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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 차밭 - 연둣빛 자연이 우려낸 '선다일미(禪茶一味)'

도내 곳곳 대규모 차밭 분포 / 자생재배로 전국 이목 집중 / 심신 치유하는 공간으로도

▲ 임실군 운암대교 인근 전통찻집 '하루'. 주인이 권해주는 황차향을 맡노라면, 茶와 禪이 결국 한 몸임을 알게 된다.
▲ 고창 선운사 녹차밭

세상에는 별별 오도방정(悟道方程)이 다 있다.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문득 깨쳤다. 달마는 캄캄한 벽을 바라보고 소식을 얻었다.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신 뒤 눈을 떴다. 물론 피나는 구도정신과 수행이 있고 나서였다. 그렇다면 근기가 허약하고 일상의 부름에 바쁜, 허다한 중생에게도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 마련되어 있었을까. 있다면 그것은 좀 쉬운 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일상다반사처럼.  차의 역사를 일별만 해봐도, 일상다반사는 그저 수사적인 뜻으로 나돌던 말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이 차를 마시게 된 동기는 뻔하다. 초근목피와 어패류, 짐승을 주식으로 하던 시절, 찻잎에서 해독과 심신의 안정 같은 여러 효능을 알아채고 마시기 시작했다. 차 마시는 일이 밥 먹듯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을 통해 사람살이의 의미를 알아가고, 자기 안의 고요를 만나는 뜻밖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차츰 선과 차는 같은 맛이라는 선다일미(禪茶一味)가 회자되고, 차 마시는 풍습이 다듬어져 다도와 다례 같은 예법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하지만 우리 차가 걸어온 길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 기(技) 십년, 예(禮) 십년, 도(道) 십년

 

차는 주로 불가와 선비사회에서 아낌을 받아왔는데, 오랫동안 대중의 일상생활에서 모습을 감추다시피 한 차는 1980년 앞뒤로 정부의 도움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대중문화운동으로 살아났다.

 

흔히 30년쯤 차를 마셔야'선다일미'의 경지를 밟을 수 있다고들 말한다. 처음 십년은 차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고 다음 십년은 차에 깃든 예법을 터득하고 마침내 마지막 십년에 차의 도에 들어선다. 지금 우리에게 차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차가 대중화한 지 30년 남짓한 세월을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차와의 첫 만남은 으레 다도를 통해서였다. 다도는 단순히 차 마시는 법도를 넘어 하나의 학문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깊어졌다.

 

전국에 다도회가 생기고 차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차에 관한 책도 속속 간행되었으며, 무엇보다 다도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쉬워졌다. 우리 곁에는 깊이와 관록을 지닌 차인이 적지 않으며, 차를 배우려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학교에서 다도는 배워야 할 필수과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차가 우리 생활과 정신에 뿌리를 내렸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차가 우리에게서 멀어진 이유는 간명해 보인다. 커피가 우리 생활을 잠식하게 된 것이 지난 수년 동안 일어난 가장 치명적인 변화일 것이다. 싸고 다양한 데다 풍미까지 좋은 커피는 이제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바리스타 강좌에서 카페에 이르기까지 커피를 둘러싼 산업은 눈부시다. 이에 견주어 차 산업은 차문화 축제와 차 개발 등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쏟아졌음에도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최근에는 친환경적인 생산과 착한 소비가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대량생산을 위해 차나무를 밀집해 심고 기계화하고 화학거름을 주는 등 차밭의 반생태적인 재배방식에도 경종이 울렸다. 또한 원산지 표시제로 인해 생찻잎이 도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됨으로써 제다공정시설을 갖추지 못한 차밭에선 두 손을 놓아버리는 일도 생겼다. 차의 소비가 줄고 중국의 발효차가 밀려드는 등 차의 문화와 산업이 안팎으로 위축되어 지칫거리는 현실에서 전북의 야생 차밭을 바라보는 이목은 사뭇 달라졌다.

 

 

△ 반생태적인 차밭에서 더불어 공존하는 차숲으로

 

차나무는 강수량이 많고 물이 잘 빠지는 바위 언덕바지에서 잘 자란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고 저보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주면 더더욱 좋아한다. 과거 차나무는 서해 변산반도와 정읍 내장사에서 구례 화엄사와 동해안 울산 다전마을을 잇는 경계선 아랫녘에서 주로 자랐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덕에 차나무의 재배지는 강원도까지 올라갔지만, 대규모 차밭은 여전히 남녘에 모여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전북은 차가 비롯된 시원의 땅답게 자생 차밭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부안의 우동리, 고창의 선운사, 정읍의 내장사와 백양사, 순창 구림면 안정리, 익산 웅포 임해사지, 임실 회문산 만일사, 섬진강 상류 강경마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야생 차밭에서는 주로 생잎을 그대로 덖은 녹차를 생산하지만 햇볕의 열기와 찻잎 자체의 효소로 발효하는 청차, 황차, 홍차 같은 다양한 차도 만들어왔다. 자연생태적인 순환 안에서 자란 자생차여서 소규모 수제의 명차로 이어져온 셈이다. 차의 재배와 생산 과정에 쏟는 관심이 커지면서 전북의 야생 차밭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최근에는 전북의 야생 차밭이 차를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자 심신을 치유하는 공간으로도 열리고 있다. 차의 생산에 집중하는 차산업과 차를 마시는 소비 중심의 차문화를 차가 자라는 차숲 자체로 옮겨 넓혀가는 중이다.

 

이런 노력이 침체된 차산업을 일으켜세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차에 좀 더 가까워지질 수 있는 길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강경마을 야생 차밭을 거닐며 전 전통술박물관 관장으로 있었던 박시도 선생과 차숲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일찌감치 우리 차문화에서 차숲이 차지하게 될 중요성을 깨닫고 상업적 욕망을 버리고 차밭을 야생상태로 돌봐왔다. 차나무도 다양한 나무와 어울려 기운을 주고받아야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래서 그는 재배차밭의 인공적 이미지를 벗겨내고'차숲'으로 부른다.

 

 

"사람도 차숲의 일부가 되어 편하게 놀아보고, 찻잎을 따서 뜨거운 솥단지에 넣고 덖어 비벼보는 사이에 분명 차가 좋아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차를 잘 알고 좋아졌는데 차를 마시지 않고 못 배길 건 당연하다." 그의 '차노래'는 쉽고 명료하다. 차숲에서 자란 차를 손으로 덖어서 편하게 마시던 처음자리로 돌아가자는 권유다.

 

그의 말처럼 차숲에서의 체험이 정교한 다도에서도 얻지 못한 차와의 친밀도를 높여줄 것이다. 다만 좋은 환경과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차를 그에 합당한 가격으로 착하게 소비하겠다는 마음만 낸다면, 차처럼 어여쁜 식물을 덖어 우려 마시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되고, 선다일미의 경계를 넘나들 일쯤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김정겸 문화전문시민기자(프리랜서 작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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