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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미혼 여성 예술가로 당당하게 사는 법

▲ 신은미 한국화 아티스트

초등학교 때, 가을을 주제로 한 글짓기 숙제가 있었다. 친구가 쓴 글을 슬쩍 읽어보는데 아직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기억을 다듬어 본다.

 

‘아기가 엄마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꽉 움켜쥔 손이 빨개진다. 단풍잎도 점점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잡고 있느라 빨갛게 물드는 것이 아닐까.’

 

그 때는 저 표현이 마냥 멋있게 느껴졌었는데 지금 곰곰이 들여다보니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이다. 힘껏 애써보지만 결국 정해진 운명에 굴복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찌들어버린 나의 감성이 그 때의 순수했던 시선을 덮치고 있다.

 

순수했던 시선 덮친 찌든 감성

 

나는 봄을 참 좋아한다. 연둣빛의 새순이 올라오는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설렘이 한가득 밀려온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봄과 닮아있는 가을. 태생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그들처럼 나에게 가을의 아름다움은 황홀하지만 쓸쓸하고 외롭다.

 

어릴 때도 이런 감정이었던가? 아니다. 마냥 은행나무 길이 예쁘다며 걷고 낙엽을 주우며 설레는 마음으로 첫눈을 기다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노화의 증거인 낙엽을 마냥 아름답게 감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대한민국 30대 서민 미혼 여성 예술가’

 

한 단어, 한 단어를 되뇔 때 마다 심장이 아리다. 마인드맵 지도처럼 뻗어나가는 연관된 단어들마다 가슴 아픈 아우성이다. 원치 않는 중금속을 가득 먹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밟힘 당하고도 냄새난다고 욕먹으며 결국 쓰레기통에 처박혀 불태워지는 가로수의 은행처럼 원통한 2016년의 가을날 나는 속 쓰림을 꾸역꾸역 삼키며 당장의 월세와 지출을 위해 애써 시야를 흐리고 시선을 돌려 붓질을 한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을 보며 곧 한살 더 먹을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저 그런 인간인 내가 딱하다.

 

아무것도 없었던 일 년 전의 막막함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발전이다. 그런데도 여전한 이 불안함은 무엇에 의한 것인가. 불신 가득한 국가? 진실 되지 못한 사람들? 모이지 않는 통장 잔고?

 

이런 상황들이 맞물려 점점 나의 색채를 지우고 잿빛이 되어 적당히 눈감고 타협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이 세상과 그곳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될 나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은 아닐까.

 

시발점을 찾아 생각을 거슬러 가다보면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모든 불안함이 ‘나’로 인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 구석진 곳에 누군가에게 보일 새라 스스로에게까지 숨기려 했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부분들까지도 이참에 샅샅이 들춰본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부분인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인정하기다.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고 자존심도 많이 상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한 법이다. 그들의 시각을 빌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에게 그런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진정 행운이다.

 

아티스트가 존경의 의미 되는 날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나의 중심이 되는 신념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 그 신념에 반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굳건히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만물의 아름다움이 날것 그대로 와 닿을 수 있게끔, 대한민국의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안타까움이 아닌 존경의 의미로 인식될 수 있는 날을 위해 손이 빨개지도록 오늘도 나는 붓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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