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갑연 전북대 교수가 본 '공자의 논어 경전' - 공자와 제자의 언행 기록한 실록
최근에 필자는 이러한 반성을 해보았다. 과연 공자의 학술세계는 정말 영원히 마르지 않는 꿀단지일까?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논어'에 매료되어 분석 해설하고, 또 찬술(撰述)을 한다는 말인가? '논어'라는 꿀단지는 최소한 2500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이 빨아마셨고, 지금도 동양학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한번쯤을 그 맛을 보았을 것이다.
정말 많은 사람의 미각을 매료시킬만한 꿀이 지금도 나오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은 물만 나오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빨다보니 물맛을 꿀맛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후자일 것이라는 의심도 해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지금도 향기로운 꿀이 나온다. 여러 종의 향이 나는데, 나는 그중에서 조화와 화해라는 이념의 향에 매료되었다.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언행을 기록한 실록이다. 따라서 '논어'를 처음 대할 때 하나의 철학서적으로 인식하지 말라. '철학'이라는 인식은 곧 추상적인 개념 해설 그리고 논증 등을 떠올려 우리로 하여금 정이 뚝 떨어지게 한다. 또 '도'와 같은 현묘하고도 추상적인 개념에 고민하지도 말라. 그러한 것들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논어'를 공자라는 사람의 인생 역정을 소개한 연의(演義-소설)라고 생각하면서 원전을 보기에 앞서 번역서를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기 바란다.
'논어'에 관한 전문 해설서를 보면 대단히 엄숙주의적인 공자의 도덕관을 만나게 된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꿈치를 구부려 베고 누었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곳에 있다. 정당하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다"·"죽더라도 인(仁)을 완성한다"는 말이 해당한다. 또한 "시(詩)를 통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예(禮)를 통하여 자신의 덕성을 실천하며, 음악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을 완성한다"는 고매한 문예정신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경쟁에 놓여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공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살신성인(殺身成仁) 그리고 문예정신은 우리에게 머나먼 세계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흔희 동양 철학의 근본정신을 조화 혹은 화해라고 하는데, 사실 이는 공자의'논어'에서 비롯되었다. 조화 혹은 화해에서 '화'(和)가 성립하려면 자타의 대립 혹은 갈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갈등의 영역은 '나'라는 개체로부터 시작하여 사회공동체로 확장된다. '나'라는 영역에서는 욕망과 도덕의지의 대립과 갈등이 있고,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는 부부와 부자 그리고 형제자매의 갈등이 있다.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의 갈등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립과 갈등은 왜 발생하는가? '나'라는 차별만을 내세우고 '우리'라는 '같음'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조화를 추구하고 획일성을 반대한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출현하는데, 이 둘은 갈등을 해소하는 동일한 이념의 두 가지 다른 표현이다. 화이부동은 상대방의 차별성에 대한 존중이다. 인생은 본래 차별적이다. 그러나 모두 선과 행복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한다. 단지 추구하는 길이 상이할 뿐이다(殊塗而同歸).
따라서 자신의 길과 다른 인생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고, 감상할 수도 있어야만 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배제된 비판은 독선과 아집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서구 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회는 인간의 자아실현의 무대이고 통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권리는 타자에 대한 자신의 요구이고, 의무는 자신에 대한 타자의 요구이다. 요구는 쌍방 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하여 요구를 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요구를 먼저 이행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그토록 강조한 정명(正名)이고, 예(禮)의 근본정신이다. '논어'를 충실하게 살펴보라. 이 두 가지 정신이 바로 '논어'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논지이다. 사회라는 공동체가 존속되는 한 타자의 차별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권리와 함께 의무를 통한 화해이념은 영원할 것이다. 필자는 '논어'를 경전으로 추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황갑연 전북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양명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라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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