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내가 사는 세상

▲ 임주아 우석대 대학원 재학

대학에 진학하고 십년 가까이 삼례와 전주를 교차하며 살았지만 주민등록등본상 나는 완주군민도 전주시민도 아니었다. 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도 왜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연말정산 때 전입신고를 해야 ‘월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를 내는 무주택자이고 연봉 7000만원 이하를 받으며 전용면적 85㎡에 거주하는 직장인이면 납부액 중 10%, 최대 75만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고 집주인의 동의없이 가능하도록 법까지 바뀌었다는데, 나는 애초에 대상감도 되지 못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덜 당하고 덜 실망하려면

 

4대보험이 되는 직장인이 된 흔치 않은 기회에 이것도 모르고 흥청망청 살았다니. 나는 일년 전 작성했던 임차인계약서에 ‘대구’로 시작되는 주소란의 내 글씨를 허탈하게 바라보며 옛 집주인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계약서에도 없는 청소비를 뺀 보증금을 입금과 동시에 보내온 따뜻한 결별 메시지였다. “주아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멋진 시 쓰고 잘 지내요!(하트)”

 

을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고쳐준 법의 보호마저 거부해온 나는, 새 원룸으로 이사하자마자 곧장 주민센터로 달려가 전입을 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명 받은 다음 이 도시의 새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먼저 동네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운좋게도 집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많았다. 야간까지 운영하는 시립도서관도 있고 동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카페 딸린 서점도 있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빵집과 오래된 비디오가게도 있었다. 내친김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둘러보고 서점에 들러 컴퓨터가 아닌 사람에게 신간시집을 주문한 후 커피도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가게 주인장이 누구인지 유리창으로 쓱 훔쳐보다가 ATM기에서 현금을 찾아 빵도 샀다. 그렇게 나름 동네투어를 마치고나니 잘 모르겠지만 왠지 이 동네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쉬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종종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툴툴거렸지만 실은 별로 개의치않을만큼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이 도시에서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며 학사조교로 근무하고 있다. 2년간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나 학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몇 개월간 명의를 빌려 타인의 이름으로 근무하다 다시 내 명의로 돌아오면 별 문제 없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종종 듣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비정규직을 유지하고, 또 권장하기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일한다. 혹은 그것마저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내야

 

하지만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너무 뚜렷해서, 살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아서 잘 느낄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주 짐을 옮기는 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이상한 법들과 대결하고, 가진 패를 자주 들키며 바뀌지 않는 힘과 보이지 않은 갑들과 부당한 거래를 하게 만든다. 몇 년 째 옮겨다니는 공간도 나도 얼마 못가는 비정규직일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게 덜 당하고 덜 실망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어코 해내는 수밖에 없다는 그 힘이 어제의 문장을 밀어낸다. 믿을 수 있는 게 문학밖에 없어 불행이자 다행인 나의 작은 세상에서 오늘도 살아가기로 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사건·사고고창서 70대 이장 가격 60대 주민 긴급체포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