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 심장터’ 전주시의 굳은 의지가 비웃음이 되지 않기를
올 봄 역시 벚꽃 풍경들을 놓쳤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점점 빨라지는 개화시기도 그렇지만 미세먼지로 밖에 나갈 엄두가 안났다. 날이 좋을 때 쯤이면 봄비가 내려 꽃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내가 오라해서 오란 적 없고 가라해서 가란 적 없는 게 계절이니 아쉬움은 이쯤 접어 두자. 그 사이 나무들 사이로 현수막들이 펄럭이고 있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리는 현수막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인구 67만 도시의 가장 큰 축제이자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걸고 국내외 독립영화와 디지털영화와 같은 대안적 흐름에 관심을 갖고 개최되는 영화제 중 하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제 평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올해는 역대 최다 작품을 상영한다고 하니 가뜩이나 쏠림 현상이 만연한 한국영화시장에 불만인 영화 팬들에겐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전주 토박이인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제가 처음 열렸으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고 그만큼 본인의 나이가 이렇게 먹었나 해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영화제가 치러지고 외연도 확장되고 대표적인 축제로 거듭나는 걸 보니 지역의 영화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 흐뭇한 일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이 곳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창작자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가 아쉽다. 이 아쉬움은 영화제 측에 토로하는 게 아니니 부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당부의 말을 먼저 건넨다. 전주국제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전북인권영화제, 익산여성영화제, 시민영상제등을 제외하면 도내에서 창작되는 작품들이 소개될 기회가 많지 않다. 물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있지만 온전히 지역에서 창작된 작품들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상영되진 않는다.
최근 들어 지역의 젊은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대안적인 상영구조로 이뤄진 ‘무명씨네’ ‘도킹텍프로젝트 협동조합’ 같은 다양성영화전용극장이 생겼지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민간 극장의 활동이 잡히지 않는 현재의 구조로는 활동가들의 생계비와 상영료가 제대로 돌아갈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양한 영화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누려할 또 하나의 권리다. 그러기 위해선 지속가능한 상영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고려해야 할 몫이다. 영화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은 창작활동가들에게 반가운 표현은 분명하지만 위태로운 생계의 최전선에서 당장 내일의 삶을 고심하는 활동가들에게 무엇이 최선일까?
갑자기 ‘뻥’하고 봉준호가 튀어나오진 않는다. 갑자기 알을 깨고 박찬욱이 튀어나오진 않는다. 당연히 그런 거장 감독님들도 젊은 시절 갖은 고생을 거치며 높은 자리에 올랐을 터다. 그러나 너희들도 고생을 거치고 그 자리로 가려무나 라는 말은 모질다. 최저임금이 오르니 사장님은 해고를 하고, 당장 인건비를 이유로 김밥 값은 오백원이 올랐고 시나리오를 써왔던 까페의 커피값도 오백원이 올랐다. 우리라고 마냥 노는 게 아니고 활동가들은 어디선가 웨딩 촬영, 오십만원 짜리 뮤직비디오 촬영, 다가오는 지방 선거 아르바이트를 준비 하고 있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물론 서울에 안주할 집값 또한 없다) 이 지역에서 계속 창작을 해보겠다는 젊은 창작자들이 노동을 하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떤 건지 고려해보는 정치가와 행정가를 만나보고 싶다. 아시아의 문화심장터라는 전주시의 굳은 의지가 비웃음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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