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자각하는 것이 삶의 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려
다르덴 형제의 초창기 영화 <로제타> 는 알콜중독자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로제타라는 소녀가 생존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내일이란 삶이 존재할까 라는 질문 조차 차단 된 소녀의 삶을 건조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는 급기야 영화 말미에 가스통을 붙잡고 절규하는 로제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투적으로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 체화한 로제타는 잘 참다가 마지막에 우는데 그녀를 위로하려고 하는 남자의 모습조차도 카메라는 보여주지 않는다. 로제타>
올 초 천식 때문에 꽤 고생을 했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기침이 심해 중간에 뛰쳐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 극장 가는 게 조바심이 났고 급기야 올 봄에 촬영한 영화의 후반작업을 할 땐 스트레스 까지 겹쳐 오랫동안 영화 보는 행위를 멈췄다. 그저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싶어 친구들과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했다.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면서 본 산과 바다의 이미지를 꽉 붙들고 여행에 다녀 온 후 용기를 내어 본 영화가 이 <로제타> 라는 영화다. 몇 번 봤을 정도로 좋아했던 영화인데 겨우 로제타에게 울음을 허용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예전엔 “사는 게 다 그래” 라고 오독했다. 하지만 다시 본 로제타에서 얕은 위로 대신 “참지마” 라는 걸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후에 본 판타지 영화 <몬스터콜> 의 코너도,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의 리도 마찬가지였다. “참아야 한다”가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애당초 “참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맨체스터> 몬스터콜> 로제타>
프랑스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후 <애도일기> 라는 책을 썼다. 책에는 내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이런 레고 문장이 나온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나는 로제타 처럼 알콜중독 어머니와 비좁은 트레일러에서 살지도 않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의 리처럼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로 아이 셋을 잃은 경험도 없고, 부모의 이혼 후 아픈 엄마의 고통을 지켜보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몬스터 콜> 의 코너가 아니다. 그래서 섣부른 위로와 얕은 포옹을 해서도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당장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 속삭이고 싶다. “참지마세요” 몬스터> 맨체스터> 애도일기>
올 해 구술생애사와 관련된 수업을 받았는데 강의를 맡은 선생님에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이렇게 물어봤다. “선생님, 구술과 채록의 과정에서 고통을 느껴보신 적은 있나요?” 그러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없다고 하셨다. 당신은 개인적 쓸모와 사회적 쓸모를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순간 각자의 쓸모라는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와 포옹이 됐는지, 한참 동안 쓸모라는 말을 담고 살았다.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는 게 삶의 동력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리고 저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쓸모 있는, 그러니깐 계속해서 생의 의지를 안고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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