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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이슈+] 축제는 '쑥' 방문객은 '뚝'⋯'힙'한 축제가 뜬다

올해 처음으로 연 김천의 '김밥축제'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의 혈세를 쏟고도 실패하는 지역축제가 다반사지만 1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신선한 축제를 만든 성공 사례가 등장한 이유에서다. 역발상과 신선함으로 흥행에 성공하자 전북에서도 지역축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해 개최되는 지역축제만 90여 개에 달하지만 바가지 요금, 연예인(초대 가수) 의존 등 구태의연했던 축제를 벗어나 돌파구를 찾자는 의미다. 실제로 지역축제를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전북에서 열리는 지역축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방문객은 줄었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나라살림브리핑에 따르면 올해 전북지역 축제 수는 5년 전인 2019년 대비 37개 늘어난 87개다. 지난해 기준 전북 지역주민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2019년 61.3%에서 33.8%p 감소한 27.5%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감소율을 보였다. 외부 방문객 비율도 5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 2019년 56.63%에서 5.86%p 감소한 50.77%다. 방문객이 줄면서 평균 1인당 관광 소비액도 8860원에서 7790원으로 12.13%나 감소했다. 전북 지역축제 방문객이 1만 원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충북(7060원), 경북(7440원)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세 번째로 적은 수준이다. 송진호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역축제의 무분별한 증가보다 질적 개선과 재정 운용의 효율화를 위해 지역축제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심사 및 평가의 개선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 있는 지역축제가 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제언했다. 외부 방문객뿐 아니라 지역민마저 외면하는 지역축제가 늘어나면서 지역축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매년 열리는 천편일률적인 지역축제가 아닌 지역의 독창·정체성이 있는 재미난 축제가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김천시처럼 지명을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도내 일부 시군에서도 재미난 축제가 생겨 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순창의 떡볶이 페스타, 장수의 트레일 레이스, 군산의 짬뽕축제 등이 그 예다. 지명을 활용한 무주의 '주무'세요 힐링 축제, 전주의 '주전'부리 축제, 완주의 '마라톤' 축제 등 다양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류인평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축제는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축제가 잘 됐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축제를 열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천에서 김밥축제가 성공했다고 다른 지자체가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김천처럼 지명을 활용한 축제는 좋지만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살리거나 트렌드를 맞추는 게 핵심이다. 지역 독특한 문화·콘텐츠를 살리면서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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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화성은 외계인, 공주는 무도회 축제⋯전북은?

화성시는 '외계인', 공주시는 '무도회', 고양시는 '고양이' 축제⋯. 최근 김천시가 김밥축제로 화제몰이를 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천시를 이을만한 지명 축제 아이디어가 담긴 재미있는 글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X(엑스·구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김천 성공 봤지?"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화성시는 '화성(Mars·행성)'을 살려 외계인, 공주시는 '공주'를 살려 무도회, 고양시는 '고양'을 살려 고양이 축제를 개최하라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전국 지명을 활용한 아이디어 중 전북지역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본보 디지털미디어국 기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봤다. 고창군은 고창석(배우), 장수군은 100세 축제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중 지명을 반대로해 무주의 '주무'세요 힐링 축제, 전주의 '주전'부리 축제, 완주 '마라톤' 등 3개를 선별해 봤다. 참고로 기자들의 아이디어에 더해 축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열리는 축제가 아니니 독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무주에서 열리는 '주무세요 힐링' 축제? 무주는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밤에 더 즐거운 무주산골영화제와 밤에 예쁜 무주 안성낙화놀이가 장관을 이룬다. 밤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힐링의 대명사가 된 무주에서 조용히 스트레스를 풀고 자연이 선사하는 풍경을 벗 삼아 잠을 잔다면 어떨까. 무주를 뒤집으니 '주무'가 됐고 본보 기자들은 주무세요를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무세요 힐링' 축제다. 타깃은 불면증이나 휴식이 필요한 현대인이다. 일단 잠이라는 테마에 맞게 휴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신나는 노래가 아닌, 수면 음악과 자연 소리를 틀고 잠을 자기 위해서다. 축제 프로그램으로는 불면증 해소 워크숍, 명상과 요가, 아로마 테라피 체험 등을 준비한다. 커피 등 카페인 음료 대신 수면을 돕는 차, 수면과 관련된 잠옷과 아이템 등을 판다. '주무세요 힐링' 축제의 드레스 코드는 누가 뭐래도 잠옷이다. 전주에서 열리는 '주전부리' 축제?전주는 맛의 도시다. 가맥, 비빔밥⋯. 음식이 주가 되는 축제는 많지만 아직까지 맛이나 재미, 심심풀이로 먹는 주전부리가 주가 되는 축제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전주를 뒤집어 만든 '주전'부리 축제다. 전주 고유의 전통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기는 활기찬 축제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역에서 주전부리와 관련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한데 모여 주전부리를 파는 것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 할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는 전주의 대표 음식인 전주 비빔밥·콩나물국밥을 미니어처 크기와 핑거 푸드 형태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1인분도 안 되게끔 작게 만들어 맛만 볼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또 전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주전부리인 전통 떡을 만들거나 과자를 만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고려해 보면 좋을 듯하다. 완주에서 열리는 '마라톤' 축제?앞에 제시한 주무세요 힐링, 주전부리 축제와 다르게 완주의 지명을 그대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은 목표한 지점까지 다 달린다는 의미인 '완주하다'이다. 완주, 완주하다, 마라톤 완주. 그렇게 탄생한 게 완주 마라톤 축제다. 완주는 산과 숲길, 강, 농촌 풍경 등이 매력적인 곳이다. 다양한 자연경관을 최대한 활용한 마라톤 코스가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다. 문화와 역사를 테마로 해도 나쁘지 않다. 완주의 문화유산이나 역사적인 장소를 지나가는 코스를 설정하는 것이다. 챗GPT는 마라톤 참가자들에게 완주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을 추천했다. 완주 특산물 기프트 박스를 제작해 소장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선물하자는 말이다. 마라톤이 펼쳐지는 코스 옆으로는 완주의 지역 특산물을 결합한 부스를 설치하고 곳곳에서 완주의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제안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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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떡볶이·트레일레이스⋯전북 지역축제 '승부수' 통할까

전북 지역축제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는 가운데 김천이 던진 '김밥축제'라는 승부수처럼 전북이 던진 승부수가 통할지 관심이 모인다. 순창군에서 떡볶이 페스타가 열리는가 하면 장수에서는 귀촌한 청년들이 모인 러닝크루가 스포츠 축제인 트레일 레이스 대회를 개최하면서 연일 화제가 됐다. 이를 비롯해 최근 군산 짬봉축제 등 기존 지역축제의 틀에서 벗어난 참신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 전북을 대표할 참신한 축제로는 오는 16∼17일 이틀간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순창발효테마파크 일원에서 열리는 순창 떡볶이 페스타가 꼽힌다. 떡볶이 페스타는 순창발효관광재단이 지난 5월 2024 지역혁신사업(RIS) 정책 자율과제 공모에 최종 선정되면서 추진됐다. 재단은 기존 순창장류축제가 열리고 있는데다 순창을 대표하는 순창 전통장류산업 활성화를 위한 미식 관광 프로그램인 떡볶이 페스타를 기획했다. 떡볶이 부스를 전통·퓨전·글로벌·지역 부스로 나누고 우수 떡볶이 시상식, 플리마켓, 문화예술 체험, 순창고추장민속마을 트레킹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 순창 떡볶이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순창의 독특함과 정체성을 보여 주겠다는 목표다. 떡볶이 페스타를 기획한 재단 관광산업팀의 이영 주임은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노후화되면서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고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한 점에 집중했다"면서 "아무래도 고추장 이미지가 MZ세대에게는 올드(늙고 오래된)한 이미지이다 보니 MZ세대의 관심도를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매력을 느낄만한 축제를 찾다가 떡볶이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순창뿐 아니라 장수에서도 기존 지역축제의 틀을 깬 축제가 만들어졌다. 올해로 4회째 개최된 장수 트레일 레이스다. 지난 9월 말에 열린 제4회 장수 트레일 레이스 대회를 주관한 것은 다름 아닌 장수러닝크루(대표 김영록)다. 5개 코스에 국내외 17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해 장수군의 천혜의 자연 속을 달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12개국 선수들이 참여해 국제대회로 인정받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구 2만 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장수군을 들썩이게 하는 축제로도 자리매김했다. 이후 장수군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트레일 레이스 제1회 캐니크로스 장수 축제를 만들어 또 한번 관심을 모았다. 이외 군산에서도 이색 축제가 열렸다. 짬뽕특화거리가 있을 정도로 짬뽕으로 유명한 군산은 군산 짬뽕을 비롯해 세계 이색 짬뽕을 만나볼 수 있는 군산 짬뽕 페스티벌을 열었다. 내년 상반기 개최를 목표로 홍어 주산지로 떠오른 군산 특산물인 박대·대구의 글자를 딴 '홍대 클럽 축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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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김천이 쏘아올린 '김밥축제', 역발상 통했다

“김천이요? 김밥천국 말하는 거죠?” 최근 김 한 장 나지 않는 내륙도시 경북 김천시가 지명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김밥축제’를 열어 대박을 터트렸다. 지명이 비슷한 것 외에 김밥과 연관성이 없는 '김밥축제' 개최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축제 기간인 지난달 26일부터 이틀간 인구 13만 소도시인 김천시에 관광객 10만여 명이 몰리면서 SNS에는 ‘이 정도면 침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밥축제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시작됐다. 김천시는 올해 초 ‘MZ세대를 대상으로 국내 여행 트렌드 조사’를 진행해 ‘김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이에 응답자 중 대다수가 분식 가맹점인 ‘김밥천국’을 줄인 말인 '김천'이 떠오른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밥축제를 기획한 박보혜 김천시 관광마케팅과 주무관은 "김천시와 김밥은 큰 관계가 없지만 김밥천국의 인지도를 이길 수 없다면 이미지를 활용해 김밥 그 자체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좋다는 마음으로 축제 준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주무관은 "기존에 특별한 축제가 없었다 보니 김천시 안에서는 '일단 뭐라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다행히 김밥축제라는 의견을 던졌을 때 내부에서 큰 반발이 없어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밥축제의 ‘대박’ 요인은 무엇일까. 정확한 수요층 파악, 연예인에 의존하지 않는 콘텐츠, 참신한 홍보영상 등 기존 지역축제의 틀을 깬 ‘역발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축제 방문객인 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SNS상에서 재차 언급되며 입소문을 탔다. 김밥축제 탄생 비화를 소개하는 SNS 게시물에는 “축제 방문객 입장에서 최대한 여러 종류의 김밥을 먹어보고 싶을 테니 김밥을 반 줄만 판매해달라”, “축하 공연으로는 ‘김밥’을 부른 ‘더 자두’를 꼭 불러달라”, “옛날 소풍 느낌이 나도록 돗자리 존을 설치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에 김천시 관광마케팅과는 해당 댓글들을 상단에 고정하거나 “돗자리 존 메모”라는 답글을 달아 호응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김밥축제에 반영했다. 이번 김밥축제는 최대한 많은 김밥을 맛보고 싶은 방문객들을 위해 ‘반 줄 김밥’을 판매했다. 연예인도 딱 한 명 불렀다. 과거 ‘김밥’이라는 노래를 부른 ‘더 자두’를 초대해 분위기를 띄운 것. 특히 일회용품 대신 뻥튀기를 그릇 삼아 김밥을 담아주며 친환경 축제라는 호평도 받았다. 홍보 영상도 남달랐다. 김밥축제의 마스코트인 '꼬달이(김밥 꽁다리)'와 한 여성이 출연했다. 영상 내용 중 "부산 국밥, 대전 빵이라면 대구 막창, 전주 비빔밥. 우리 김천은 고민했달. 무엇으로 유명해질까 말이달. 김천 하면 김밥이라고 꼬달이가 결심했달. 김천, 김밥천국. 우리는 이제부터 김밥이달"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여기에 ‘김천’ 하면 김천시보다 김밥천국의 줄임말이 더 유명한 것에서 착안해 “이제부터 내가 김밥 위에 서겠다”는 자막과 함께 실제로 김밥 위에 선 여성의 모습을 비춰주며 화제를 모았다. 김밥축제의 뒤를 이어 경북 구미시의 ‘라면축제’까지 관심을 받았다.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2024 구미라면축제’에는 17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화제성을 입증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 라면축제는 구미시에 전국 최대 규모의 라면 생산시설인 ㈜농심 구미공장이 있어 기획됐다. 이번 라면축제에는 치열한 경쟁 끝에 전국의 이색 라면 맛집 18개 업체가 모여 각자의 음식을 선보였다. 여기에 토핑과 면, 라면 봉지까지 방문객이 직접 고를 수 있는 ‘구미라면공작소’와 수프 맛을 보고 라면 브랜드를 맞추는 ‘라믈리에 선발대회’ 등 라면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라면축제는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3단 사다리 위에서 인파 밀집 정도를 살피는 '키다리 경찰관'이 현장을 통제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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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8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3)<취의록>과 <거의록>- 고창지역 수성군 기록물

202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하나로 등재된 <취의록>과 <거의록>은 전북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특히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민간 보수층의 움직임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취의록>은 1894년 9월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참여한 수성군의 명단을 기록한 자료이다. 모두 1책 44면으로 되어 있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수성군 성명을 지역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수성군에 참여한 인원은 고창 424명, 흥덕 77명, 고부 25명, 장성 8명, 무장 48명 등 총 582명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강영중 등 5명의 명의로 9월 9일 작성된 취의통문(聚義通文)이 첨부되어 있어, 수성군을 조직한 이유와 목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동학농민군을 역적으로 간주, 의를 들어 토벌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894년 9월 9일 통문을 돌려 <취의록> 명단과 같은 수성군을 모집하였으나,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흥덕 이서면 용강에 살던 유학자 강영중은 고창과 흥덕지역에 살던 지인들과 자주 만나 모의한 끝에 수성군을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흥덕현감 윤석진(尹錫禛)의 동의하에 9월 9일 자신을 비롯한 8명의 명의로 ‘취의통문’을 돌려 수성군을 모집하였으나, 이 때는 동학농민군 힘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군사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영중 등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시국을 관망하였다. 그러다 전봉준부대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인 11월 15일 다시 수성군을 조직하고자 흥덕현감 윤석진의 동의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윤석진은 “의거를 청한 일은 함부로 허락하기 어렵다. 왕의 군대가 당도할 때 마땅히 직접 묻고 허락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정부군이 고창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거사를 만류하였다. 대부분의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점령하기 위해 나주쪽으로 남하하였지만, 아직 차치구가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이 고창지역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차치구는 전봉준의 후군대장으로서 공주와 논산 전투에서 패배한 뒤 흥덕으로 후퇴하여 머물러 있었다. 고창지역 수성군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정부군과 일본군이 전라도로 남하한 11월 하순 이후부터 1895년초이다. 1책 27면 분량의 <거의록>은 바로 고창지역 수성군이 활동한 시말과 그 과정에서 생산한 문서들을 모아놓은 기록물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거의록>에는 1895년 4월에 백낙규가 작성한 ‘흥덕・고창 창의서’를 서문으로 실은 뒤, 1894년 9월 9일 강영중 등 8명 명의로 작성된 ‘창의사실’, 1894년 11월 고창 유생 김영철 등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상서(上書), 1894년 11월 25일자 비밀지령, 1894년 11월 29일 전령, 1894년 12월 흥덕 유생 강영중 등이 정부군 앞으로 올린 상서, 1894년 12월 장성에 도착한 정부 진압군(양호순무선봉진)에서 흥덕 수성소에 보낸 전령, 흥덕・고창 수성청 좌목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거의록>은 1895년 4월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뒤 관련 사실과 자료들을 모아 필사해 놓은 기록물로서, 고창지역 전현직 관리와 유생들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어 동학농민군의 죽음 이면에 있는 보수유생층의 동정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실제 흥덕현감 윤석진은 11월 25일 태도를 바꾸어 <거의록>에 수록된 비밀지령을 내려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 무렵 정부군 230명은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11월 30일 고부, 12월 1일 흥덕, 12월 2일 무장으로 진입하였다. 이들은 일부 병력을 무장에 남겨놓은 채 12월 6일 영광으로 이동하였다. 무장은 손화중의 근거지이자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더 엄중히 수색하였다. 이러한 정부군의 전략은 적중하였다. 그 무렵 손화중은 12월 1일 광주에서 동학농민군을 해산한 뒤 12월 3일 이후 고창지역으로 되돌아왔고 홍낙관도 광주에서 흥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집을 떠난 고창지역 다른 동학농민군들도 12월 3일 이후 광주에서 속속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부군과 수성군이었다. 홍낙관은 12월 9일 흥덕 임리(林里)에서, 손화중은 12월 11일 체포되었다. 무장에 머물며 손화중 등 거물급 지도자를 체포한 정부군은 손화중과 홍낙관을 함평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에게 압송한 뒤, 12월 19일 무장에서 김광오(金光五) 등 4명을 체포하였다. 20일에는 고창읍으로 행군하여 김치삼(金致三)․남사규(南士奎)를 생포하였다. 다음 날에는 흥덕에서 이백오(李伯五) 등 5명을 붙잡아 일본군에게 압송하였다. 이렇게 1894년 12월에 들어와 고창지역을 일본군의 지휘를 받는 정부군이 장악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러자 강영중 등은 당시 장성에 머물로 있던 양호순무선봉진 우선봉 이두황에게 소장을 보내, 흥덕현감에게 흥덕·고창·무장 3읍의 수성 책임을 맡게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이두황은 12월 7일자로 흥덕 수성소에 전령을 내려, 동학의 각 접주들이 각 마을에 다수 은닉해 있을 것이니 이들을 색출하여 그 가운데 행패가 심한 자들은 백성들을 모아 즉시 처형하고 나머지 위협에 의해 할 수 없이 따라다닌 자들은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전령은 <거의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흥덕 수성소를 중심으로 고창지역 수성군은 숨어 있는 동학농민군을 찾아내 처형하거나 일본군에게 인계하는 등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거의록>에 수록된 ‘흥덕・고창 수성청 좌목’과 같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수성소가 설치되고 수성군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면서, 그 동안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뒤 귀가한 동학농민군들이 속속 체포되었다. 실제 흥덕 수성군은 12월에 숨어 있는 동학농민군을 샅샅이 수색하여 서상옥(徐相玉)과 정무경을 체포하여 즉시 효수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나주에 갔다가 흥덕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흥덕의 대접주였던 고태국도 수성군에게 체포되어 효수되었다. 그 외에 많은 고창지역 동학농민군들이 수성군에 의해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죽거나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효수되었다. 이런 동학농민군의 비참한 실상이 비록 <취의록>과 <거의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균형있게 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수성군 활동은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졌지만, 관련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지역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취의록>과 <거의록>은 고창지역 수성군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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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11.07 17:49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가을…"고창으로 단풍구경 오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 보물을 자랑하는 특별한 도시, 고창군은 태고의 신비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매년 가을 풍경을 즐기려는 1300여만 명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고창의 단풍 명소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 코스를 소개한다. △선운산의 고즈넉한 가을 풍경 고창의 가을 단풍 여행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선운산이다. 선운사 앞을 흐르는 도솔천에 단풍잎이 물들면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마치 축제의 현장을 걷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가을의 차분한 정취 속에서 걷다 보면 힐링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또한, 단풍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애불은 국내에서 가장 큰 15.7m의 마애불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특히, 동학농민운동 당시 비밀 기록이 발견된 장소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수사와 애기단풍 문수사로 가는 길에는 특별한 애기단풍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100년생에서 400년생에 이르는 단풍나무 약 500그루가 있어 ‘애기단풍’으로 불리는데, 그 작고 고운 잎이 고유한 매력을 더한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숲 속에서 걷다 보면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감싼다. 문수사의 단풍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신비롭고 붉은빛 가을 풍경이 가득하니, 이 계절이 끝나기 전에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 코스 고창군과 고창문화관광재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를 활용한 다양한 관광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당일 코스로 ‘유네스코가 선정한 7가지 보물을 찾아서’ 코스는 전봉준장군 동상, 판소리박물관, 고인돌유적지, 운곡람사르습지, 병바위, 선운사, 갯벌센터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가을 속으로 떠나는 여행 코스는 고창읍성, 판소리박물관, 병바위, 선운사, 농악전수관, 학원농장을 거쳐 가을의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박 2일 코스는 1일차에는 판소리박물관과 병바위, 선운산을, 2일차에는 고인돌유적지, 운곡람사르습지, 갯벌센터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유네스코 7가지 보물을 돌아보는 고창 스탬프 투어도 진행 중이다. △고창읍성 성곽길 공북루 조선 전기에 세워진 고창읍성은 전국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 기지로 사용됐다. 이곳에서는 답성놀이를 할 수 있으며, 이 전통 문화는 많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곽을 따라 공북루에 이르면 아름다운 고창의 전경이 펼쳐진다. 또한 성내부 숲길의 대나무 군락지에서는 매일 저녁 환상적인 야간 조명 쇼가 열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운곡람사르습지 운곡람사르습지는 인간의 손길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복원한 생태계의 보고로, 곤충, 식물, 파충류, 조류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운곡람사르습지를 탐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으로, 인기 코스는 약 3.6㎞의 1코스다. 탐방열차도 운행되고 있어 편리하게 습지의 생태를 감상할 수 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고창군은 태고의 신비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며 “선운산, 문수사 단풍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를 품은 고창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 기획
  • 박현표
  • 2024.11.07 17:29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전주형 15분 생활권 도시 논의와 과제

지난 2020년 프랑스 파리 시의 안 이달고 시장이 ‘15분 도시’공약을 제시한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주 멜버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n분 도시 정책이 전개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서울, 부산, 제주 등에서 15분 도시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권 도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도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 등 메가트렌드와 도심 쇠퇴, 도시 내 불균형 심화 등 다양한 도시 문제에 대응하여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15분 도시 개념과 지역에서의 생활권계획 수립 논의를 바탕으로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을 위한 과제를 제안한다. △‘15분 도시’란 무엇인가? ‘15분 도시’는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파리 소르본 대학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써 '학교, 문화시설, 의료시설, 공원, 상점 등 생활에 필수적인 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도시에 살 권리>라는 책에서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기본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주거, 업무(일), 교육(학습), 건강(돌봄), 여가(즐거움), 생활서비스 공급’을 제시하였으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6가지 필수 서비스에 대한 ‘근접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5분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인구 밀도’를 유지하고, ‘토지이용의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스마트시티와 같은 ‘디지털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로, 근접성(proximity)은 15분 도시의 핵심 개념으로써 시·공간의 가까움, 이동성과 접근성이 결합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15분 도시와 생활권 계획 서울, 부산, 제주, 청주 등 국내 주요 지역에서는 ‘15분 도시’ 정책과 ‘생활권계획’을 연계하여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는 15분 생활권도시 전략을 세우고, 생활권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제주에서는 15분 도시에 대한 기본구상을 바탕으로 생활권계획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도시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청주에서는 일상생활권 개념을 반영하여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참고로, ‘생활권계획’은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의 중간단위 계획으로서 사전적 정의는 '도시기본계획의 내용을 생활권별로 구체화하는 동시에 도시관리계획의 지침적 역할을 하는 계획'이다. △전주시 생활권계획 수립 필요성 및 논의과정 지역에서 ‘15분 도시’와 ‘생활권계획’논의를 시작한 것은 2020년 12월이다. 전주시 도시계획 분야 민관거버넌스 단체인 전주도시계획협의회 회의 때 2035 전주시 도시기본계획 상 생활권계획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안과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도시기본계획 재정비와 생활권계획 수립이 필요한 이유는 기본계획 상 생활권 구분에는 개략적인 개발구상과 인구배분계획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점과 인구배분계획이 생활권별 지역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2021년 10월 생활권계획 수립 준비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2022년에는 마을계획과 생활권계획을 연계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2023년 7월에는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주관하여 15분 도시 솔루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난 4년 간의 논의과정에서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 그리고 행정에서 생활권계획 수립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계획 수립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생활권계획 수립을 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7월 시행)으로 도시계획을 생활권 단위로 수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전주시 생활권계획 수립도 가능해졌다. 다음에서는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을 위한 과제들이다.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 과제 첫째, 생활권계획 수립 시 도시 내 균형 발전과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수립해야 한다. 전주는 신도시 개발과 구도심 쇠퇴 등으로 인해 서부-북부 축을 중심으로 도시가 불균형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전주시 관내 도시개발사업이 북부생활권(에코시티, 만성지구), 서부생활권(서부신시가지, 효천지구)에 집중되었으며, 신시가지 조성 이후 다수의 공공기관과 중심상업·업무 기능이 구도심에서 신도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전주시 인구 통계 자료를 보면 외곽 신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구도심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택가격, 지가, 용적률, 생활SOC 등에 있어서도 신도시 지역과 구도심 지역 간에 지역 간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기성시가지 기능 유지를 위한 생활권별 적정한 인구 배분이 필요하다. 2015~2024년 전주시 생활권별 인구 변화 추이 분석 결과 북부생활권을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추세이며, 특히 중앙생활권 및 동부생활권의 인구 감소세가 크다. 그런데, 2035년 도시기본계획 상 생활권 인구배분계획을 보면 현재 인구가 많은 서부와 북부 생활권 인구 규모를 더 늘리고, 인구가 적은 중앙·남부·동부 3개 생활권 인구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어 있다. 생활권별 지역 간 격차 완화와 기성시가지 인구 유지를 위해서는 생활권 인구배분계획 시 인구 변화 추이를 반영하고 현 계획내용에서 서부·북부생활권의 계획인구는 일부 하향 조정하고, 중앙·남부·동부생활권 계획인구는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도시개발사업, 재개발·재건축 등 주택공급을 관리하고, 도시재생·주거·교통·녹지 등을 생활권 단위로 통합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활권별 인구계획에는 도시개발사업과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주택사업의 영향이 크므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과 연계하여 생활권별로 예정된 도시개발사업 및 정비사업 리스트와 주택공급 계획을 작성하고 적정규모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생활권계획을 통해 장소 단위로 분야 간 사업을 연계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시 동 단위를 중심으로 인적·물적 자원들과 여러 분야의 사업들을 연계하고, 각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거점시설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넷째, 생활권계획의 틀에서 마을계획과 소생활권 계획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전주시 마을계획은 주민주도로 동 단위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업으로 2015년 중앙동, 풍남동을 시작으로 매년 2~3개 동씩 계획을 수립하여 2024년 현재 총 24개 동의 마을계획 수립을 완료하였다. 마을계획은 수립 범위가 행정 동 단위이므로 소생활권 단위의 계획과 연계하는 것이 적합하고, 이때 마을계획 수립과정에서 발굴한 지역 자원과 의제 등을 생활권계획에 담으면 계획의 실행력을 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15분 도시’개념과 전략을 반영하여 주거, 업무, 교육, 건강, 여가, 생활 등에 대한 근접성을 높이고, 토지이용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서비스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에는 도서관, 공원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를 공급·재배치하고,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수 사회서비스가 결핍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들을 15분 생활권도시 계획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지역 특성과 시민 수요를 반영하면서도 15분 도시 개념을 충실히 반영하는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이 수립되길 기대해 본다. 장우연 독립연구자, 전)전주시 정책연구소 연구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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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6 18:30

[배리어프리, 공공디자인에서 인권을 찾다] ⑤독일,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 실천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4개 단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장애인 버스정류장 이용 등에 관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버스정류장을 개선하고, 교통약자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취지에서였다. 지난 2021년에도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출근길 시위를 진행했다. 출근길 시위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막는 사회 구조와 그간 외면했던 교통약자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시위 과정에서 표출된 장애인 혐오와 비난 수위가 높아지면서 정작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반면 교통약자 이동권에 성숙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모범도시 독일은 기존 시설을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통약자가 겪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인다.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물리적,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모두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개념이 사회 전반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독일 전국 16개 정부는 2022년 1월 1일까지 모든 지자체가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 운송법 제8조 1항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독일은 배리어프리를 달성하기 위해 교통 환경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베를린에서는 6600여 개의 버스정류장을 배리어프리 기준에 충족하도록 개선했다. 베를린에서는 2009년부터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되고 있으며 2017년 트램 역시 모두 저상화 되어 휠체어 탑승객이 혼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면 우리나라 저상버스 비율은 3~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만 낡고 오래된 역이 많아 철도는 완전한 배리어프리가 구현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베를린 교통공사는 2022년 배리어프리를 포함한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으며, 오는 2030년까지 20조 원을 투자해 모든 기차역에 한 개 이상의 승강장을 완전한 배리어프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대중교통 무엇이 다를까 독일 대중교통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임산부 등 모든 교통약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폭넓게 설계되어 있다. 버스․지하철․지상철의 입구를 넓게 만들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승․하차 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구와 가까운 위치에 교통약자 전용 좌석과 회전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휠체어가 들어가는 공간에도 좌석을 최소 2개 이상 배치해 누구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장애인 좌석 조성으로 자칫 교통약자 특혜라는 부정적 관점을 없애기 위한 시도였다. 독일 정부는 ‘평등할 권리’를 기본 원칙으로 대중교통을 디자인해 심리적 장벽을 제거한 셈이다. 또한 교통약자를 위한 정차 스위치와 손잡이 위치를 다양한 높이로 설치되어 있으며, 접었다 펼 수 있는 수동식 발판(램프)의 생활화로 휠체어 탑승객․유아차 사용자들이 버스와 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버스의 경우 승강장 정차 시 출입문 쪽으로 버스가 살짝 기울어져 휠체어 탑승객․유아차 사용자들의 출입을 돕는다. 수동식 발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가운데 문을 먼저 열어 휠체어 탑승객부터 승․하차 할 수 있도록 한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질서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특정인 배려 아닌, 모두의 편리 위한 움직임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시청 배리어프리 담당자 하인즈(Heinz)는 “독일 전역에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취지만은 아니다”며 “휠체어 탑승자를 비롯해 유아차 사용자, 노인과 어린아이 건강한 성인까지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베를린에서는 지하철 승무원들이 휠체어 승차를 돕는 발판을 설치하고, 그 위로 휠체어 탑승자 뿐만 아니라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도 익숙하게 오르내린다. 또한 휠체어 동선과 경사도가 표시된 길 안내판과 기울어지는 버스까지 독일의 교통약자 정책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일 국민 모두의 편리를 위해 이뤄졌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마틴(Matin)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은 고령자와 장애인뿐만 아니라 임산부와 어린이까지 모든 이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며 “독일에서는 특정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환경 조성 움직임이 해를 거듭할수록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박은
  • 2024.11.04 17:00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객리단길 마저도'…전북 상권 5곳 중 1곳 '텅텅'

코로나19에 고금리·고물가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으로 임차인을 들이지 못한 상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올 3분기 전북지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3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지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8.2%로 9개 도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 5곳 중 1곳은 텅텅 비어 있는 셈이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7.2%, 집합 상가는 16.3%에 달했다. 전국 공실률이 각각 12.7%, 6.5%, 10.1%인 것과 비교해보면 높은 편이다. 전북자치도 내 주요 상권 중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정읍 중심(27.94%)이다. 중대형 상가는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이 330㎡를 초과하는 일반 건축물을 말한다. 정읍 중심에 이어 익산역(26.86%), 전주 동부(26.30%), 김제시장(22.44%), 전주 한옥마을(21.69%), 익산 영등부송(19.58%), 전주 송천동(17.50%), 군산 수송·조촌동(14.86%), 전주 서부 신시가지(14.35%), 군산 원도심(13.89%), 남원 광한루원(13.73%), 전주 서부(9.59%) 등이 뒤를 이었다. 비교적 면적이 작고 임대료가 저렴한 소규모 상가도 공실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주 송천동(15.44%)이 가장 높고 군산 원도심(15.30%), 정읍 중심(13.87%), 익산역(10.26%) 등 순이다. 전북 전역 곳곳에 공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의미다. 중대형·소규모 상가는 소상공인 종사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경기 여건에 따른 소상공인의 경기 체감 정도를 보여 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2024년 10월 소상공인시장 경기 동향 조사 결과 지난달 전북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전월 대비 11.5p 하락한 60.2로 전국에서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핫 플레이스(hot place·명소)로 불리는 전주 객리단길과 전북대 대학로, 신도심인 만성지구∙에코시티, 익산역 앞, 군산 나운동∙영동상가까지 예외는 없었다. 객리단길은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찾았지만 객리단길 옆에 있던 옥토주차장이 폐쇄되면서 주차난이 심각하고 고물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권이 침체됐다. 객리단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코로나19 때보다 안 좋다"면서 "엔데믹 이후 상권이 조금 활성화되거나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안 돼서 다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상가 과잉 공급 등이 맞물리면서 상가 공실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규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북특별자치도회장은 "과거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노후 대비 차원에서 상가에 많이 투자했다. 그때 상가 공급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이어 최근에도 경기 침체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가 과잉 공급에 더해 경기 침체, 고금리, 코로나19 이후 전자 상거래 확산 등의 이유로 핫플레이스, 신도심 등도 예외 없이 공실이 많아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슈되는 특정 가게들만 잘되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4.11.02 08:22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완전 작살났죠"⋯와르르 무너진 '젊음의 명소'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알려진 상권마저 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상권이 엔데믹 이후 다시 활성화되나 싶었지만 고금리·고물가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지역 상권이 침체돼 가고 있다. 과거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에 남은 것은 '공실'뿐이다. 전국 곳곳 대표적인 상권이 텅텅 비어가면서 핫플이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북지역 역시 공실률이 심각한 상황이다. 전북을 대표하던 '핫플' 상권의 현실은 어떨까.전북일보는 기획 1편 <위기의 핫플-'객리단길 마저도'…전북 상권 5곳 중 1곳 '텅텅'>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에 핫플이었던 객리단길, 전북대 대학로, 군산 영동상가∙나운동, 익산역 앞 등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작살났죠, 뭐." 지난주에 찾은 전주 객리단길. 이곳에서 만난 상인 A씨는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19 때보다 장사가 안 된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죽을 맛이다"며 고개를 저었다. 골목마다 큰 상가, 작은 상가 예외 없이 '임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인 코너 상가마저 다른 상가가 들어오는 듯 '오픈 준비 중'이라는 플래카드만 펄럭였다. 과거 손님이 많던 음식점·카페 자리는 비교적 고정 지출이 적은 무인 셀프 사진관·오락실 등이 꿰찼다. 침체된 객리단길의 현실을 짐작게 했다. 명소를 의미하는 핫 플레이스(hot place·핫플)인 만큼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카페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저녁에도 객리단길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실상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주 구도심 지역이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조성된 객리단길은 당시 소자본의 청년 사업가와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객리단길' 붐이 일었다. 상권은 코로나19, 옥토주차장 폐쇄에 따른 주차난, 고물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침체됐다. 과거 객리단길이 있는 객사는 전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핫플 중 하나였다. 전주시민이라면 "어디서 만날까?" 하면 "객사"라는 답이 바로 나올 정도였다. 전주의 중심부에 위치해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지만 지금은 상권이 침체되면서 명성을 잃어 가고 있다. 상인 A씨는 "저야 건물이 집이니까 버티지, 아니었으면 폐업했을 듯하다. 객리단길이 초반에는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상가가 많이 들어왔다. 벌이가 안 되니까 프랜차이즈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다 빠지고 또 들어왔다가 다 빠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 대학로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매년 학기 중 전공 서적을 품에 안고 선·후배 간 왁자지껄 떠들며 '젊음의 성지'로 불렸던 대학로는 이미 활력을 잃은지 오래됐다. 서부 신시가지가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른 데 이어 학생 수는 점점 줄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정착한 것도 대학로 침체에 한몫했다. 이전에는 음식점·카페에 모여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포장·배달이 익숙해진 것이다. 여러 명이 모이던 문화도 사라지고 소모임 형태로 바뀌기도 했다. 객리단길보다 유동 인구가 많아 저녁이 되면 여전히 북적이긴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학로가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었지만 객리단길과 유사하게 지나다닐뿐 내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최유일 전북대 대학로 상인회 수석부회장은 "요즘 (대학로 상가가) 다 어렵다. 10년 전에 비해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조금씩 안 좋아졌는데 코로나19가 온 뒤로 더 안 좋아졌다. 엔데믹 이후 활기를 찾나 했지만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면서 "사람이 안 돌아다닌다. 손님이 줄면서 매출도 떨어졌는데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 지출은 계속 올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군산·익산도 예외는 없었다. 군산 상권의 상징이었던 영동 상가는 전체 120여 개 매장 중 현재 20여 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저녁이면 이 일대가 어두운 공간으로 변하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 또한 나운동 시민문화회관 앞 상가도 문 닫은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과거 뷰티샵을 비롯해 의류매장, 스포츠웨어 매장 등이 운영됐던 이 곳은 나란히 상가임대 안내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중심상권 지역이었던 영동(원도심)을 중심으로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비교적 양호한 상권을 자랑했던 수송동 역시 간혹 빈 점포가 발견되면서 경기 불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이 같은 경기불황이 지속될 경우 원도심처럼 지역 곳곳에 슬럼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때 ‘작은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였던 익산역 앞 문화예술의거리(옛 영정통)는 1990년대 이후 신도심 개발 등으로 익산의 중심이 영등·부송동 일대로 옮겨가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버렸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번화가의 명성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익산시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의지를 갖고 지난 십수 년에 걸쳐 문화예술의거리를 조성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일부 입점해 있는 공방·카페·식당이나 이따금씩 열리는 단발성 행사 외에 사람들로 가득 찼던 예전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익산아트센터와 익산근대역사관이 보다 활성화되고 익산시가 전략적으로 추진 중인 치킨거리 조성과 인근 1382세대 규모 아파트 입주가 내년 3월 이뤄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예전 같은 활력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실정이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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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1.02 08:21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명소' 꿈꾼 신도심 상권도 '공실 공포'

상권이 무너진 것은 기존의 '핫플'뿐만이 아니다. 가게 문을 열기 전 "나는 망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신도심인데", "랜드마크가 될 텐데", "상권이 좋다는데"라는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부푼 꿈을 안고 '핫플'을 꿈꿨던 신도심마저 '공실 공포'에 떨고 있다. 랜드마크를 기대했던 곳의 꿈도 좌절됐다. 기존에 핫플이었던 객리단길, 전북대 대학로 등에 이어 침체된 신도심 중 만성지구와 개장 전부터 랜드마크 기대감이 컸던 에코시티 대형 건물 등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그냥 사람이 없어요." 지난주 오후 7시 30분께 찾은 전주 만성지구는 썰렁했다. 한창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닐 시간이지만 거리는 텅텅 비었다. 불이 켜진 상가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곤 한두 테이블,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10여 테이블이 찬 곳은 상가 한두 곳뿐이었다. 만성지구는 조성 당시 전주지방법원과 전주지방검찰청 등 법조타운이 만들어져 전북의 법·행정 중심지로 발달해 상권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 집 건너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상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1층마저 대부분 공실이었다. 법조타운을 둘러싼 건물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상가가 아닌 변호사·법무사 사무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만성지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오후 9시만 돼도 사람이 하나 없다. 나만 돌아다니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사실 나도 장사를 해 봐서 알지만 아마 지금 저기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가 바싹 마르는 듯할 것이다. 처음부터 장사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음식점은 없을 텐데 보기만 해도 내가 다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에코시티에 위치한 한 대형 상가 건물도 만성지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개장 소식이 들려오면서 한때 SNS를 뜨겁게 달궜지만 실상 입점한 곳은 많지 않다. 타 지역의 대형 아울렛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공실 공포'에 빠진 것이다. 해당 건물에는 폐업 후 미처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상가도 눈에 들어왔다. 상가 출입문에는 올해 초 배달온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상가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듯 출입문 손잡이에 보호 스티로폼이 그대로 붙어 있는 곳도 많았다. 에코시티에서 만난 한 시민은 "집 주변이라 영화를 보려고 자주 오는데 사람이 없어서 넓은 영화관을 전용관처럼 혼자 본 적도 있다"면서 "이 건물에 올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있는 상가의 불이 꺼져 있고 상가도 텅텅 비어 있어 무서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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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1.02 08:2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2)난파유고(蘭坡遺稿)>와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1. 〈난파유고(蘭坡遺稿)〉와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개요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은 모두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라도 나주의 수성군에 가담하였거나 호응하여 활동한 나주 출신 인사들이 남긴 문집이다. 따라서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에는 서로 겹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발발 직후부터 목사 민종렬이 중심이 되어 수성군을 조직하고 농민군의 진입을 저지하였다. 때문에 나주는 운봉, 제주와 함께 전라도에서 농민군 집강소가 설치되지 않은 드문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또 농민군의 1894년 10월 28일에는 나주에 호남초토영(湖南招討營)이 설치되고 목사 민종렬이 호남초토사로 임명된 이후 나주 수성군은 나주와 인근지역의 농민군을 진압하는 거점이 되었다.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에는 나주 수성군을 중심으로 한 민보군과 농민군이 나주 인근 지역 곳곳에서 벌인 자세한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전라도 서남부 일대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전투 상황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손화중·최경선·오권선‧배상옥 등이 이끄는 나주, 광주, 무안 일대의 농민군 활동에 대해서 다른 자료들에 비해 매우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2. 〈난파유고〉 〈난파유고〉는 나주의 향리가문 출신으로 호장(戶長)을 맡고 있다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 수성군 도통장(都統將)에 선임되어 사실상 나주 수성군을 지휘하였던 정진석(鄭錫珍, 1851~1896)의 문집으로 4권 1책이며 1913년에 간행되었다. 정석진의 자는 태완(台完)이며 난파(蘭坡)는 그의 호이다. 정석진이 이끈 나주 수성군은 나주성 수성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난파유고〉에는 정석진의 글 몇 건과 그가 도통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농민군을 격퇴한 공을 기리는 나주 유생들의 글, 그리고 나주지방 농민군과 벌인 전투 상황을 소상히 기록한 <정장군토평일기(鄭將軍討平日記)> 및 그의 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토평일기>의 서문은 〈금성정의록〉을 저술한 나주 유생 이병수(李炳壽)가 썼다. 〈난파유고〉에는 1894년 7월초에 전개된 나주성 공방전과 10월~11월에 걸쳐 일어난 침산 전투(10월 21일), 용진산 전투(11월 13일), 고막포 전투(11월 18일), 함박산 전투(11월 23일) 등의 전투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토평일기〉말미에는 동학농민군에 의한 장흥 강진 병영의 잇따른 함락 소식과 영암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특히 수성군과 정석진이 맹활약하던 10월 말 이후에도 수성군의 핵심을 이룬 것은 향리층이었으며, 이들은 수성군에 소요되는 재정을 지원하기도 하였다는 사실도 〈난파유고〉에 잘 기록되어 있다. 한편 〈난파유고〉에는 무엇보다 전라도 서남 지역의 대표적인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고막포(古幕浦) 전투에 대해 전개과정 뿐만 아니라, 각지로부터 농민군이 진격하고 진지를 치는 과정, 이에 대응하여 민보군과 관군이 배치되는 상황 등의 전후 상황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난파유고〉에 따르면 고막포 전투는 11월 18일 일어났지만, 1894년 11월 17일부터 고막포 주변으로 무안, 함평일대의 농민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그 일대의 산봉우리 등에 진을 치고 있던 농민군의 수자는 5~6만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어 고막교(古幕橋)까지 퇴각하던 농민군이 수성군의 추격에 쫓겨 조수로 인해 불어난 물에 빠져 죽는 참상 등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전투 상황을 적어두고 있다. 3. 〈금성정의록〉 〈금성정의록〉은 나주의 유생 이병수(李炳壽, 1855~1941)의 문집 〈겸산유고(謙山遺稿)〉 권19·20에 수록되어 있다. 나주 일대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갑‧을‧병 3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은 주로 갑편에 실려 있다. 평소에 제자들을 가르치며 교유(校儒)로 살아가던 이병수는 1893년 12월 부임한 나주 목사 민종렬(閔種烈)이 당시 동학이 확산되어 가던 동학에 대응하기 위해 향약을 강화할 때 직월(直月)을 맡아 도약장(都約長)인 진사 나동륜(羅東綸)과 함께 이에 적극 호응하였다. 1894년의 기록에는 먼저 나주의 접주 오권선(吳權善)에 대해 쓰고 있으며, 4월에 목사 민종렬의 주도로 수성군을 조직한 일, 그 직후 민종렬이 전봉준과 글을 주고받은 일, 7월 초에 전개된 나주성 공방전, 이어 8월 13일 전봉준이 찾아와서 나주 목사 민종렬과 담판을 벌인 일, 10월~11월에 걸쳐 일어난 용진산 전투, 침산 전투, 고막포 전투, 함박산 전투 등의 전후 상황과 전투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을편에는 동학농민군 진압과 관련한 군공을 적은 「초토사보군공별지(招討使報軍功別紙)」, 군공을 인정받고 난 뒤 그 축하 글인 「본주인사하군공록(本州人士賀軍功狀)」, 장성의 유생 기우만(奇宇萬)이 정석진에게 보낸 「토평후기증정장군서(討平後寄贈鄭將軍書)」, 기우만이 쓴 「토평비명병서(討平碑銘竝序)」 등이 실려 있다. 병편에는 1896년에 나주와 장성 등지의 유생들이 일으킨 의병을 관련 사실을 기록하였다. 〈금성정의록〉에는 몇 가지 특기할만한 내용들이 있다. 우선 도통장인 호장 정태완을 비롯하여 주요 직책과 명단, 편제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또 각 마을의 청년들을 60개 초(哨)로 나누어 수성군으로 편성하였다는 점, 이들에게는 성 한편에 군막사를 지어 기거하게 하고 군량과 부식도 지급하였다는 사실을 적어핵심 간부들은 모두 전현직 향리층이 맡고 있었다. 다른 자료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또 〈금성정의록〉에는 전봉준과 나주 목사 민종렬 간의 서신 교환, 그리고 직접 담판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즉, 무안(4월 9일 점령)과 영광(4월 12일 점령)을 거쳐 진군하던 농민군은 나주성의 수비가 매우 엄한 것을 보고 함평읍으로 방향을 바꾸어 몇 일 동안 유진하던 농민군이 나주 (공형)에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싣고 있다. 이 역시 일부 자료에서만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특히 농민군의 서신에 대해 민종렬이 “명분 없는 군사는 법에 의거하여 마땅히 죽여야 하며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답신을 했다는 사실은 〈오하기문〉과 〈금성정의록〉에만 나오지만, 〈금성정의록〉에는 전후 사정이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과 〈관민상화(官民相和)〉를 합의한 다음 8월 13일 나주 목사 민종렬을 찾아 담판한 전후 사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담판한 내용이나 상황이 목사 민종렬을 치켜세우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지만, 역시 다른 어떤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전봉준 공초>에서는 8월 그믐 사이에 전라감사의 ‘영(令)’을 가지고 나주로 가서 민보군을 해산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공술하였다)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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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1 19:42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전주다운 새로운 축제의 탄생, 그 지속을 기대하며

2023년 전주에 새로운 형태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축제의 이름은 ‘전주예술난장’. ‘난장’이라는 단어에서 옛 풍남제 난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필자 또한 그랬다. 전주종합경기장 일대의 백제로의 차량을 통제하고 그 큰 대로를 걸어다니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흥분되는 일탈이었다. 여기저기 질서없이 틀어대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산처럼 쌓아놓은 음식을 보며 군침을 다시거나 코를 킁킁 거리고, 기웃기웃 사람 구경을 하며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다니는 일은 목적이 없어도 그저 재미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같은 반 친구들 우연히 마주치면 오늘 학교서 만났지만 왠지 더 반가워 두 손을 붙잡고 폴짝폴짝 뛰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학교에서 지난밤 난장에 다녀온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서 너 그거 봤어? 넌 뭐 먹었어? 하며 은근 자랑도 했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구걸하는 걸인도 있었고, 종종 사람들이 싸움도 하고, 얼큰하게 취한 취객이 경찰과 실랑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른들은 늘 외지에서 음식을 파는 장사치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는다고 욕하곤 했다. 무질서 자체였지만 매년 전주 사람들은 난장을 기다렸고, 어린 필자도 좋아하지도 않는 뽕짝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따라 난장에 어서 가야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전주 난장의 여러 단점들이 문제화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그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북연구원 장세길 박사는 풍남제 난장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를 풍남제를 관광객이 오는 관광축제로 발전시키자는 전문가와 언론으로 의견으로 인해 본연의 일탈성을 금지하고 질서있게 정리하면서 재미없고, 특색도 없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축제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돈 버는 축제를 만들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인해 전주 시민들의 일탈의 창구였던 시민축제만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전주예술난장’을 기획한 사람들이 ‘난장’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난 날의 ‘난장’을 기억하는 전주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려고 했는지, 난장의 일탈성을 되살리고자 의도했는지는 잘 모른다. 전주에 ‘예술’과 ‘난장’을 붙인 축제 이름이 처음에는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이 축제가 ‘거리예술축제’라는 것을 알고 나니, 꽤 적합한 이름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요즘 새로 만들어지는 축제 이름에는 선을 넘는 장난스러움이나 적합하지 않은 영어표현이 다수인데, 한글만 사용한 것도 자신감 있어 보였다. 난장은 그야말로 거리의 판이였고, 그 일탈성의 의미를 거리예술로 연결하여 축제 판을 펼치는 것은 누가 들어도 설득력있을 것이다. 그렇게 2023년 전주예술난장은 한옥마을 일대에서 축제를 시작했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도 2023년 전주예술난장에서 우수한 국내 거리공연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즐거운 관객이 되었다. 특히 축제를 운영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어떤 기관에 위탁하지 않고, 지역의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서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축제운영의 품앗이라고 해야할까? 축제현장에서 소리꾼 S는 관객 안내를 하고 있었고, 기획자 H는 크레인을 섭외하고 예술가들의 안전을 점검했다. 갑자기 만들어진 규모있는 축제에서 전주 예술판의 젊은 일꾼들이 크고 작은 일은 나눠 함께 축제를 만드는 모습이 듬직하게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첫 번째는 장소였다. 한옥마을의 가을은 축제가 없어도 인산인해이다. 그 가운데 축제를 진행하는 것은 왠지 쉬운 시작으로 보였다. 물론 많은 인파를 뚫고 축제를 운영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전주 내에서 한옥마을이 아닌 곳에서 관객을 모으는 것은 기획자들에게 엄청난 과제이기 때문에 한옥마을을 선택한 이유가 이해되긴 했다. 그러나 한옥마을에서 전주예술난장을 만난 관객들은 비록 즐겁게 공연을 봤어도 축제의 존재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그저 한옥마을에 관광와서 운 좋게 만난 공연만 기억하고 전주예술난장이라는 거리축제의 이미지는 희석될 수 있다. 또 하나는 거리예술에 대한 이해였다. 거리예술은 그저 거리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실내공연장에서 하던 컨텐츠를 거리에서 그대로 공연하는 것은 거리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도 거리에서 하는 공연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거리예술은 거리(밖)라는 공공의 영역에 예술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예술장르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독창적인 예술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대중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연구와 방법이 면밀히 고려되야하는 장르이다. 거리예술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 감동을 주는 방법,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 해당 예술 장르의 적합한 구현 방법 등 깊이 있게 연구하고 접목해야하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서울, 안산에서 이미 거리예술축제는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과천은 우리나라 거리예술축제의 대표격인 축제가 있었는데, 행정기관의 아쉬운 판단으로 옛 명성은 사라졌다. 각각의 거리축제마다 대중성, 예술성, 거리예술 창작 등 균형있게 축제를 운영하고자하는 고민들이 수년째 진행되고 있다. 전주예술난장은 거리예술축제의 후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전주의 예술적 장르와 지역 문화행사의 성격들은 넓게 비교해 볼 때 거리예술축제는 가능성 높은 장르로 보인다. 2024년 두 번째 전주예술난장이 펼쳐졌다. 나의 아쉬움을 누군가에게 말한 적도 없는데, 그 아쉬움이 채워졌다. 장소가 변경되었는데, 매우 도전적인 장소였다. 팔복동의 산업단지. 와! 나는 감탄이 나왔다. 용기있는 선택! 팔복동은 지금도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있는 삶의 일터인 공장과 들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된 문을 닫은 공장, 그리고 어떤 토양에서도 가꾸고 보듬으면 문화예술의 생명이 싹틀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팔복예술공장(전주문화재단)이 공존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팔복동에 대한 향수가 있다. 값싼 집세 때문에 살던 때가 있는데, 아직도 그곳에서의 조용한 동네 모습, 개짓는 소리, 볕 좋은 날 옥상에서 빨래를 널던 때가 생각난다. 집주인 아저씨는 팔복동이 예전에는 정말 활기찼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공장이 많으니, 사람이 많고, 집집마다 남은 방을 세주어 대문 안에 3~4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더불어 식당도 생필품점도 많았다고 팔복동의 영광의 시절을 자랑하셨다. 그러나 도시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팔복동은 전주에서 자주 거론되지 않은 곳이 되었다. 전주의 중심도 여러번 변했다. 쇼핑센터도 극장도, 체육시설도 많지 않은 곳, 아마도 거주자가 아니면 팔복동에 자주 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전주문화재단 팔복예술공장이 들어선 뒤 문화예술 활동의 싹이 트고 점점 팔복동의 이미지가 문화예술지구로 확장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팔복 거리에서, 공장 앞에서, 기찻길 옆에서, 공장 문을 열고, 축제의 판이 펼쳐졌다. 아이 보기 힘든 곳에 유모차 부대가 들어오고, 데이트족이 들어오고, 어르신들이 자전거를 끌고 구경나왔다. 철길 옆을 달리는 꼬마 기차 속에는 웃는 얼굴이 가득했다. 축제는 사람 많은 곳에서 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런 나약한 말을 했을까? 간혹 화물트럭만 다녀 먼지가 수북했던 거리는 축제를 찾은 사람들의 걸음에 자연스럽게 먼지가 날아갔다. 그 자리에 웃음소리, 환호와 감탄, 그리고 맛있는 음식 냄새와 플리마켓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거리공연 구역마다 새로운 볼거리에 관객들을 행복했고, 예술가도 행복했다. 이곳에서는 음향의 부딪힘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언제 유리창이 사라졌는지 모를 공장 창문을 통해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관객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용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일제히 밤하늘을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삐에로가 만드는 버블을 터트리려 깡충깡충 뛰어 다녔다. 올해 전주예술난장의 의미는 ‘팔복’이라는 장소의 특별함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전주 사람이든, 관광객이든 한번도 찾지 않았을 장소로 사람을 모이게 했고, 그 시공간을 유명인이 아닌 축제의 힘으로 채웠다. 세상에 좋은 컨텐츠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렇게 축제가 필요한 장소를 찾아 판을 벌일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운영 구조나, 관객 편의 제공, 홍보 등 아쉽고 발전시켜야하는 부분은 아직 많다. 이제 2회를 마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은 비난이 아닌 애정의 비판으로 하나하나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하다. 예술축제는 축제를 채우는 예술가와 관객, 해마다 새롭게 나오는 이슈, 일하는 사람, 예산이나 운영을 위한 제반 환경이 매년 바뀌기 때문에 매년 과제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축제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과제를 하나씩 푸는 과정일 수 있다. 축제의 결과를 몇 명의 관객이 왔는지, 수익이 얼마인지, 협찬은 얼마 받았는지로 평가한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예술축제의 성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차별성 있는 예술적 행위가 용인되고 수용되는지, 그것이 관객과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이 지역의 문화적 토대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다. 팔복의 거리에서 내년에도 전주예술난장을 만나길 기대한다.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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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0 15:07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4)실크로드의 미스터리 보물

페르시아 최고의 암벽 정원, 타크이 부스탄(Taq-i Bustan) 사산조 예술의 전형: 광륜(光輪), 연주문, 생명수 동서 문명 교류의 역사적 증거 고구려 무용총, 소그드 석당의 수렵도와 동일 계열 【전문】 최근 중동 전쟁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번지고 있어 현재는 탐방이 불가한 타크이 부스탄(Taq-i Bustan)은 페르시아 사산(Sassan) 왕조(AD 226-651) 때의 유서 깊은 암벽 유적이다. 페르시아어로 '타크(taq)'는 아치를, '부스탄(Bustan)'은 정원을 의미한다. 타크이 부스탄에 새겨진 서임식 부조, 진주의 연주문, 왕권 상징의 광륜, 생명수 그리고 수렵도는 사산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수렵도는 고구려 집안 무용총(舞踊塚)에 보이는 벽화와 동일 계열이다. 이는 동아시아와 페르시아 문화 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인데, 필자가 직접 촬영한 드론 영상 자료 등으로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타크이 부스탄(Taq-i Bustan)은 어떤 유적? 이란 서부 산악지대인 케르만샤(Kermanshah)에 자리잡고 있는 타크이 부스탄 유적은 암산 단애의 두 곳에 아치형 대암벽과 소암벽을 조성하고, 그 동쪽에 개방형 구조를 조각했다. 좌측의 대암벽은 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사산 왕조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보유했던 호스로 2세(Khosrow II)의 서임식을 묘사한 것이다. 소암벽에는 샤푸르(Shapur) 2세와 그의 아들 샤푸르 3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우측 바깥의 개방형 구조는 아르다시르(Ardashir) 2세의 대관식을 묘사하고 있다. △ 암벽 외곽의 문양 : 광륜, 연주문, 생명수 먼저 대암벽을 살펴보자. 대암벽 외곽의 아치 상단에는 다섯 개의 피라미드형 장식이 세워져 있으며, 하단에는 중앙의 초승달을 중심으로 두 천사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날개 달린 천사들은 왼손에 은기를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조로아스터교 신화에 나오는 두 줄의 연주문으로 구성된 광륜을 들고 있다. 이 천사는 그리스-로마 스타일의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표현한 것으로, 광륜은 왕권을 상징한다. 왕의 고리에 새겨진 연주문은 '쿠바르나(khvarnah)'라고 불렸던 진주에서 유래했다. 진주는 이란 고원에서 탄생한 조로아스터교의 광명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왕권 신수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하단의 기둥을 표현한 직사각형 내에는 식물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신성한 나무 즉 생명수를 표현한 것이다. 생명수의 잔잔한 잎의 형태는 그리스, 로마 그리고 인도의 스타일이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 암벽 내부의 조각 : 서임식 부조와 기마상 내측 후벽 좌우 하단에는 주두 장식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중간에 지붕과 같은 선반을 만들어 상하로 구분하였다. 상단에는 호스로 2세의 제왕 서임식 부조를, 하단에는 제왕의 기마상을, 좌우 벽에는 수렵도를 각각 조각하였다. 후벽 상단 우측에 성벽관을 쓰고 있는 인물은 조로아스터교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이다. 왼손에 검을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페르시아 제왕 호스로 2세(Khosrow II)이고, 좌측은 아나히타(Anahita) 여신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원래 두 손에 조로아스터교의 성물을 들고 있었으나, 현재는 훼손되어 있다. 아나히타는 왼손에 주전자를 들고 있으며, 그 주전자로부터 성수가 흐르고 있다. 두 신은 각각 리본이 달린, 왕권을 상징하는 고리를 왕에게 수여하고 있다. 왕은 다수의 대형 진주로 장식한 화려한 복식을 입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검을 쥐고 있다. 오른손은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리본이 달린 환을 받고 있다. 왕이 쓰고 있는 왕관은 좌우에 새 날개를 붙이고 초승달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후벽 하단의 기마상은 머리 부분을 원형의 광배와 리본으로 장식하고 있고, 갑옷 하단 복식에는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인 시무르그(Simurgh)와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시무르그는 사산조의 은기나 직물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개의 머리, 사자의 다리, 독수리의 날개와 공작의 꼬리로 합성되어 있고 우주를 상징한다. 한편 시무르그는 철갑 원주 안에 그려져 있는데, 바깥 원주에는 연주문이 새겨져 있지 않다. 이 기마상은 위대한 정복자 호스로 2세가 자신의 애마 샤브디즈(Shabdiz)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마 인물은 당시 페르시아 중무장 기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소암벽 내부와 우측 외부 개방형 부조 소암벽에는 샤푸르(Shapur) 2세와 그의 아들 샤푸르 3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우측 바깥의 개방형 부조는 아르다시르 2세의 대관식 장면이다. △ 왕실 사냥터와 악사들의 공연 사냥은 페르시아 왕들이 가장 즐기는 활동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사산조 왕실 벽화에는 수렵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늪지에 설치된 장막은 왕실 사냥을 위해 만든 일종의 임시 경기장으로 볼 수 있다. 우측 벽 수렵도는 맨 위에 말을 탄 왕이 단상의 여악사들의 연주를 들으며 일산(日傘)을 든 시종과 함께 사냥터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간 부분에서는 말을 탄 왕이 질주하면서 사슴 무리를 활로 사냥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아래 부분은 수렵을 끝낸 왕이 좌측 하단의 장막문을 향해 귀환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왕은 머리에 후광을 띠고 활을 편안히 내려놓고 서 있는데, 이는 사냥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결론적으로, 타크이 부스탄 암벽 부조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예술적 걸작일 뿐만 아니라, 장대한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수렵도는 중국 집안시 고구려 무용총(舞踊塚) 벽화와 소그드인 석관상의 수렵도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상세히 소개한다. 타크이 부스탄 대암벽의 좌측 수렵도 전홍철 교수(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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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0 12:57

[뉴스와 인물] 김세만 익산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백제왕도 익산의 가치, 관광 마케팅으로 널리 알릴 터”

익산문화관광재단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백제왕도 익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효과적으로 알리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하나둘씩 결실을 맺으면서, 문화가 도시를 바꾸고 관광이 일상에 물드는 익산으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 김세만 대표이사가 있다. 일본 관광통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취임 이후 줄곧 일본 관광시장 공략 등 관광 마케팅에 진력하고 있다. 익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 자산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예술관광 진흥을 촉진하는 마케팅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이자 스스로의 다짐이기 때문이다. 매사 의욕적인 모습으로 매일같이 지역 곳곳을 누비며 보다 나은 익산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백제왕도 익산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지역 문화예술관광 진흥을 촉진하는 마케팅 전문기관이 되겠다는 게 취임 일성이었습니다. 지난 1년 5개월여 동안의 소회를 간단히 밝혀 주신다면. “백제왕도 익산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피부로 느끼고 몸으로 체감하게 되고 익산 예술인들 각각의 작품이 이제 눈에 들어오는 시간, 제가 익산에 스며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서 발굴하고 복원해 온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서동선화 웨스트 앤 이스트 공연 등 익산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국내외에 더 잘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확실히 하는 기간이었으며, 현재 저는 익산의 푸근함과 맛깔스러운 음식 맛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올해 ‘백제왕도 익산, 관광 마케팅으로 문화를 알리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익산의 많은 역사문화예술 콘텐츠들이 익산의 경계를 뛰어넘어 국내외로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개별 콘텐츠의 특색을 살려 수도권과 해외에 홍보해 국내외 관광객을 익산으로 유치하고자 노력하기 위해 만든 슬로건으로, 관광은 빛을 발견하고 비추는 일이라는 뜻을 생각하면 더 가깝게 와 닿을 것입니다. 현재 익산의 많은 역사문화예술 콘텐츠 위에 빛을 비춰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취임 이후 일본 관광 분야 전문가답게 일본 언론·미디어 공략을 통해 익산 관광시대를 열고, 일본 관광 수출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보다, 일본 관광 이제 시작입니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관광 마케팅을 진행해 왔던 저에게는 첫 숟가락을 들었을 뿐입니다.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달려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가장 큰 성과는 서동축제와 연계한 백제교류단 팸투어 운영입니다. 일본인 단체 여행객이 발길이 뜸해진 익산에 일본인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 ‘백제왕도 익산’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이를 위해 직원들과 일본과의 지속적인 연락 체계를 구축하며 소통해 왔습니다. 이 노력에 화답하듯 일본인 관광객 30명이 서동축제 기간에 익산을 방문해 줬고 퍼레이드에도 함께 참여하며 백제왕도 익산에서의 축제를 함께 즐겼습니다. 또 익산을 알리기 위해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열린 ‘2024 K-관광 로드쇼 in 후쿠오카’에 참가해 일본 현지 여행사를 대상으로 B2B 상담을 실시하며 ‘백제왕도 익산’을 알리고 익산을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은 저와 직원들이 함께 일궈낸 성과입니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직원들도 열심히 일본어를 익혔으며, 영어와 번역기를 활용해 그들과의 의사소통에 힘썼기에 일궈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 외에도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세계유산순례 상품에 백제왕도 익산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고 일본 MZ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만화 형식의 익산관광 지도, 백제왕도 익산 및 서동축제 홍보 팸플릿을 제작해 한국관광공사 일본지사 등 해외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세일즈를 진행 중입니다. 또 일본 큐슈지역의 언론인 초청 팸투어를 진행하며 일본 주요 언론 및 미디어에 ‘백제왕도 익산’을 자연스레 홍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본 마케팅 전문가로서 방향을 제시했을 때 우리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라와 줬기에 가능한 성과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 ‘백제왕도 익산’을 알리고 세일즈하기 위해 일본 인바운드 전문 여행사, 한국관광공사 일본지사, 기타 관계기관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며, 일본 전역에 익산 연구회를 조직해 백제왕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익산 서동축제를 백제왕도 익산의 정체성 및 DNA를 구현하는 축제로 탈바꿈한다는 게 재단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인데요. “전북특별자치도 14개 시군의 축제 중 익산 서동축제는 백제 30대 무왕의 어린 시절 서동이라는 인물 중심의 유일한 역사문화 축제입니다. 핵심 콘텐츠는 익산시민이 대거 참여하는 ‘무왕행차 퍼레이드’로서 익산시민의 결집력을 보여줄 계획입니다. 또 서동공원에서는 어린이날과 함께 연계한 가족 중심의 백제놀이와 백제군사 체험 등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통해 익산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백제왕도 시민으로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적인 내용을 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익산의 정체성 및 DNA를 구현하기 위해 서동축제를 통해 백제왕도 익산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과 역사를 지속적으로 현대적인 콘텐츠로 재해석해 시대에 맞게 디자인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익산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로컬 웹드라마 ‘백제 무왕의 꿈’이 눈길을 끕니다. 굉장히 이색적인데요. “수많은 드라마가 명멸하고 있는데, 히트 작품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백제왕도 익산의 역사 유적이 다큐멘터리 형태의 영상으로 제작돼 왔다면, 드라마를 통해서 좀 더 재미있게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백제 역사유적 및 문화관광 자원에 문화예술인들의 상상력이라는 창작과 채색을 통해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백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감각의 웹드라마를 통해 미디어 주요 소비층인 MZ세대의 흥미를 유발하고, 익산시민이 배우로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백제왕도 익산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현재는 편집 작업 중인데, 연말 전에는 꼭 완성본으로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익산시가 새로운 도시 브랜드 ‘위대한 도시, 그레이트(GREAT) 익산’을 발표하고 한(韓)문화 발상지로서 익산의 가치를 재정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재단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조선 준왕이 세웠던 한(韓)문화 발상지가 익산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문화의 발상지라면 한류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한류에 대한 현상적인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역사적인 연구도 이뤄져 익산이 한류의 뿌리로서 조명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고조선과 마한, 백제로 이어지는 한(韓)문화 그리고 대한 국호의 발상지를 알리는 마한문화대전을 영등시민공원에서 시민의 날 시상식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할 계획입니다. 익산의 새로운 도시브랜드와 함께 재정립된 익산시민의 날을 통해 한문화를 담은 익산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며, 창작오페라 준왕과 같은 한문화 발상과 관련된 창작 문화예술 콘텐츠가 생산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익산시민, 전북도민 여러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민, 도민들이 한문화의 발상지 익산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익산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행사를 타지에 살고 있는 친지와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익산의 홍보 요원이라는 생각을 하고 익산을 사랑하고 자랑하면 익산도 여러분을 자랑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김세만 대표이사는 김세만 대표이사는 동아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관광공사 센다이지사 차장, 감사실 수석검사역, 의료관광사업단장, 대전충남지사장, 나고야 지사장 등을 역임한 관광 분야 전문가다. 지난해 5월 취임 당시 “익산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의 활동 위에 관광과 마케팅이라는 모자를 씌워 문화예술관광 진흥을 촉진하는 마케팅 전문기관으로서 재단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하고, 익산이 지역관광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실현 방안으로는 유휴 공간 활용 테마가 있는 익산 차박 캠핑 등 내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 야간 관광 활성화에 역량 집중, 백제문화를 기반으로 일본 수학여행 시장과 한류 동호회 등을 대상으로 한 중장기 일본 관광시장 개척 기반 마련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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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철호외(1)
  • 2024.10.28 20:24

[주말, 여기어때] "와! 이곳도 예쁘네"⋯숨겨진 전북 단풍 명소 가을소풍 떠나요

빨강, 노랑, 주황, 초록, 갈색 등 오색단풍으로 단장한 산과 익어가는 벼가 가득한 황금빛 논밭이 장관을 이루는 가을이 왔다. 올 여름 폭염으로 전국의 단풍이 주춤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은 일찍이 물들기 시작했다. 지각 단풍 속 발 빠르게 가족·연인·친구, 그리고 사색을 즐기기 좋은 가을에 혼자 떠나는 단풍놀이를 위해 전북에 숨은 단풍 명소를 한데 모았다. 가을비가 한 차례 지나가고 가을 햇볕 좋은 날만 남았다. 이번 주부터 하나둘 울긋불긋 물들어 갈 단풍 보러 가을 소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완주 고종시 마실길 위봉산성에서 출발해 위봉사, 위봉폭포, 송곶재, 시향정, 다자미마을을 지나 동상면 학동마을로 이어지는 코스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빨갛고 노란 단풍은 걷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위봉폭포는 시원한 물줄기와 양쪽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전주 수목원 전주에는 단풍과 꽃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수목원이 있다. 단풍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까지 건질 수 있는 전주수목원의 사진 명소는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빨간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 10만 평 부지에 뿌리를 내린 3800여 종의 식물까지, 이곳은 눈이 즐겁다. △익산 아가페정원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정원, 아가페 정원은 사계절 내내 관람객이 즐겨 찾는다. 익산 9경 중 7경에 해당할 정도로 아름다움은 이미 증명됐다. 특히나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잠깐 가을바람 맞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다. △무주 적상산 한국의 100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은 이름마저 가을의 냄새를 풍긴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여인들의 치마와 같다고 해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덕유산 원추리 봄을 틔우고 반딧불이 여름을 밝히던 곳이 이제는 적상산 자락 붉게 물들여 길손을 맞는다. 적상산은 해발 1024m 향로봉과 천일 폭포, 송대 폭포, 장도 바위, 장군 바위, 안렴대 등 곳곳에 명소를 간직하고 있다. 정상까지 차가 들어가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적상산 단풍 구경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보다 멋질 수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늘을 닮아 곱고, 물을 닮아 깨끗한 무주의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고창 문수사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다. 수령 100년에서 400년 사이의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빼곡히 늘어서 숲을 이룬다. 흔히 볼 수 있는 단풍나무가 아니다. 문수사로 가는 길 양옆으로 펼쳐진 단풍나무는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사찰의 고즈넉함까지 내려앉아 숨만 쉬어도 힐링이 된다. △진안 구봉산 구봉산의 봉우리 아홉 개가 가을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인근에 있는 마이산과 운장산으로 인해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구름다리가 개통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단풍이 고운 산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봉우리가 많아 산행의 난이도는 높지만 올라가면 보이는 절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군산 오성산 군산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성산은 성산면 여방리와 둔덕리 경계에 있다. 정상에 오르면 금강하굿둑과 충청남도 서천군이 보인다. 완만한 산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특히 오성산 정상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지고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한 조망, 서해와 금강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석양까지 숨겨진 특급 뷰를 자랑한다. 가을철만 되면 알록달록 단풍이 조화를 이뤄 수채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일상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바꿔 주는 환상의 코스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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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0.24 17:34

[주말, 여기어때] 단풍놀이 오가다 "으악"⋯가을 행락철 교통사고 사망 '최다'

가을철 단풍 구경에 나서는 행락객이 많아지는 10월과 11월에 교통사고 사망자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전북경찰청이 제공한 최근 5년간(2019∼2023년) 월별 전북 교통사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사망자 수는 248명, 2020년 217명, 2021년 194명, 2022년 194명, 2023년 171명이다. 이중 가을 행락철(10∼11월) 사망자 수는 각각 56명(22.58%), 42명(19.35%), 41명(21.13%), 48명(24.74%), 44명(25.73%)에 달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까지 포함하면 각각 80명(32.26%), 62명(28.57%), 55명(28.35%), 61명(31.44%), 61명(35.67%)이다. 가을철에 유독 교통사고 사망자가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졸음과 전방주시 태만 등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가운데 다른 때보다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가을 행락철 대형 교통사고를 막으려면 운전자는 과속이나 끼어들기 등 난폭 운전을 삼가고 장거리 운전할 때는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 승객은 반드시 안전띠를 착용하고 차내 음주·가무 등 운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또 가을철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안개가 발생하기 쉬워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해 기상 상태별 교통사고 치사율을 보면 안개는 9.1로 맑음(1.2), 흐림(4.6), 비(2.0)의 최대 10배다.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100m 이내일 때는 50% 감속 운행을 하고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전북뿐 아니라 전국에서 연중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30% 가량은 가을철에 집중돼 있다. 최근 3년간 교통사고 사망자 총 8202명 중 가을철(9∼11월)에 발생한 사망자는 2403명으로 전체의 29.3%를 차지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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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0.24 17:34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1)홍양기사(洪陽紀事)·창계신공실기(蒼溪申公實記)

홍양기사 표지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홍양기사(洪陽紀事)〉 〈홍양기사(洪陽紀事)〉는 충청도와 인접한 경기도 남양 사람 홍건(洪健)이 기록한 충청도 홍주(洪州) 일대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홍건은 홍주목사(洪州牧使) 이승우(李勝宇)의 친우로 지내다가 이승우가 홍주목사로 특별히 제수되자 그의 막객(幕客)으로 따라 내려가 동학농민혁명의 진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홍주는 충청도 서북 내포(內浦) 지역의 중심지로서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도 끝까지 동학농민군에 함락되지 않은 고을이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은 목사 이승우는 10월 8일에 호연초토사(湖沿招討使)로 임명되었으며 그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던 홍건도 11월 16일에 홍주 영장(營將)에 발탁되었다. 〈홍양기사〉에 따르면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가 마친 다음인 7월 7일 홍주에서 동학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밤마다 일어나고 있으며, 홍주 관아의 인원들까지도 동학에 물든 정황이 파악되었다. 8월 6일에는 선무사 정경원이 홍주로 와서 인근의 접주들을 소집하여 효유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유명한 동학농민군 지도자로는 홍주의 김영필(金永弼)·정대철(丁大哲)·이한규(李漢奎)·정원갑(鄭元甲)·나성뢰(羅成蕾), 덕산의 이춘실(李春實), 예산(禮山)의 박덕칠(朴德七)·박도일(朴道一), 대흥(大興)의 유치교(兪致敎), 보령(保寧)의 이원백(李源百), 남포(藍浦)의 추용성(秋鏞成), 정산(定山)의 김기창(金基昌), 면천(沔川)의 이창구(李昌求)이다. 그 가운데 이창구의 무리가 가장 많아서 50,000~60,000명이라고 하였다.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 제2차 봉기가 시작되고 나서 홍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 내포 지역의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10월 3일 각처의 동학농민군이 최시형의 지휘라고 하며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산 수령 박정기(朴錠基)·태안부사(泰安府使)·신백희(申百熙)·별유관(別諭官) 김경제가 모두 그 피해를 당했다. 해미·예산·덕산 등의 고을에서는 군기를 모두 빼앗겼다. 해미·덕산·대천·예산·목시(木市) 등지에서 진세(陣勢)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10월 8일 홍주목사 이승우가 호연초토사로 임명되고 나서부터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토벌이 진행되었다. 관군은 10월 20일 合德에서 동학농민군을 격파하여 60여 명을 사로잡았다. 10월 25일 일본군 아카마츠(赤松國封) 소위와 통역관 이이다(飯田)가 군사를 인솔하여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결국 10월 28일부터 29일 사이에 홍주성에서 커다란 전투가 벌어졌다. 〈홍양기사〉에 따르면 관군의 대포는 멀리까지 날아가고 일본군이 대포를 잘 쏘아서 적중하였으나 동학농민군의 병기는 뛰어나지 못하고 서툰 자들이 쏘고 법도가 없어서 끝내 관군 및 일본군 중에 1명도 해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동학농민군 상당 수는 사로잡혔고 이틀 동안 성 아래 죽은 사람만 600~700명에 이르렀다. 〈홍양기사〉에는 11월 8일 서산 해미에서 일어난 전투도 수록되어 있다. 해미성을 점거하고 있던 동학농민군은 죽산부사 이두황이 지휘하는 병력의 공격을 받아 퇴각하여 서산의 도비산(道飛山)에 물러나서 주둔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내포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의 기세는 완전히 가라앉게 되었다. 〈홍양기사〉는 홍주성 영장을 받았던 홍건의 기록인 만큼 동학농민군에 대하여 왜곡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으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홍주성 전투에서 관군 측의 탄약을 허비하게 하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위장전술을 사용한 농민군의 전술, 이 지역 동학농민군 지도자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이창구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애첩을 납치하여 미인계를 쓴 이야기, 결국 부하의 배신으로 이창구가 체포되는 경위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실려 있다. 비록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기록이지만 그들에 대한 생생한 모습을 알려주는 점에서 〈홍양기사〉가 가지고 있는 사료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유바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부교수) 〈창계신공실기(蒼溪申公實記)〉 경상도 의흥(義興, 현재 군위군 의흥면)에서 동학농민군 진압 관련 내용을 일기체로 적어 편집하여 인쇄한 자료이다. 이 자료의 저자는 신석찬(申錫燦, 1851~1921)이다. 신석찬의 활동은 뒤에 붙여 놓은 행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행장에 따르면 호는 창계(蒼溪)이고 나이는 40대 후반이며 의흥향교의 약장(約長) 또는 교의(校議)를 지냈다. 표지의 책명은 〈창계실기(蒼溪實記)〉라고 했으나 『창계신공실기서(蒼溪申公實記序)』 라고 하여 〈창계신공실기(蒼溪申公實記〉를 책명으로 볼 수 있다. 이상교(李相敎)가 지은 서문에 “공은 바위굴에서 책을 읽는 선비요, 초야에서 조잡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신석찬은 벼슬은 하지 않은 시골 선비였다. 내용 기술은 일기체로 1894년 8월부터 12월까지의 사실을 적어 놓았으며 끝에 포상과 관련되는 문건들을 붙여 놓았다. 이 내용의 기본은 의흥을 중심으로 창의하고 농민군을 토벌한 과정을 담았다. 앞에 “동도의 변고가 처음 호서와 호남에서 시작하여 봄에서 여름 사이에 더욱 퍼졌는데, 영남의 인사들도 많이 그사이에 물들어 낙동강의 좌우와 상하가 모조리 소굴이 되었으며 약탈이 끝이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동학농민군이 먼저 의성에서 봉기하고 나서 이들이 8월 19일에 의흥 지방을 침입하였다고도 기록하였다. 일기 순서에 따르면, 8월 18일 신석찬은 동료들을 모아 방어의 계책을 논의하였고 의흥수령 성태영(成泰永)과도 의논하였다. 그는 의흥ㆍ칠곡ㆍ군위 세 고을의 사족들과 민정(民丁)을 모아 수천 명의 민보군을 조직하고 양곡과 군기를 거두어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석찬은 향교의 조직에 따라 약소(約所)를 꾸려 총지휘관인 약장이 되었고, 이어 면 단위의 약장, 강장(講長)을 임명하였다. 이들 민보군은 1차로 신원전투에서 동학농민군 27명을 처형한 것을 시작으로, 2차로 신녕, 3차로 효령에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였다. 이 세 곳은 모두 강좌(江左) 지역으로 김산 등 강우 지역에서 쫓겨오는 농민군을 방어하는 역할도 하였다. 또 민보군 일부를 강우로 보내 김산 등지에서 활동하게 하였다. 이어 1905년에 의병이 일어나자 개화 정부의 하수인인 수령들이 이들의 방어에 나섰다. 이에 신석찬은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조직을 다시 가동해 토벌에 나섰는데, 이 사실을 끝 부분에 간략하게 적어 놓았다. 2권에는 부록을 실었는데 선무사 이중하(李重夏)가 전달한 선유문, 토포사인 조중응(趙重應)이 보낸 전령, 신석찬이 의흥약장의 이름으로 보낸 전령 등의 문건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자료와 내용은 향교 중심의 민보군이 조직된 점과 강좌 지역의 민보군 활동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끝에는 의흥현의 유생들이 연명으로 군위현감에게 신석찬의 포상을 요청하는 장초(狀草)와 상서(上書), 경상도 유생의 이름으로 경상관찰사에 보낸 서장, 군부아문과 궁내부에 보낸 서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 부처에서 끝내 포상을 내리지 않았지만, 이로 보아도 신석찬은 유력 인사로 짐작된다. 맨 끝에는 신석찬의 일대기를 적은 행장이 수록되어 있고, 또 다른 유생들이 신석찬과 관련하여 쓴 글 몇 편이 수록되어 있다. 발문에는 족질인 신태경이 편집해 발간한 경위를 밝혀 놓았다.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전개상황과 민보군의 활동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병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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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4 17:24

[주말, 여기어때] 가을폭염에 '지각 단풍' 전북, 이번 주부터 단풍 들기 시작

최근 가을비가 내리고 난 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을바람이 살랑이고 있다. 눈치 없는 '지각 단풍'이 아쉽지만 단풍놀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매년 똑같이 설레는 모습이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단풍이 늦어졌다.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도 지난해보다 나흘 늦게 첫 단풍이 관측됐다. '지각 단풍'이 든 이유는 늦게까지 이어진 폭염과 폭우의 영향이 크다. 여기에 지난해와 비교해 지역·수종별로 차이는 보이지만 해발고도와 위도 등 지리적 요인도 이유일 수 있다. 산림청이 전망한 전북지역 주요 산림 단풍 관측 시기는 10월 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변산반도 단풍나무류는 22일, 내장산 참나무·단풍나무류는 각각 25·27일, 대아수목원 참나무·단풍나무류와 은행나무는 각각 28일, 11월 1일로 예상된다. 이는 50% 정도 물드는 날짜다. 단풍 절정을 말하는 80%가량 물들 때까지는 조금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가을 행락객을 맞이할 단풍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완전히 빨갛고 노란 옷을 입지 못했지만 나뭇잎 끝부터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리듯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단풍이 물들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이번주부터 단풍 들기가 본격 시작된 가운데 '가을 소풍'을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도내에는 내장산, 대둔산, 지리산 등 유명한 단풍 명소가 있지만 14개 시·군 곳곳으로 들어가 보면 이들 산에 못지 않은 '숨겨진 단풍 명소'가 많다. 올 가을에는 완주 고종시 마실길, 전주 수목원, 군산 오성산, 익산 아가페정원, 무주 적상산, 고창 문수사, 진안 구봉산으로 단풍놀이를 떠나보자.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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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0.24 12:54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익산 왕궁리유적 발굴결과로 확인하다

'익산 왕궁리유적(王宮里遺蹟)'은 행정구역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634번지 일대이다. 용화산에서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탑리마을의 북편 구릉에 위치한다. 현재 사적 제408호(1998.9.17)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의미있는 유적지이다. 그런데 최초 왕궁리 유적의 조성 및 운영 세력에 대해 그간 마한 도읍설, 백제 무왕 천도 및 별도설, 안승 도읍설, 후백제 견훤 도읍설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왕궁리 5층 석탑과 관련 1976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조사 성과에 비추어 보면 핵심적 유구는 백제 사비기 무왕대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백제 멸망 이후 고려시대에는 사찰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백제 무왕기 궁성으로 조성되었다가 백제말~통일신라시대에 1탑 1금당의 사찰로 변모했던 것이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그간 발굴성과로 증명된 왕궁리의 각종 유적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살펴볼까 한다. 현재 왕궁리 유적은 시대구분 없이 건물지가 정비되어 있어 유적의 명확한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976~1977년 시굴조사(원광대 마한백제연구소)가 시행되어 궁궐 담장과 사찰 관련된 시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후 198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학술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조사를 완료한 상황이다. 우선 사찰 건물지 흔적을 살펴보면 궁성 건물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동쪽에 편향되어 남북축선상 5층석탑 – 금당지 - 강당지로 놓여 있으며 석탑 동편 기와 가마터 2기와 강당지 서편 건물지 2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금당지와 강당지의 중앙은 적심이 없는 구조이며, 사찰 중문지와 회랑은 확인되지 않았다. 강당지 남편에는 3개의 계단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이 계단은 초기 강당지의 계단으로 추정된다. 한편 5층 석탑 아래에는 동서 16.85m×남북 폭 12.7m의 건물 축기부가 확인되어 석탑이전에는 궁성 관련 시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궁성 관련 유적이다. 궁성의 외곽은 동서 240m, 남북 490m로 평면 장방형이다. 궁궐 내부는 경사면을 따라 단이 지도록 축대를 쌓아 평탄대지를 조성했으며 정전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와 와적기단(瓦積基壇)건물 등 43여기의 건물지가 있었다. 동서 방향으로 4개의 석축과 남북 석축 2개가 확인되어 궁성 내부의 계획적인 조성모습이 확인된다. 그리고 더욱 주목되는 것은 궁성 남동편에 동서 120m, 그리고 남북방향으로 160m의 대규모 내부 성토층을 조성한 것인데 이는 당시 백제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짐작케하는 유적이다. 성벽 혹은 궁궐 담장은 도성 내부의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동벽 492.8m, 서벽 490.3m, 남벽 23.06m, 북벽 241.39mfh 동서 길이가 남북 길이의 1/2인 약간 틀어진 장방향으로 조사된다. 체성부와 낙수용 부석시설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동쪽 궁장은 구간별로 돌을 쌓는 방식이 차이나는 모습을 보이며 궁장 내외로 다량의 기와편이 드러났다. 현재 동쪽 궁장 밖으로 마무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향후 제석사지와 연결하는 어도가 발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다음은 대형 건물지 이다. 2005년 조사시 남벽 중앙문지에서 남북일직선상에 위치한 대형건물지가 발견되었는데 규모가 31×15m인 정면 7칸 측면 4칸의 구조였다. 토심구조이며 기단 전체를 판축하는 방식으로 기둥을 받치기 위해 높고 큰 장초석을 놓았다. 이는 건물을 크고 높게 보이게 할뿐 아니라 대형건물지의 기초면과 동서 석축 사이의 높낮이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전급에 해당하는 건물로 이와 유사한 구조의 건물지는 부여 관북리에서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백제의 궁성 건물지는 기단에 따라 석축기단가 와적기단으로 나뉜다. 왕궁리에서 와적기단 건물지(건물지 10) 기단이 좌우로 나란한 배치된 구조로 발굴되었고 암키와 편을 바깥쪽으로 맞춰 쌓는 형식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암키와 2매를 원형으로 세워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런 와적 수법은 대형건물지의 좌측 연결시설과 북쪽 건물지 23에서도 확인되었다. 왕궁 건물지중 가장 미스테리한 건물지는 문지와 정전 사이의 건물지 27이다. 기단 자체도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유적으로 동서 길이가 33m, 남북 길이가 3.64m를 하고 있다. 여러 건축적 측면을 고려할 때 남북 방향으로 긴 건축물로 알본의 나니와 궁, 아스카 궁 등에서 보이는 양상이다. 왕궁리 우측에도 비슷한 규모의 장랑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발견되지 않아 조금 뻘쭘한 형대의 건물지이다. 추후 조사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왕궁리 유적은 조경으로 특히 유명하며 정원과 후원으로 나뉘는 독립된 별개의 공간은 물을 매개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정원유적은 삼국시대 최초로 확인된 백제 조경기술의 총아로 자연친화적이면서 다양한 괴석으로 인해 발굴 당시부터 지금까지 왕궁리 유적의 대표적 발굴유적으로 불리운다. 후원은 궁성의 후반부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자체적 침수 피해를 줄이는 구조로 추정된다. 다만 이 수로와 관련하여 요즘 일제강점기 사진을 이유로 한국전쟁 당시 참호였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어 향후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해 보인다. 왕궁리 유적중 가장 특이한 건물지는 역시 대형화장실 유적이다. 궁성의 서북편 저지대에 위치하며 이 너머에 공방이 조성되어 있다. 구덩이에 오수나 오물을 저장하였다가 긴 수로를 통해 궁장밖으로 빼내는 구조였을 것으로 보인다. 뒤처리용 나무막대가 총 6점 출토되었고 이 나무 막대는 접촉면이 둥글고 매끄러워 실제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어 더 재밌다. 익산 왕궁리 유적의 발굴은 마무리 단계이나 아직 익산의 고대 도시 체계에서 왕궁리 유적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제석사지-쌍릉-미륵사지로 연결되는 고대 도시 공간의 구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왕궁리의 발굴은 무척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며 향후 동쪽 궁장에서 제석사지로의 연결로가 확인되면 부여와는 또 다른 백제의 왕궁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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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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