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30회를 맞았다. 개막식에서 이병헌 배우는 자신의 경력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제가 시작됐음을 언급하며 한국 영화의 흐름 속에서 일해온 기쁨을 표현했다. 한국 영화는 1987년 민주주의가 제도로 안착하던 시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영화학교가 설립되어 전문가들이 배출됐고, 95년부터는 영화잡지가 출간됐다. 96년부터 창설된 국제영화제들은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소개했다. 비디오 대여점의 호황과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진출은 영화 관람을 일상의 문화 활동으로 자리잡게 하고 시장의 성장을 촉진했다. 국민의 상당수가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기에 ‘코리안 뉴웨이브’의 감독으로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등이 이름을 알렸고 임순례,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개별 차이는 있으나 현재까지 활동하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그런데 그 당시 재기 발랄하게 떠올랐던 독립영화 감독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현재 영화산업의 양태를 보면 투자자와 제작사가 분리된 구조에서 ‘데이터로 검증된 성공 요소’가 아니면 투자를 받기 힘들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감독 외에는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기가 요원하다. 산업이 활발히 돌아가고 이른바 돈이 돌 때에는 독립영화 지원과 실험도 가능하지만, 수익이 하양 평준화 된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는 투자자에게 손실과 같은 뜻이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아 새로움에 투자하지 않고, 투자하지 않으니 비슷한 영화만 개봉해 관객들이 극장을 외면하는 현상은 자학적 순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쯤 되니 영화라는 영역에서 성공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위대한 천재 감독 오슨 웰스는 영화 제작을 위해 부족한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 늘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그는 영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히며 <시민 케인>(1941)을 빼놓고 영화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샹탈 아커만의 영화는 단 한 편도 금전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2022년 영국영화연구소(BFI)가 시행한 국제영화전문가 투표에서 역대 최고 영화 1위에 아커만의 <잔느 딜망>(1975)이 선정됐다. 지난 30년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를 우리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후대에 기억되는 감독과 영화는 상업적 성공이 아닌 예술적 성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예술의 영역에서 성공은 무엇인가. 독창성에 그 비밀이 있다. 그 감독이 아니라면 창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현존하는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로 손꼽히는 차이밍량, 페드로 코스타, 클리어 드니, 알랭 기로디 등의 영화를 개봉하면 단 10명이 그들의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10명의 관객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002)에는 1976년 록밴드 섹스피스톨즈가 라이브 공연을 하는데 극소수의 관객이 온 사연이 나온다. 그러나 그 장소에 관객으로 왔던 대부분이 조이 디비전과 같은 이후 음악계를 흔든 인물이 되었다. 어쩌면 예술에 있어 진정한 성공이란 영원성과 독창성을 내포한 창작일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작품이 기억되고 다른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어 예술의 확장에 기여하는 독보적 자리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성공 아닐까.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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