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금요칼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장석주 시인

진보 대통령이 뜻밖에도 보수 정당의 인사를 장관 후보자를 내세우며 그 청문회가 큰 주목을 받았다. 최고 학벌과 화려한 인맥을 뒷배 삼아 국회의원직에 올랐던 그이는 국회 청문회에서 제 흠결을 뾰족하게 따져 묻는 의원에게 항변을 했다. “의원님, 인생이 그렇게 계획대로 안 되지 않습니까?” 그이의 드러난 처신들은 고개를 내저을 만큼 삿되고 지저분했다. 편법과 반칙을 일삼으며 개인 영달을 꾀하며 부를 쌓은 그이의 누추한 인생 역정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결국 낙마했다.

아무 흠결을 남기지 않고 대쪽같이 바르게 한 생애를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살다보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나쁜 일에 연루되기도 하고 오점이나 얼룩이 생긴다. 내 주변에서도 제 안의 세속적 욕망과 미성숙한 처신으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 역시 마흔 중반에 큰 위기를 맞았다. 빗나간 선택과 탐욕으로 생활이 피폐하고 문란해졌을 때가 있었다. 나는 시골로 낙향해서 그 시절을 묵묵히 견뎌냈다.

시골집 아래에는 너른 저수지가 있었다. 겨울철이 지나면 저수지 주변에 군락을 이룬 버드나무 가지에 연초록 물이 올라와 볼만 했건만 나는 잘 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의 굴레에서 의기소침한 채 웅크렸다. 삶의 원칙이 무너지면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그때 삶의 지침서로 삼은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다. 그걸 옆에 끼고 읽을 때 ‘상선약수’(上善若水)나 ‘대직약굴’(大直若屈), ‘광이불요’(光而不耀) 등등 주옥 같은 구절에서 내 마음의 금(琴)이 맑은 소리를 냈다. 물처럼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고, 곧음을 뽐내지 않고 구부러진 듯 처세를 하며,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 결의를 다지곤 했다.

젊었을 땐 젊음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착각했다. 지각이 모자랐던 탓에 빚어진 일이었다. 젊음이 사라진 뒤 천금 같은 젊음을 낭비한 걸 깊이 자책했다. 무른 것은 부서지기 쉽고, 미약한 것은 흩어진다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늙은 뒤에야 근력이 약해지고 뼈의 밀도는 떨어지며, 기억력도 나빠지고, 인생의 가능성도 사라진다는 실감을 했다. 노년기란 불가피하게 혹한 속 겨울나무의 처지와 같다는 걸 깨닫는다. 젊었을 때 겨울나무를 보며 이런 시를 끼적였다.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외롭고 지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는/빈 벌판//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속에/말없이 서 있는/흠 없는/혼 하나//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마음도 떼어 버리고/문패도 내렸습니다//그림자/하나/길게 끄을고/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졸시, ‘겨울나무’ 전문) 겨울나무는 제 잎을 다 떨군 채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다. 잎을 다 떨구고 겨울을 나는 나무는 무욕한 존재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 나이 들어서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제 안의 욕심을 비우는 일이다.

청춘의 시기는 인격이 무른 탓에 치기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런 탓에 인생에 후회와 번민이 많아진다. 나는 봄여름의 청년기와 장년기의 가을을 지나 어느덧 겨울로 성큼 들어섰다. 젊었을 땐 과오와 실패도 너그럽게 용서받았다. 하지만 장년기에는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면제받기 힘들다. 어른이란 제 선택과 행위들에 책임을 질 만큼 충분히 사리분별이 있는 존재라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헐벗은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라고 자문한다. 그 물음은 한번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거듭해서 제 내면의 청문회에 스스로를 세우고 따져 물어야 한다. 지저분한 행적의 세목들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고 낙마한 장관 지명자는 그런 물음을 통한 자기 검증에 소홀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이의 인생은 탐욕이 자기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삼켜버린 사례일 테다. 그이가 변명 삼아 내놓은 말 중,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말에 한 점의 진실이 없지 않지만 그게 누추한 제 과거에 대한 면죄부일 수는 없다. 누구도 제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 실책, 탐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김제민주당 박지원 후보,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선언

고창심덕섭 고창군수 후보 측, 특정 매체 ‘취재권 남용·무단 침입’ 비판

김제민주당 탈당 이병철 시의원 “김제시장 무소속 출마”

김제김제 지평선시네마, 최신 영화 관람 ‘1000원 ’

사회[속보] 주왕산 실종 초등생, 숨진 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