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엘리베이터가 없던 학교, 사라지던 노란 점자 블록
그 아이와 나는 같은 유치원을 나왔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유치원 때야 너무 어린 시절이라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이 되고 우리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나와 그 아이는 복도에서 마주쳤고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손을 흔들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아이는 없었다. 내가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중학교 동창들과 멀어진 것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그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와 같은 친구들을 몇 만났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마치 그 아이들은 꽁꽁 숨겨져 있기라도 하는 듯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우리 학과가 아닌 사람들을 엘리베이터 앞에서야 보고 이 사람들이 여기에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지르고 무릎을 꿇었다. 학교 때문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건물의 시설이나 혹은 교육 방식의 차이로 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현재 상황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졸업한 국공립 학교에는 ‘특수반’ 내지는 ‘함께반’ 같은 이름으로 장애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나 교사가 마련되어 있지만 장애와 학급, 학년이 모두 다른 장애 학생을 5명도 안되는 선생님들이 전담하고 있었다. 장애 학생들이 비 장애 학생과 함께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학교도 적지만 특수학교는 님비 현상 때문에 교외에 있거나, 보호자와 장애 아동이 사는 지역자치단체에 없는 경우가 흔했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의 작가 라일라의 보호자인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 그를 위해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통학도 감수할 정도였다. 나는>
그 아이가 생각났다. 곧 이어서 고등학교 때 만난 아이도 이어 생각났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부스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생각났다. 교육 봉사활동을 가서 만난 아이가 생각났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엘리베이터가 없던 학교 건물, 당연하다는 듯 점자가 없는 지도, 당연하다는 듯 다섯 명의 말을 바쁘게 수화하던 TV 속 수화통역사, 당연하다는 듯 사라지던 노란 점자 블록도 떠올랐다. 그 아이는 한 층 밑의 도서관에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바꿔타야 했다. 비장애인인 나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포기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나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이름이 필요하고, 형태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편한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최근 구독한 유투버 <둘째언니> 의 동생은 18년 동안 ‘시설’에서 지냈다. 장애 아동 자원활동가인 친구는 ‘시설’에 누워있는 장애인들을 보며 ‘이건 뭔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보호자는 그 아이가 죽는다면 그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했다. 사회가 원하는 얌전한, ‘일반인’ 같은 장애인을 만들기 위해 그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 많던 아이들은 정말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아이들은 왜 숨겨져야 하는 걸까. 둘째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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