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일러주는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인 평정심(平靜心)에 대해 배웠습니다. 평온한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거지요. 어떻게 해야 이런 평정심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에피쿠로스는 먼저 마음의 평정을 방해하는 게 무엇인지 밝힙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것들을 없애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에 이를 수 있으니까요.
무엇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까요? 에피쿠로스는 두 가지가 우리 마음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하나는 욕망의 좌절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입니다. 욕망의 좌절은 무언가 내 뜻대로 안 돼서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겁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거고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봅니다. 제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에서 몇몇 회원이 갑자기 못 온다는 겁니다. ‘다른 약속이 생겼다, 깜박했다’라는 이유를 대면서요. 처음에는 그런 회원들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에 기분이 나빴던 건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갑자기 못 온다는 회원들의 말과 행동이 공동체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했던 겁니다. 행여나 애써 가꿔온 독서 모임이 깨질까 봐 두렵고 불안했던 거지요. 그야말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겪은 겁니다.
이런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왜 생길까요? 에피쿠로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가 괴로워하는 건 독서 모임 회원들이 모두 저처럼 성실하게 꼬박꼬박 나와야만 한다고 바라기 때문이지요. 애써 가꿔온 독서 모임이 깨지면 안 된다면서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착각을 깨부술 수 있을까요? 어두컴컴한 방에 환한 불을 켜듯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는 지혜를 기르면 됩니다. 모든 게 환하게 보이면 더 이상 부딪힐 일이 없게 되지요. 지혜를 길러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으면 그만큼 괴로운 일들도 줄어들고, 마음의 평정에도 더 가까워질 겁니다. 이런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공부 모임에서 배운 가르침 두 가지를 떠올려봅니다.
하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본래 이 세상에 내 힘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쓸데없이 헛된 욕심과 기대를 부지리 말라는 거지요.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잖아요.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空手來 空手去 是人生),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라고요.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두 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잠시 맡아서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내 밖에 있는 외부 세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요컨대,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평정심은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욕망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때 내면이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의 평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자기 뜻대로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곧 모든 게 내 마음과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헛된 욕심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렇게 늘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헛된 착각과 욕심에서 벗어나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하겠지요.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요.
구나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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