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음으로 ‘연차 휴가’라는 것을 써 보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의 해를 넘겼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연차 휴가는 사유를 불문하고 쓸 수 있으니 괜찮겠지 하면서도 괜히 사유 란에 ‘병원 방문’이라고 적었다. 어쨌든 나는 근로기준법이 인정한 휴식의 날, 서울 역삼동 가장 바쁜 거리가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셨다. 남들이 일하는 평일에 노는 기분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러웠다.
"의미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야지"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일 년 전 사무실을 찾아온 어떤 이에게 근로계약서를 꼭 주고받아야 한다고, 구두계약도 유효하지만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던 당시 정작 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수상쩍은 사람이 된 걸까. 비단 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권유했을 수많은 순간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새 나는 내 일과 내 삶을, 내 말과 내 생각을 분리해내며 살고 있었다.
많은 배움과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생각한 그대로 살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도 성숙한 인간이 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기성세대들을 바라보며 절대로 저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생각은 도대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 되었는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올해 초 우연히 별자리 운세 같은 걸 본 적이 있다. ‘계획을 철저히 세워두지 않는다면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릴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었건만, 이 순간 그 말이 참 뼈저리다. 그저 먹고 사는 것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내 삶의 의도된 방향을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청춘이라는 낱말과는 급속도로 멀어져 갔던 것은 아닌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서 일하는 동기 언니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
“요즘은 제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종이컵에 얼음까지 띄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좀 부질없으면 어때? 의미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봐야지. 너 사춘기야? 스물아홉이라 그런가봐, 이십대 마지막.”
반복되는 일상, 헛된 것 아니기를
스물아홉을 지나고 있는 나는 어쩌면 어릴 때 내가 바라보던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절망적인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내 삶이 이렇게 하찮아지는 기분을 느낀 이 순간이 다시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이건 가장 밝은 생각이다. 스물아홉은 누구에게나 그런 때인 것은 아닐까. 이것은 가장 위로가 되는 생각이다. 유리창 아래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만큼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바쁘게 지나갔다.
스물아홉 가을.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려는 이 순간에 나는 가장 밝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 반복되는 일상은 비록 무의미하더라도 헛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의 가치를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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