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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자식대하듯 곡식 키워

요즘 아무리 바빠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다. 모종이 자라고 있는 포트에 아침저녁으로 물주는 일이다.

 

몇 주 전 씨앗을 넣을 당시에는 새벽 공기가 아주 차서 마당 옆에 죽 깔아 논 포트를 비닐로 덮고 옆을 눌러 주었는데 지금은 싹이 다 나서 벗겨냈다. 자연생태농법에서는 비닐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새싹 틔울 때만 비닐을 잠시 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날 심었어도 싹이 돋는 날은 같지가 않고 모양도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다른 종자끼리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같은 종자끼리도 많이 차이가 난다. 한 부모에게서 난 자식도 서로 딴판인 것을 보는 듯하다.

 

호박씨는 항상 껍질을 뒤집어쓰고 싹이 난다. 호박씨 껍질이 먼저 땅을 뚫고 올라오는데 그 속에 새싹이 숨어있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속담의 유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껍질을 뒤집어쓰고 새싹이 돋는 호박씨의 속성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는 젓가락 끝처럼 뾰족하게 돋는다. 옥수수가 주식인 남미사람들의 성격과는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 혼자 궁금증이 인다. 오이와 수세미가 제일 늦게 나온다. 가지와 토마토는 떡잎이 날 때쯤 돼야 구별이 가능하다.

 

사람도 어릴 때 버릇이 잘 들고 건강해야 자라서도 행실이 바르고 잔병치레를 안 하듯이 곡식도 잘 되려면 모종을 부을 때부터 잘 해야 한다. 씨앗을 목초액에 침종하는 것과 좋은 상토를 쓰는 것이 그것이다. 상토는 물 빠짐이 좋을뿐더러 철저히 무균상태여야 한다. 풀씨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거름기는 많지 않아도 된다. 씨앗 속에 싹을 틔울 만큼의 영양분이 있기 때문이다. 거름기가 너무 많으면 미생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씨앗이 삭아버리기도 한다.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물러터지는 것과 어쩌면 그렇게 꼭 같은지 모른다. 애는 밖에다 풀어 키우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상토를 직접 만들었다. 시중에서 파는 상토도 좋지만 약으로 소독한 것이라 직접 만드는 것만 못한 것은 당연하다. 날씨가 아주 좋았던 어느 날 마대 여러 개를 챙겨 리어카를 산기슭까지 끌어다 놓고 부엽토를 파 왔다. 낙엽이 많이 쌓인 곳 땅을 30센티 정도 파고 퍼 온 것이다. 집에 와서는 이것을 체로 쳐서 걸러내고 발효퇴비를 넣고 모래와 숯을 섞어 만들었다.

 

숯은 겨우내 아궁이에 장작 때고 잉걸불을 꺼 모아 둔 것이 많이 있었다.

 

삼일에 한번 정도는 물에 목초액을 섞어 모판에 뿌려준다. 그래야 싹이 건강해진다. 자식을 공부만 시킬게 아니라 일도 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종 키울 때 나만의 독특한 농사법이 하나 더 있다. 자식 대하듯이 새싹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물을 주면서 잘 자라라고 기도를 한다. 장차 내 생명이 될 곡식에 대한 최소한의 공경이라 여기면서.

 

/전희식(농부·전주라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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