 호남평야 식량 증산을 위해 남해로 향하는 섬진강 물줄기를 서쪽(동진강 상류)으로 돌려 농업용수로 썼다. 그리고 이런 목적에서 건설된 섬진강댐(옛 운암댐)과 칠보수력발전소는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와 군산·익산·정읍·김제·완주 등 전북 주요 도시의 생활용수와 농·공업용수도 금강 수계에서 끌어쓰고 있다. 장수군에서 발원해 충청지역을 휘감고 돌아 군산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금강의 물길을 상류인 진안에서 막아 2001년 용담댐을 건설했다. 그리고 도수터널을 통해 이 거대한 댐의 수자원을 만경강 상류 완주군 고산면으로 끌어내 전주권 광역상수원으로 쓰고 있다. 전북에는 용담댐·섬진강댐과 부안댐·대아댐·동화댐·동상댐을 비롯해 금강호·경천저수지·청호저수지·동림저수지 등 큰 물그릇이 곳곳에 있다. 게다가 섬진강댐은 10여년에 걸친 재개발 사업(2007~2018년)을 통해 물그릇을 키웠다. ‘물 부족’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지만 ‘물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 주요 하천의 물길을 돌린 탓이다. 금강과 섬진강 유역 도시에서 가뭄·홍수 등 물 문제가 불거지면 잠재된 지역 간 물 갈등이 불쑥 터져나올 수 있다. 환경 논란에 더해 지역사회 내홍이 불가피한 신규 댐 사업에 미련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곧 다가올 기후재난과 지역 간 물 분쟁에 대응해 기존의 물관리 시설과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부터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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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08.06 13:53

‘현대판 송덕비’ 난립⋯ 염치를 내던진 사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기자들에게 종종 했다고 알려진 말이다. 이 발언은 훗날 그의 생애를 조명한 책의 제목으로 쓰이면서 유행어처럼 세간에 회자됐다. 발언의 취지와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자신의 공적과 과오에 대한 평가를 당대가 아닌 사후(死後)에 받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후세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명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북 김천시가 일찌감치 그의 이름을 따서 조성해놓은 거리를 놓고도 논란이다.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가운데 거액의 세금을 들인 김천시는 철거 여부에 대한 결론을 쉽사리 내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을 아끼며 선정을 펼친 관료의 공을 기리기 위해 그가 떠난 후 마을 사람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지금도 이 송덕비가 다양한 형태로 세워지고 있다.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곳곳에 기념비를 남긴 인물이 후세에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재평가를 받아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로 동시대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급하게 포장해서 내세우는 생존 인물 선양사업이 곳곳에서 넘쳐난다. 심지어 스스로 송덕비를 세우기도 한다. 선거철이면 낯뜨거운 대필 자서전이나 일대기를 내놓고 출판기념회까지 여는 게 관례가 됐다. 자화자찬이 도를 넘어 읽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책도 있다. 과거 선조들이 중시했던 ‘겸양지덕(謙讓之德)’은 찾아볼 수 없다. 지자체까지 나서 예산을 쏟아붓는다. 지역 출신 유명인을 내세워 고장을 홍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의도다.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생가복원 사업을 하고, 동상이나 흉상을 세우고, 거리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 사람이 죽기 전에 어떤 흉측한 일에 연루될지, 사회적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북지역 지자체도 예외는 아니다. 군산시는 수년 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지역 출신 고은 시인 선양사업을 추진하다 홍역을 치렀다. 시인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의 이름을 딴 각종 문화사업과 생가복원 사업을 중단했고, 이미 건립된 시비 철거 요구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지역의 자랑으로 여겨 애써 발굴하고 포장했던 인물의 흔적이 어느 순간 지워야 할 얼룩이 된 것이다. 논란이 일지는 않았지만 정읍과 김제·임실 등 몇몇 지자체에서도 현재 활동 중인 지역 출신 유명 가수의 노래비와 효열비를 세우고, 시인의 생가를 복원해 지역의 명물로 내세웠다. 지자체가 이 같은 선양사업을 추진하면서 당연히 당사자와 먼저 상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말렸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극구 사양한 사람은 밀려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만 대중에게 부각된 꼴이 됐다. 이런 낯뜨거운 선양사업에 못 이긴 척 편승해 은근히 즐기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낮추는 겸양의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기억되고 추앙받을 자격이 없다. 결국은 지자체가 자격도 없는 사람을 지역의 자랑으로 내세우는 일에 혈세를 쓴 것이다. 세상을 호령한 권세가의 무덤에 침을 뱉는 것보다 저잣거리 필부(匹夫)를 상대로 면전에서 험담을 하는 게 더 어렵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송덕비를 세우거나 일대기를 펴내는 일을 삼갔다. 혹시 주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해 세상이 몰랐던 어두운 면이 사후에 드러나지 않을까 신중하게 살폈던 것이다. 지자체에서 성급하게 세워놓은 ‘현대판 송덕비’의 당사자는 이를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면서 언행에 더 신중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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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06.18 15:21

인구절벽 시대, ‘학교 재배치’ 지역사회 공론화를

농어촌 작은 학교인 부안 하서초등학교에서는 24일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부안군 하서면 지역의 3개 학교를 합쳐 새롭게 문을 여는 ‘통합 개교식’이다. 하서면에 있던 기존 하서초와 백련초, 장신초 등 3개 초등학교가 하나로 합쳐 지난달 새 학기를 함께 시작하고, 이날 기념행사를 열게 된 것이다. 이들 3개 학교 통합은 교육청이 아닌 지역주민 주도로 차근차근 추진됐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지난 2011년 하서면 주민들이 교육청에 학교 통합을 요구했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의지를 확인한 교육청에서 행정절차에 나섰다. 그리고 올해 예정대로 통합학교가 문을 열었다. 통합학교 부지는 접근성이 좋은 장신초, 교명은 지역의 정체성 유지 측면에서 하서초로 결정됐다. 남원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존폐 위기에 몰린 농촌 작은 학교 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공간적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대상 학교는 대강중, 수지중, 금지중, 송동중으로 학교명과 같은 이름의 4개 면 지역에 딱 하나씩만 있는 중학교들이다. 이 중 수지중학교는 당장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먼저 송동중학교에 통합됐다. 인접한 2개 학교가 통합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돼 재통합을 추진해야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권역을 넓혀 ‘거점형 학교’를 조성, 육성하겠다는 게 교육청의 방침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학교의 위기는 농어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도시로의 인구이탈이 계속되는 원도심지역 학교도 처지가 농촌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심 작은 학교로 전락한 전주 완산초와 곤지중은 지난해 하나로 합쳐 초‧중 통합 운영 학교가 됐다. 전주지역 중학교의 경우 학교 간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다. 교육청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선호도가 낮은 학교의 학급 수를 줄이고, 지원자가 많은 선호 학교의 학급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코시티와 혁신도시 등 택지개발지구에서 과대‧과밀학교가 속출해 원도심 학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작은 학교 통폐합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줄곧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학교 통폐합이 지역공동체 붕괴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학교와 상관없이 지방도시는 소멸 위기를 맞았다. 이제 학교를 넘어 지역 소멸을 먼저 걱정해야 할 판이다.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안도 없이 작은 학교 통폐합을 금기어로 내세운다면 이렇다 할 처방조차 내놓지 못한 채 ‘출구 없는 소멸’로 갈 수도 있다. 인구절벽 시대, ‘학교의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폐교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농어촌과 원도심지역의 작은 학교 통폐합에만 집중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역의 교육여건을 다각도로 검토해 학교 재배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 운영 자체가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통폐합을 추진하기보다는 지역의 모든 학교를 폭넓게, 멀리 보면서 학교 재배치 방안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 지역 내 학교 불균형 문제와 지역공동체의 지속성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일찌감치 예고된 ‘학교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사회 공론화 절차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숱한 논란과 날선 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다고 애써 피하거나 배척할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소멸 위기를 맞은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다. 이제 교육청과 지자체, 학교‧학부모‧지역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학교 재배치와 폐교 활용 방안 등을 차근차근 논의해야 할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4.23 10:19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 이대로 버려둘텐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한반도의 곡창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 근대 수리시설이기도 했다. 남해로 향하는 섬진강의 수자원을 상류에서 댐으로 막고, 호남평야 동진강으로 끌어내 서쪽으로 물길을 바꾼 유역변경식 발전소다. 한반도 근대 농경사를 대변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간 방치됐다.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지자체에서도 보존·관리에 손을 놓았다. 그러는 사이 입구에 잡목과 가시덩굴이 우거져 진입조차 어려운 흉물이 됐다. 섬진강댐 옥정호를 끼고 호반도로를 달리다 정읍시 산외면 쪽으로 방향을 돌려 산길을 가다 보면 호남평야의 젖줄 동진강의 첫물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물길을 따라가면 발원지에서 멀지 않은 곳,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산기슭에 덩그러니 서 있는 빛 바랜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난다. 옛 운암발전소다. 1931년 준공된 이 발전소는 1985년 그 역할을 인근 칠보수력발전소에 넘겨주고 폐쇄됐다. 일제(日帝)는 호남평야 식량 증산을 위해 섬진강 옥정호의 물을 동진강 상류로 끌어냈다. 동진강의 본래 물길은 정읍시 산외면 묵방산 7부 능선 여우치마을의 빈시암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길은 작은 개울의 형태로 산기슭을 내려오다 운암취수구를 통해 옥정호의 물이 유입되는 지점(팽나무교)에서 유량이 크게 불어난다. 과거 운암발전소에서는 이곳 취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을 도수터널로 이동시켜 발전에 사용하고 동진강에 방류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성이 높다. 등록문화재는 개화기 이후의 근대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기 위해 2001년 도입된 제도로, 전북에서도 일본식 건축물과 옛 기차역, 근대 한옥 등이 속속 등록됐다. 운암발전소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읍시에서 문화재 등록 방안을 수차례 검토했다. 2022년에도 지역 역사문화자산 활용방안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운암발전소 현지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발전설비가 남아있지 않고 건물 내부도 훼손돼 문화재 등록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한국전력은 1987년 운암발전소를 민간에 매각했고, 어느 종교단체에서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다 중단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상태로 장기간 방치돼 있다. 하지만 유역변경식 발전소의 상징 시설인 도수터널과 수압철관의 흔적은 건물 뒷편 산기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 핵심 설비인 발전기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강수력본부로 옮겨져 전시 중인 것으로 드러나 필요시 회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건물 출입구에는 운암발전소라고 한자로 쓰인 명판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고대 수리시설인 김제 벽골제와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 그리고 이 댐의 수자원을 끌어내 발전에 사용한 뒤 호남평야·계화도간척지까지 흘려보내는 칠보수력발전소와 동진강 도수로, 영농기 풍년농사 기원 통수식이 열리는 동진강 낙양취입수문 등 주변에 한반도 농경사를 대변하는 시설물이 집적돼 있다. 이들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 한반도 농경문화 체험·교육 공간이자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우선 옛 운암발전소 관리대책이 급하다.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이 어렵다면 ‘정읍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또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매입해 인근의 농경문화유산과 연계한 역사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남한 최초의 수력발전소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근대 수자원 개발, 그리고 농경사 측면에서도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전북의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이다. 시각을 넓혀 보존·활용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더 늦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2.27 16:36

특별자치도 시대 전북, 정말 특별해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전북이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과 권한이양, 그리고 강화된 자치권을 토대로 지방분권,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기회의 땅’이 됐으면⋯. ‘더 잘사는 전북’의 꿈을 차근차근 실현하면서 도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줬으면⋯. 그래서 기나긴 낙후의 터널 속에서 맞닥뜨린 지역소멸 위기에서 벗어나 ‘전북 대전환’의 시대를 열었으면⋯. 새해 전북은 ‘전북특별자치도’가 된다. 오는 18일부터다. 전북도는 새로운 출발의 원년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새해 도정 사자성어를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정하고, 10대 역점시책 첫 순위로 ‘특별한 100년을 향한 전북특별자치도 개막’을 꼽았다. 그런데 도민은 별 관심이 없고 지자체만 바쁘다. 각종 표지판과 공문서, 행정정보시스템 등 바꿔야 할 게 적지 않다. 출범식을 앞둔 17일에는 도청광장에서 성대한 전야행사를 열어 새로운 전북, 특별한 전북을 맞을 계획이다. 정말 특별해질까? 추가 재정지원과 각종 규제완화, 행정특례 등을 통해 지역발전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특별자치도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지난해 말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 생명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온통 장밋빛 청사진이다. ‘글로벌 생명경제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기존 법률을 전부 개정해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반영한 131개 조문 333개 특례를 담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모자란다. 중앙정부로부터 다양한 재정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재정특례’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특별법에 핵심이 빠졌다. 국가의 책무를 명시한 조항(제4조)은 선언적 의미만 담고 있다. 전북도는 18개 사업에 대해 국가 재정지원을 명시함으로써 향후 개별사업 추진에 실효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했다. 하지만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표현한 임의규정이다. 지원하지 않아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원대한 꿈만 꾸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정부의 정책적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방시대’는 말뿐이고, 여전히 수도권 1극체제에 매몰돼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기대하기 어렵다. 자치권 강화도 과제다. 제주와 강원·전북 모두 특별자치도 특별법 제1조에 ‘고도의 자치권 보장, 실질적인 지방분권 보장’을 그 목적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다. 특별자치도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특별법이 아닌 헌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보장해 모든 시·도의 자치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전북은 서울을 제외하고, 제주(2006년)와 세종(2012년), 강원(2023년)에 이은 4번째 특별광역자치단체다. 대한민국에 5개 메가시티(수도권,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청권)를 육성하고, 여기에 끼지 못한 3개 권역(제주·강원·전북)을 특별자치도로 지정하는 정부 ‘5극 3특’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기도 하다. 막차를 앞둔 전북은 절실했다.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에서 지자체와 지역정치권이 지난 2년간 특별자치도에 매달렸다. 그렇게 특별자치도가 됐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 특별한 기회가 곧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열어야 한다. 인구절벽 시대, 대한민국에서 수도권을 벗어나면 모두 벼랑이다. 더 특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출향인을 포함한 500만 전북인의 결집된 힘을 토대로 지자체와 지역정치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우선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일꾼을 뽑아야 한다. 도민의 역할이 막중하다.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을 이번에는 깨뜨려야 한다. 소중한 국민의 권리를 특정 정당에 통째로 맡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특별한 전북’시대를 열기 위해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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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01.09 13:37

‘좋은 게 좋은 것’? …학생 해외연수의 목적

“아이들에게 바다 밖 세상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전주교육지원청의 학생 해외연수 확대 계획에 적극 동조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맞다. 글로벌 시대, 해외연수는 청소년들이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도전정신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 기회다.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주장을 부인하기 어렵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는 관용구가 있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면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는 의미가 있다. 학생 해외연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꼭 그렇다. 사업을 시행하는 교육청도, 수혜자인 학생‧학부모도 모두 만족스러워 한다. 사업의 효과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포장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해외연수 열풍이 불었다. 정치인‧공무원‧시민단체‧언론계‧농어민까지 너도나도 명분을 만들어 해외로, 해외로 나갔다. 모든 난제의 답이 바다 밖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꼭 필요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연목구어(緣木求魚)’도 적지 않았다. 결국은 스스로 문제점을 드러냈고, 관행이 된 외유성 해외연수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학생 해외연수는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공약사업으로 올부터 본격 시행됐다. 올해는 도교육청과 각 시‧군교육지원청에서 약 2500명을 해외로 보냈다. 최근 진행된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의 시‧군교육지원청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단연 해외연수가 화두였다. 하지만 의원들의 관심은 업체 선정과 관련된 낙찰차액 등 예산 집행 문제에 집중됐다. 해외연수의 취지 및 성과와 관련된 프로그램의 적절성과 사업 추진 방식은 관심 밖이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사실 학생 해외연수 지원사업은 전북도가 10여년 전부터 시행해 왔다. 당시 김완주 전 지사의 ‘글로벌 인재양성’ 공약에 따라 출연기관인 전북인재육성재단이 2007년부터 각 시‧군과 함께 시행한 ‘글로벌체험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의 관심이 대단했던 만큼 연수생 선발과 업체 선정, 연수 프로그램, 연수생 사후관리 등을 놓고 잡음도 많았다. 어쨌든 이 사업은 2019년까지 시행된 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다. 그리고 올해 전북교육청이 학생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역점 시행하면서 전북도는 사업추진의 명분과 동력을 잃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1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오면서 해외 교육기관과의 교류협약을 비롯해 학생관리 등의 분야에서 노하우와 인프라가 쌓였을 것이다. 이 같은 소중한 자산을 지자체가 교육청에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해마다 전북지역 초‧중‧고교생 수천 명이 해외로 나가게 된다. 전북도의 글로벌체험 해외연수가 그랬듯이 여러 잡음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만족도가 높다고 해서 수혜 학생 늘리기에만 치중할 일이 아니다. 우선 학생 안전과 효육적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해외연수 지역 교육기관과의 교류협약(MOU)부터 서둘러야 한다. 절차가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 교육기관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연수를 해마다 진행해서야 되겠는가. 또 각각의 방식으로 해외연수 사업을 시행해 온 시‧군교육지원청의 관계자들이 모여,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문제점 해결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교육청 담당자가 열정적으로 나서 해외 교육기관과 직접 MOU를 체결하고 홈스테이를 성사시키면서 업체의 역할을 최소화한 모범사례도 있다. 아울러 10여년 전 각 시‧군마다 우후죽순으로 세워놓고, 해외연수 대체 프로그램까지 운영했지만 이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 영어체험학습센터 활성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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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11.21 11:19

지방 없는 지방시대, 그리고 지방시대위원회

마을 어귀, 명절이면 어김없이 줄지어 내걸렸던 귀성객 환영 현수막이 크게 줄었다. 정치인들의 낯내기용 명절 인사 현수막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표 계산에 도가 튼 정치인들의 셈법이니 그 이유가 분명하다. 고향을 찾은 차량들로 빈틈이 없었던 마을 정자나무 앞 공터엔 찬바람만 지나간다. 그렇게 한가위 연휴가 훌쩍 지나갔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농어촌의 명절 풍경이 또 달라졌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일찌감치 수도권으로 떠나고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농어촌 마을에 명절의 흥은 없었다. 이맘때, 그래도 며칠간은 마을이 떠들썩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남아 있는 주민이 줄어드니 귀성객의 발길도 점차 끊어질 수밖에 없다. 예정된 수순이다. 지방의 사람과 재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된 수도권이 흡인력을 키우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렸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이 블랙홀을 키우면서 균형발전을 외쳐댔다. 대규모 SOC사업은 수도권에 집중됐고, 수도권 신도시는 3기, 4기로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 지방 살리기, 균형발전은 항상 말뿐이었다. 어렵사리 시작된 지방도시 SOC사업은 제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공사 중단과 속개를 반복하기 일쑤다. 공사 중인 도로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건설장비가 녹슬어간다. 인구절벽 시대, 각 지자체는 성과 없는 인구 늘리기 시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효과를 과대 포장한 관계인구‧생활인구 늘리기로 출구전략을 세우더니,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 이민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가 지난 7월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 국정목표인 ‘지방시대’ 정책의 컨트롤타워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부산과 울산, 대전, 충북, 경남, 제주특별자치도 등 각 시‧도에서도 속속 지방시대위원회를 발족했다. 전북에서도 지난달 13일 ‘전라북도 지방시대위원회 운영 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했으니 위원회 출범이 목전에 있다. 지방시대위원회가 지역균형발전, 지역분권시대 개막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부터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구조다. 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구로 확정된 탓에 그 한계가 분명하다. 국가균형발전, 지방시대를 약속했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와 GTX(수도권 광역 급행철도) 확대, ‘1기 신도시 특별법’ 추진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사실상 지방시대가 아닌 수도권 확장 시대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방시대위원회가 기껏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정도의 기능으로 지방분권‧균형발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 시‧도 지방시대위원회의 역할에는 더 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가 위촉한 민간위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보여주기식 구색 맞추기에 노력한 흔적만 보인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권에 명분만 안겨주는 유명무실한 기구로 남을까 걱정된다. 행여 전문성과 관계없이 개인의 스펙쌓기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덥석 위원직을 수락했다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 민간위원들이 중앙정부를 향해 날선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지방 몫으로 위촉된 위원들은 이 허울뿐인 감투를 언제든 집어던질 각오로 나서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것이다. 신도시 정책 등을 통해 수도권 블랙홀을 키우면서 국가 균형발전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수도권 확장을 억제하고, 지방에 책임이 아닌 권한을 대폭 이양해 ‘지방이 주도하는 지방시대’를 열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10.03 14:58

잼버리 파행, 지방 겁박하는 여당⋯‘견강부회’ 멈춰라

끝났다. 시작하자마자 가슴 졸이며 남은 날짜를 세어야 했다. 파행으로 얼룩진 ‘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2일 마무리됐다. 한여름밤의 악몽이었다. 망신살이 뻗쳤다. 국민 몫이 된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끝났지만 끝맺지 못했다. 이제 기한 없는 책임규명의 시간이다. 여야 정치권의 ‘네 탓 공방’이 격화되면서 새만금사업이 통째로 소환되고 있다. 새만금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1991년 대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 때도, 2010년 33.9km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준공했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여권에서는 작정하고 지방정부 책임을 부각하고 있다. 전북이 잼버리를 핑계로 새만금 SOC 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잼버리 팔아 지역예산 챙긴 대국민 사기극’ 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이때다 싶었는지 온라인에서는 지역비하‧혐오 발언이 쏟아진다. 견강부회(牽強附會)다. 전북도가 잼버리 유치에 나서면서 SOC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기폭제로 삼겠다는 의도와 기대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만금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봤다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국책사업인데도 예산 지원이 항상 쥐꼬리였다. 착공 30년이 넘었는데도 현장은 거친 모래바람뿐이다. 일정 부분 사업에 탄력을 받았겠지만 잼버리를 핑계로 고속도로와 내부 간선도로, 국제공항, 신항만 등 새만금 SOC 사업에 천문학적 예산이 부당하게 투입됐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들 SOC 사업은 잼버리와 관계 없이 정부가 확정한 새만금종합개발계획(MP)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여당이 전북도에서 잼버리를 이유로 건설을 요구했다고 주장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의 경우 30여년 전부터 추진된 ‘새만금~포항 동서횡단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대구~포항 등 일부 구간은 이미 개통했고, 새만금~완주 구간(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은 오랜 절차를 거쳐 2018년 5월 착공했다. 이후 전북도가 정부에 조기 개통을 요청했다. 2024년 말 완공 예정인 만큼 잼버리 이전에 새만금에서 서해안고속도로 분기점까지의 구간만이라도 조금 앞당겨 개통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자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거듭 약속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조기 개통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없고 뺨만 맞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27일 “새만금 잼버리가 전북 발전의 촉진제가 될 수 있도록 잘 챙기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한민국의 미래가 새만금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새만금사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는 금세 등을 돌린다. 불과 10여일 만에 180도로 얼굴을 바꾼 여당의 태도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수도권공화국의 위정자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국가균형발전, 지방시대를 외치던 그들이 ‘중앙정부를 비난한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없다’면서 지방정부를 겁박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항상 빈손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권 중심의 국가운영 기조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단언컨대 이런 식이면 이번 정부에서도 균형발전은 없다.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놓고 정쟁이 치열하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원인을 밝혀 책임을 따지고, 상응하는 조치도 내려야 한다. 당연히 전북도에서도 잘못한 부분은 무겁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든 총체적 부실‧파행이 어찌 한 두 곳만의 책임일까. 책임회피 의도가 엿보이는 권력집단의 견강부회식 주장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된다.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8.15 15:19

학교복합시설 사업, 지역사회 새 활력소 되길

저출산·고령화 시대, 학교의 위기가 심각하다. 농어촌에서는 신입생이 아예 없는 학교가 해마다 늘고 있다. 도시의 옛 중심이었던 원도심 지역도 다르지 않다. 과거 거대·과밀학교로 ‘살 빼기’를 고심해야 했던 원도심 명문 학교들이 작은 학교로 전락해 통폐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도시 외곽으로 주거지역이 확산되면서 원도심은 가파른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학교의 위기가 지역공동체 붕괴를 앞당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학교와 상관없이 지역사회가 소멸위기를 맞았다. 이제 학교보다 지역공동체 붕괴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학교는 여전히 지역공동체의 중심 공간이다. 학교가 도시재생, 농어촌공동체 활성화의 거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교육청과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학교-지역사회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학교복합시설’ 공모사업에 관심이 쏠린다. 인구절벽 시대, 학교를 지역 상생 발전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해 학교 유휴공간에 수영장과 공영주차장·도서관 등 교육·돌봄, 문화, 체육·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학생과 지역 주민이 공동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이 기재부와 교육부·문체부·복지부·국토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2019년부터 ‘생활SOC 복합화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복합시설 공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사업을 추진해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학교에 설치된 시설은 생활문화센터와 공영주차장, 공공도서관, 국민체육센터, 다함께돌봄센터 등이 많았다. 주로 신설 학교와 원도심 학교가 대상이 됐고, 폐교 공간에 복합시설을 설치한 곳도 있다. 하지만 전북에서는 이 사업을 추진한 학교가 아직 한 곳도 없다. 다른 지역보다 학교와 지역공동체의 위기가 더 심각했지만 교육청도 지자체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업관계를 꺼렸던 것도 원인이다. 교육청과 지자체의 일시적 소통이 아닌, 지속적인 협력을 요구하는 사업인 까닭에 시설물 소유권과 관리·감독 책임 등을 놓고 벌어질 갈등을 미리 걱정했을 것이다. 지자체와 교육협치 체계를 구축한 전북교육청이 올해 들어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시·군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관계자, 학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복합시설 공모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조만간 ‘학교복합시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7월에는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희망 지역의 사업계획서를 받아 8월에 교육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3월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방안’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매년 40개교, 총 200개교에 학교복합시설 설치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인구감소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농어촌과 원도심 지역의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지역사회 거점 공간인 학교에서 시작돼야 한다. 학교복합시설 사업이 해법이 될 수 있다.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원도심 학교에 학생과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공공시설을 설치해 침체된 지역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 방치된 폐교 공간에 도서관·돌봄센터·체육관 등 교육시설과 주민 복지시설을 설치한다면 농어촌공동체에 새로운 활력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시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과정에서 교육기관과 지자체의 상시 협력시스템 구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전북교육청과 지자체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추진하게 될 학교복합시설 사업이 쇠락하는 원도심과 농어촌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6.27 14:18

시급한 ‘유보통합’, 전북에서 선도모델을

# 완주군 동상면에서는 2021년 10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완주군 공립 동상어린이집 개원식이다. 여느 농촌에서처럼 동상면에서도 공공보육시설 설립은 주민들의 숙원이었다. 완주군은 병설유치원이 있어 급식실 등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동상초등학교 내에 공공어립이집을 설립하기로 하고, 전북교육청에 거듭 협조를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결국 완주군은 모 기업의 지원을 통해 학교 인근에 시설을 건립했다. # 장수군 산서면에서는 2020년 1월 하나뿐인 어린이집이 원아부족으로 폐원 위기에 몰리자 학부모들이 나섰다. ‘폐원만은 막아달라’는 학부모들의 절박한 호소에 결국 장수군이 인건비를 지원하면서 어린이집은 가까스로 정상 운영될 수 있었다. # 2016년 6월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누리과정(만 3~5세 공통보육‧교육과정) 예산편성을 요구하는 어린이집 관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정부가 2012년 시행령을 개정해 어린이집 무상보육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편성토록 했지만, 전북교육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에만 교부금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 교육감은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예산편성 주체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 있다’면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고, 갈등은 커졌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함께 맡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관련 법률에 따라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유치원은 교육부와 교육청 관할로 이원화돼 교사 양성과 시설기준, 지원 및 운영 정책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이 같은 차이는 지역사회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갈등은 특히 전북에서 심했다. 김승환 전 교육감이 교육과 보육을 엄격히 구분지으면서 논란을 키웠다. 저출산‧고령화로 지역사회 보육 및 교육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법리해석과 논리다툼에 치중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윤석열 정부가 우리 사회 30년 난제인 ‘유보통합’을 본격 추진하고 나섰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나뉜 영유아 보육·교육 관리체계를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여전히 논란이 있고, 쟁점이 많아 2025년 본격 시행까지 험로가 예상되지만 가야 할 길이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다. 교육부는 올 초 유보통합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유보통합 선도교육청’ 운영계획을 내놓고, 지난달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시·도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업하여 아이들의 격차 없는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과제를 발굴‧시행하겠다는 취지다. 민선8기 교육협치에 뜻을 모은 전북교육청과 전북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에는 교육행정협의회를 열고, 전북형 유보통합 선도모델 구축을 위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했다. 주민이 안심할 수 있는 국가 책임교육‧돌봄이 시급한 곳은 공동체 소멸 위기에 놓인 전북이다. 당장 자녀 보육 및 교육 문제로 농어촌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다. 지역공동체 붕괴 위기 속에서 돌봄·교육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해온 만큼 시급한 과제를 발굴하고, 효율적인 해법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농어촌지역의 열악한 보육환경은 인구 유출을 부추기고 결국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작은 학교 폐교로 이어질 것이다. 영유아 돌봄 및 교육 환경이 열악한 곳에 청년들이 살 수 없고, 그 지역은 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교육기관이 함께 나서 지역사회 돌봄‧교육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국가 현안인 유보통합 시범사업을 전북에서 추진해 지역 중심의 선도과제를 발굴·시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5.09 11:10

도심 생태하천 전주천의 현안 과제는…

도심 생태하천 복원의 전국적 모델로 벤치마킹 대상이 됐던 전주천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0여년 전과 반대로 이번엔 지자체에 비난이 쏟아진다. 전주시가 여름철 호우기를 앞두고 전주천·삼천 둔치에 자생하는 수목과 억새 등을 한꺼번에 잘라낸 게 발단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전주의 역사와 추억이 나무와 함께 쓰러졌다’며 생태하천 지키기 서명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환경단체와 시의원들은 “전주시가 전주천·삼천의 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했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하천 경관보다 시민 안전이 우선이다. 둔치에 늘어선 아름드리 나무가 집중호우 때 물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또 폭우와 강풍으로 뽑혀 나간 나무가 교각에 걸려 홍수 피해를 키울 가능성도 높다. 전주시민들은 근래 전주천·삼천의 범람 위기를 수차례 겪었다. 폭우가 지난뒤 하천 부지 곳곳에 수북하게 걸려 있는 나뭇가지와 부유물도 목격했을 것이다. 전주천‧삼천 둔치는 언제부턴가 수목과 갈대‧억새가 우거진 숲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고라니와 오소리·삵·뱀 등 육상 야생동물이 번식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자연성 회복’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물가에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숲을 이루고 이 곳에 육상 야생동물이 무더기로 서식하는 하천을 자연형하천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도심 생태하천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전주천의 현안은 따로 있다. 바로 하천의 흐름을 막아 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는 보(洑)다. 전주천의 보는 대부분 20세기 중반에 농업용수 확보 목적으로 설치됐다. 21세기 들어 하천 인근 농지가 속속 택지로 개발되면서 농업용수 확보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도 보는 철거되지 않고 남아 물의 흐름을 막고 있다. 이로 인해 취수보 인근에 오염된 토사가 쌓이면서 심한 악취와 수질오염을 일으켰다. 금학보와 신풍보 등 전주천 하류에 있는 5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보가 생태하천 복원의 걸림돌로 일찌감치 지목됐다. 그리고 2∼3년 전 전주천 취수보 개량사업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수질 개선을 위해 취수보를 철거하거나 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요구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보를 존치해야 한다는 농민회·농어촌공사의 주장이 맞섰다. 결국 생태환경을 감안해 기존 콘크리트 보를 자연형 여울 및 가동보 형태로 개량하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관련 기관에서는 완공된 새 시설물을 ‘자연형 여울’이라 칭한다. 하지만 하천 바닥에 대규모 돌무더기를 완만한 경사로 쌓아놓은 것이니 ‘여울형 보’라는 표현이 맞다. 이 여울형 보가 기존 시설물처럼 생태계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2020년 ‘중랑천 자연형 여울 공사를 다시 하라’고 서울시에 촉구했다. 새로 설치된 여울형 보가 하천 생태환경을 훼손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시설물을 전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주천과 삼천 합류지점에 대규모로 설치된 금학보도 최근 여울형 보로 개량돼 눈길을 끈다. 하지만 거대한 구조물이 여전히 물길을 막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형태만 조금 다른 대규모 보(洑)를 다시 만들어놓았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금학보 개량사업은 수십년 동안 거대한 콘크리트 보에 막혀 쌓인 엄청난 양의 퇴적물을 걷어내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애초부터 수질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논란 끝에 지금의 형태로 개량된 전주천 하류의 여울형 보가 하천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 수질개선에 과연 효과가 있는지 조사해 볼 일이다. 새로 설치된 여울형 보가 옛 콘크리트 보처럼 하천 생태환경을 훼손하고 있다면 시설물 완전 철거를 검토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4.0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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