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감 2026 시민기자가 뛴다’는 전북 지역 시민사회, 복지, 문화 등 각계 전문가 등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담론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과 김민지 전북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전략사업실장, 김미량 군산 이당미술관‧전북은행 미술관 학예연구사, 손상국 프리랜서 PD, 이소정 문화예술교육공간 ‘오이아’ 대표 등이 참여해 도내 곳곳의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소통&공감 2026 시민기자가 뛴다’는 오는 10월까지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쇼미더머니를 통해서 수많은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호응하고 더군다나,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경쟁으로 디스까지 하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즐거워하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즐긴다. 그런데 요즘 정치와 선거를 보면 유권자의 선택과 판단을 받기 위한 배틀이 아니라,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비열한 전쟁터 같다.
배틀은 문화가 되고, 정치는 전쟁이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아이들 때문에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12’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낯설었다. 랩이라는 장르도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 ‘디스 배틀’ 문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상대를 공격하는 가사가 오가는 장면을 보며 “이게 왜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몇 회를 보다 보니 조금씩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을 둘러싼 수많은 젊은 세대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래퍼들의 실력에 환호하고, 날카로운 디스에도 열광한다. 서로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무대 위의 배틀’이다. 그들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과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그 경쟁의 결과는 관객의 평가로 결정된다. 무대가 끝나면 승패가 가려지고, 그 순간 경쟁도 끝난다. 관객들은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디스 역시 상대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힙합이라는 문화 안에서 인정된 표현 방식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경쟁을 문화로 만들어냈다. 서로를 향한 공격적인 언어조차도 결국 하나의 규칙 속에서 작동하는 ‘게임’이자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치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선거는 원래 유권자의 선택과 판단을 받기 위한 경쟁의 장이다. 각 후보가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는 그것을 비교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선거 역시 일종의 ‘배틀’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와 정치판은 점점 배틀이 아니라 전쟁터처럼 보인다. 정책 경쟁이나 비전의 대결은 사라지고,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폭로와 비난이 중심이 된다. 선거 시기의 공방으로 끝나야 할 갈등은 고발과 고소, 소송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경쟁이 법정 싸움으로 확장되면서 사회 전체가 갈등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선거가 끝나도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승패가 가려졌는데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계속 공격한다. 마치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끝없이 싸우는 배틀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정치가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선거는 시민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가 보여주는 모습은 시민을 설득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를 제거하려는 싸움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젊은 세대의 힙합 문화는 오히려 경쟁의 건강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지만, 그 싸움은 문화 속에서 소비된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정치는 왜 그보다 성숙하지 못하는가
정치가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무대라면, 그 경쟁 역시 시민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과 가치, 비전으로 경쟁하고 시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정치의 본래 모습이다. 상대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문화 속에서는 거친 언어조차도 하나의 창작이 되고, 경쟁은 하나의 축제가 된다. 반면 우리의 정치와 선거에서는 경쟁이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지금 정치가 배워야 할 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작동하는 간단한 규칙일지도 모른다. 경쟁은 치열하되, 그것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말이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삶을 위한 공적 무대다. 그 무대가 전쟁터가 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이다.
6월 3일 지방선거도 이제 막을 내렸다. 치열했던 선거 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갔고, 지역 곳곳에서는 갈등과 대립의 상처도 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선거 이후를 이야기해야 할 시간이다. 선거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책과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전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지역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농촌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지역경제의 침체와 인구 감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복지의 사각지대 역시 곳곳에 존재한다. 돌봄과 의료, 주거와 교육의 문제는 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책임 있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지역에 대한 책임이다
지역사회가 서로를 적대하며 분열된 상태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승자도 패자도 시민 앞에서는 다시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 역시 상대를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지역을 책임져야 할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거 기간의 피로와 갈등을 넘어, 다시 서로의 삶을 돌보고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결국 전북을 변화시키는 힘은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연대와 참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전쟁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싸움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책임이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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