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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와 노트르담 성당

빅토르 위고(1802~1885)는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작가로 꼽힌다. 문학 뿐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나 데생화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정치가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가장 뚜렷한 족적은 역시레미제라블같은 명작을 남긴 대문호로서의 궤적에 놓여 있다. 그의 작품들이 클래식 연주곡이나 오페라의 원작이 되거나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그를 당대 풍미했던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시대와 시대를 잇는 대중적 작가로 건재하게 하는 것 또한 그 바탕이 된다. 그의 이름을 오늘의 대중들까지도 기억할 수 있게 한 통로는 역시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된 여러 편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레미제라블은 영화로 제작된 것만 30여 차례에 이르고 파리의 노트르담 역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10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 원작의 탄탄한 힘을 짐작할 수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우리에게도 친숙한데, 1957년에 제작된 안소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 주연의 노트르담의 꼽추의 원작이 이 소설인 덕분이다. 레미제라블과 함께 뮤지컬로도 제작된 파리의 노트르담은 1998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래 대중들의 인기를 모아 롱런하면서 지금은 프랑스 뮤지컬의 상징이 되었다. 이 소설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성당과 얽힌 인물들의 운명과 15세기 당시의 프랑스 사회상을 그린 작품이다. 덕분에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성당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고 싶어 하는 이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위고가 이 소설을 쓴 배경이 흥미롭다. 위고는 1345년 완공된 이래 프랑스 왕실이 예배를 올리는 교회로, 중요한 국가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온 공간이자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대성당이 심하게 파손되어 헐릴 위기에 놓이자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이 가져온 결과는 놀라웠다. 성당을 살리자는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1845년 마침내 복원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5일 밤, 아름다운 노트르담 성당이 화재로 원형을 잃었다. 불에 타는 지붕과 첨탑이 엿가락처럼 무너져 내리는 현장은 처참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년 안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짓겠다고 재건 계획을 발표했지만 노트르담 성당의 원래 모습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 또하나의 빛나는 유산이 우리 시대에 사라진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4.18 20:13

가시 면류관

이번 주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기리는 고난주간이다. 특히 부활절을 앞둔 금요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성 금요일로 기념한다. 기독교의 최대 절기인 부활절을 앞두고 지난 16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였다. 대성당의 상징인 93m 높이 첨탑과 지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850년 역사의 인류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사라진 것이다. 1163년 프랑스 루이 7세 때 센강 시테섬에 있던 교회를 허물고 10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고딕건축 양식의 대표작이다. 우리의 여인을 의미하는 노트르담(Notre 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며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과 메리 여왕 결혼식 등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주요 의식이 이곳에서 진행됐었다. 다행인 것은 노트르담 최고의 보물인 가시 면류관(Crown of Thorns)을 비롯해 십자가 조각과 못, 그리고 프랑스 왕 세인트 루이 9세가 착용한 튜닉, 회화 등은 소방관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구해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와 갈댓잎을 원형으로 엮은 것이다. 원래 예루살렘 시온산 바실리카에 있었지만 1239년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당시 콘스탄티노플 측으로부터 사들여 프랑스에서 소유하고 있다. 가시 면류관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 루이 9세가 맨발에 속옷 차림으로 뛰어나가 맞이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가시 면류관은 매월 첫째 주 금요일에 열리는 노트르담의 가시관 및 그리스도 수난 유물 경배 행사 때만 일반인에 공개해왔다. 그렇지만 성경의 마태마가요한 복음 등 세 곳에서는 로마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 손에 들리고 자색 옷을 입혀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희롱하였다고 기록했다. 이를 보면 당시 예수가 쓰셨던 가시 면류관은 지금과 같은 황금 소재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여하튼 가시 면류관이나 십자가 조각, 못 등 예수의 고난을 나타내는 상징물에 천착(穿鑿)하기보다는 온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본받는 것이 가시 면류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4.17 20:16

임실 치즈의 아버지

국내에서 서양식 우유 생산기술이 도입된 것은 1900년대 초다. 당시 대한제국 농상공부의 프랑스 기술자가 일본으로부터 20여 두의 홀스타인 종 젖소를 도입해 지금의 서울 신촌역 부근에서 사육하며 우유를 생산한 것이 근대 낙농의 효시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도 낙농규모가 영세하고 우유 공급이 부족해 원조에 의지했다. 국내 치즈산업의 역사는 우유보다 훨씬 짧다. 치즈가 국내 최초로 본격 생산된 해는 1969년이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가 부임지인 임실에서 산양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임실 치즈의 출발점이었다. 지 신부는 다른 신부에게 선물로 받았던 산양을 키우면서 젖을 짜 팔면 가난한 농가에 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유럽의 가정에서도 치즈를 만들어 파는 곳이 많으니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여겨 치즈 공장을 세웠다. 임실이 국내 치즈산업의 메카로 우뚝 선 모멘텀이었다. 지 신부가 치즈 공장을 세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아직 치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공장 설립을 위한 허가기준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농림부 차관은 지 신부에게한국 사람이 치즈를 먹을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정적이었단다. 서울의 호텔과 외국인 전용 상점, 피자 가게 등으로 판로 확보에 나선 것도 지 신부의 몫이었다. 국내 치즈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임실에서 치즈가 생산된 후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서울우유, 삼양식품, 해태유업, 두산종합식품, 파스퇴르 유업 등이 잇따라 치즈 생산에 뛰어들면서였다. 임실군의 낙농규모는 전국대비 1%도 채 안 되지만, 치즈 생산량은 전국 30%를 차지한다. 기업 계열사인 푸르밀(옛 롯데우유)의 최대 공장이 일찌감치 임실에 둥지를 틀었고, 임실치즈농협과 숲골유가공 등 유가공업체가 임실에 자리하면서다. 임실에 치즈마을, 치즈연구소, 치즈테마파크도 만들어졌다. 국내 치즈 역사를 쓴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셈이다. 지 신부가 지난해 한 월간지와 가진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임실치즈의 성공을 이렇게 말했다.전 단지 그들과 함께 한 것뿐입니다. 함께 배우고 사랑하면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지요. . 임실 치즈는 영원히 고인을 기억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4.16 20:30

선거구 획정과 완주

완주군의 면적은 821.05㎢에 달한다. 동서가 36km, 남북이 71km에 달하는 상당히 큰 자치단체다. 그렇게 커 보이는 서울시 면적이 605.3㎢에 불과한 것을 보면 완주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완주군 인구는 지난달 현재 9만3564명에 달하고 있고, 재정자립도 또한 군 단위로서는 전국 어디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 완주 사람들은 수도권에 가면 굳이 고향을 완주라고 하지 않았다. 설명하려면 길어지니까 그냥 쉽게 전주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이야 로컬푸드를 비롯해 완주의 브랜드 가치가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면서 고향을 물으면 대부분 완주라고 말한다. 구태여 설명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주의 자존심은 국회의원 선거때마다 구겨지는 일이 많았다. 인구 하한선을 맞추기 위해 완주는 이리저리 짜맞춰지는 일개 객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완주만큼 선거구가 바뀐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제헌때부터 5대때까지 초창기는 일단 놔두고 6대 이후 완주 선거구를 한번 되짚어 보자. 6대 최영두, 7대 유범수, 8대 유기정 국회의원까지는 모두 완주군 단일 선거구에서 선출됐다. 그런데 유신 직후 치러진 1973년 9대 선거 때 동반 당선을 노린 집권당은 완주를 전주와 합해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로 바꿨다. 결국 9대부터 12대까지 전주-완주는 하나의 선거구가 된 것이다. 이철승-유기정 의원이 9대와 10대에 동반 당선되고, 11대와 12대에는 임방현-김태식, 이철승-임방현 의원이 여야 한명씩 동반 당선된다. 6월 항쟁이후 소선거구제로 되돌아간 13대부터 15대까지 완주는 다시 단일 선거구가 돼 김태식 의원을 잇따라 당선시킨다. 그런데 농촌 인구 감소로 인해 16대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인구 하한선에 걸려 독립 선거구 유지를 못하면서 완주는 16대에 임실과 하나로 묶인뒤(김태식), 17대부터 19대까지는 김제-완주 선거구(최규성)가 된다. 급기야 20대에는 완주가 지역적 연관성이 희박한 진-무-장과 묶어져(안호영) 선거가 치러졌다. 요즘엔 내년 선거때 완주가 전주와 하나의 선거구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돌고 있다. 총선이 꼭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구 획정이 어떻게 이뤄질지 각 지역마다 추측이 무성하다. 압권은 완주가 이번엔 과연 어디와 묶어지느냐다. 선거구 획정때마다 개리맨더링의 요소가 작용하는게 현실이지만 지금까지 전국 자치단체중 완주만큼 선거구가 요동친 곳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혁신도시로 인해 과거보다 비중이 부쩍 커진 완주군이 선거구 획정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데 있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4.15 20:12

전주 종합경기장을 베슬처럼

세계는 지금 디자인 경쟁시대다. 도시재생사업의 열풍이 분다. 그 대표적인 곳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허드슨야드다. 총사업비가 28조원대에 이르는 최첨단 시설의 복합단지가 지난달 15일 1차로 문을 열었다. 그 곳이 벌집 모양의 15층 짜리 나선형 구조물인베슬(Vessel)이다. 2500개의 계단과 발코니가 마치 벌집처럼 엉켜 있어 뉴욕의 새 랜드마크로 변했다. 이와 더불어 올해 말 개장하는 삼각형의 전망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설립,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전망대로서 강화유리를 통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 철도 차량기지 용지 약 11만3000㎡를 활용해 주거 업무 상업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허드슨야드 프로젝트는 미국서도 역대 최대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꼽힌다. 금융위기 발발로 2008년 사업자가 당초 티시먼에서 릴레이티드로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토지소유주인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가 사업자에 용지를 장기간 임대해주고 수익성이 확보될 때까지 임대료를 유예해 주면서 2012년 12월 첫 삽을 떴다. 낡은 철도역이었던 황량한 곳이 뉴욕의 명소로 부각,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료로 베슬을 방문할 수 있지만 워낙 인기가 높아 예약을 해야 한다. 지금 전주는 어떠한가. 전주시가 과거 집창촌이었던 선미촌을 도시재생사업을 실시해서 모양을 바꿨다. 팔복동 공업단지에 문화를 불어 넣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주시가 한옥마을 하나 갖고서는 더 이상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다고 판단,법원 검찰청사 주변의 가련산공원과 덕진공원 동물원을 아우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김승수 시장이 시비 안들이고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종합경기장 사업을 할 수 있는데도 왜 이 사업을 안하는지 시민들이 의아해 한다. 시중에서는 재선에 성공한 김 시장 평가가 엇갈린다. 지지자 중에서도 지난 4년간 도와 대립각만 세웠지 한일이 없다고 힐난한다. 한옥마을은 김완주 송하진 지사가 시장 때 해 놓은 일이라서 김 시장으로서는 내놓을 게 역전 앞 구불길 등 비난받은 사업 밖에 없다는 것. 그러다보니까 다음 선거 때는 지사로 가야 하는데 마땅한 명분이 없자 특례시 지정을 들고 나선 것 아니냐는 것. 정동영 등 전주 3명 국회의원들도 선거를 앞두고 절박한 나머지 김 시장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어릿광대짓을 하고 있다는 것. 지난달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인구 50만 이상 도청소재지인 대도시는 반영되지 않았다. 김 시장이 정부개정안 마련에 실패하자 30만 범시민서명운동으로 방향을 전환,국회 입법화에 승부수를 띄웠다.정무적 감각이 좋은 김 시장이 특례시 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뉴욕 허드슨 야드 베슬처럼 파급효과가 큰 종합경기장 개발사업부터 먼저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안으면 항상 인기영합주의 행정만 펴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판을 키워 랜드마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4.14 20:15

로테르담항의 건재 이유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 무역 항구다. 유럽의 물류는 라인강 어귀에 자리한 로테르담을 통해 세계로 나간다. 이 지리적 장점은 로테르담이 세계 1위의 물류항을 가진 회대 항구도시로 자리 잡게 하는 기반이 됐다. 지금은 상해나 싱가포르 등 야심차게 돌진해오는 신항들의 추격으로 그 자리를 내주었지만 로테르담이 여전히 유럽 최대 항구도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로테르담항이 위상을 지킬 수 있는 바탕은 역시 항만으로서의 지리적 장점이다. 로테르담항은 북해에서 불과 2시간 안에 항만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유럽 3대 항만인 독일의 함부르크항이나 벨기에의 안트워프항이 로테르담항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도 북해에서 들어오는데 6시간 이상 걸리는 입지적 여건 때문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긴다는 로테르담항의 위상은 지리적 여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0여 년 전 새만금과 같은 간척 도시를 답사하며 로테르담을 찾은 적이 있다. 그때 항만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로테르담항은 오래전부터 물류를 특화하고 고부가가치 품목을 경쟁력으로 키우는 특별한 전략을 세웠다. 여기에 항만과 유럽의 허브공항인 스키폴 공항까지 고속도로와 철도를 연결해 물류를 공항 중심까지 직접 수송할 수 있도록 교통 여건까지 갖춰놓았다. 로테르담항은 특히 전문항구 컬렉션이라는 특성을 내세웠다. 수많은 전문항구 중에는 과일전용항구 Fruit terminal Rotterdam이 있다. 3만2000㎡의 자동온도조절 창고와 1만5000㎡의 냉동창고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 항구에는 남아공과 브라질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실려 온 과일들이 가득 쌓인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수많은 과일마다 붙어 있는 바코드였다. 현재의 위치나 환적 또는 수송지 등을 기록한 이 바코드는 언제라도 이 과일들의 수송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과일전용항에는 대규모 주스공장도 있다. 터미널에서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이 공장에서는 항만에 도착한 주스 원료를 가공해 바로 제품으로 생산한다. 자연히 물류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유럽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주스가 네덜란드산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우리도 새만금 신항만 조성을 앞에 두고 있다. 수많은 신항들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로테르담항이 건재한 이유. 그들의 특화 전략을 주목하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4.11 20:36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 11일, 31운동의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민족적 염원을 모아 중국 상하이에 수립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다. 이날 상하이 임시의정원에서 제정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기했다. 이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세계 최초의 선언이다. 유럽에서도 민주공화국이 헌법에 쓰인 것은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 헌법에서부터다. 이에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문화했고 헌법 1조 1항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명시했다. 이날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은 국호(國號)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했다. 조선이나 고려공화국을 국호로 정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격론 끝에 대한민국으로 낙착됐다. 당시 각료로는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신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등을 선임했다. 임시정부는 삼권 분립제도를 표방하고 외교활동과 의열투쟁, 광복군 창설 등을 통해 27년간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 의거로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그해 5월 상하이를 떠나야만 했다.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정 등지를 떠돌다 1940년 충칭에 자리잡았다. 1940년 건국강령 3장을 발표해 광복군을 강화했고 1944년에는 김구를 주석으로 선출했다. 이후 광복군은 미국 OSS부대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미 군정의 임시정부 불인정으로 1945년 11월 29일 임정 간부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했고 국내 정세의 혼란으로 임시정부의 내각과 정책은 계승되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4월 13일에 임시정부 수립기념행사를 가져왔지만 올해는 11일에 기념식을 갖는다.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부가 펴낸 조선민족운동연감 자료에 근거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정했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발굴된 임정 관련 자료를 통해 4월 11일로 바꿨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숭고한 민족정신을 되새기며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갈 때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4.10 19:59

교사 유투버 활동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장래직업 중에 유튜버가 손가락 안에 든단다. 유튜브에 눈감으면 자녀들과 소통이나 교감조차 어려울 정도로 유튜브가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단순히 동영상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제작자로 참여하는 유튜버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굳이 킬러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취미생활까지 유튜브에 올려 힐링 공간으로 활용하는 유튜브 대중화시대다. 세계가 유튜브에 열광하는 것은 무엇보다 1인 미디어로써 영향력 때문이다. 연예인이 부럽지 않을 만큼 인기를 끌면서 부를 축적하는 유튜버들도 즐비하다. 1인 미디어 업계의 선두 자리에 있는대도서관의 경우 19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연간 17억원의 매출액을 자랑한다. 대도서관 운영자는 화려한 스펙도, 대학 졸업장도 없이 성공신화를 쓴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이런 평범한 사람도 유튜브를 잘 활용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유튜브의 매력이기도 하다. 유튜브 열풍에 따르는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유튜브 시청이 스마트폰 중독의 주 요인이 되고 있다. 잘못된 정보와 선정적인 영상이 넘쳐나고, 가짜뉴스가 그럴 듯하게 포장된 채 유통된다.유튜브 정치가 확산되면서 집단지성이 사라져 정치의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린 자녀를 촬영한 동영상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부모들도 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빗나간 행동도 서슴지 않은 동영상들이 버젓이 유통되는 곳이 유튜브이기도 하다. 교육부가 최근 교원들의 유튜브 활동과 관련한 실태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교사들의 유튜브 활동이 크게 늘면서 부작용이 없는지 파악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교육자 신분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교사 개인의 유튜브 활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려는 건 온당치 않다고 본다. 아무러면 교사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나 빗나간 활동을 하겠는가. 오히려 교사의 노하우가 학교 밖을 넘어 사회 청량제가 될 수 있게 널리 공유될 수 있도록 장려할 일이다. 영리목적이 아닌, 알찬 콘텐츠로 수익을 올린다고 규제의 빗장을 걸 일도 아니다. 교육부의 실태조사가 교사의 유튜브 활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4.09 19:59

제3금융중심지

요즘에야 인기가 좀 식었지만 오랫동안 복싱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숱한 스타가 명멸했으나 전문가들이 꼽은 최고의 테크니션은 단연 슈거레이 레너드였다.웰터급에서 시작해 라이트 헤비급까지 뛰었던 그는 1980년대 무려 5개 체급을 석권했다. 그가 복싱 역사에 뚜렷하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쟁쟁한 라이벌들이 동 시대에 활동하는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는 마빈 헤글러, 토마스 헌즈, 로베르트 듀란 등과 더불어 1980년대 복싱 황금기를 이끌었다. 뚜렷한 라이벌의 존재는 일정 부분 개인이나 집단에 있어 성장과 발전의 촉매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전라북도는 전라복(福)도라고 한다. 태풍이나 홍수 등 재해 무풍지대다. 며칠전 강원도 일대를 휩쓴 초대형 산불을 생각해 보면 각종 재난이 적은 전북에서 생활한다는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지만 동전엔 반드시 앞뒤가 있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평온하게 살아오면서 안주했고 이는 결국 낙후를 불렀다. 같은 강원도라도 대관령 동쪽의 영동과 그 서쪽의 영서 지역 정서는 전혀 다르다. 영서는 토지도 비옥하고 넓지만 이름 좀 있다는 사람들은 영동인 경우가 많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오면서 적극적인 생활양식이 몸에 밴 때문이라고 한다. 전라도 역시 남도와 북도는 천지차이며, 경상도의 경우 대구경북 쪽과 부산울산경남 등 남도는 성향이 크게 다르다. 흔히 말하기를 충청도 사람들은 단정적인 말투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충북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경우 어제는 고구려, 오늘은 백제였던 땅이 내일은 신라의 영토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겉으로 뚜렷한 정치성향을 드러내지 않는게 체득된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부산 일대에서 전북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많다고 한다. 부산이 금융중심지에 관한 한 전북을 또다른 라이벌로 여긴다고 하니 한편으론 과하게 대접해 줘 고맙다는 느낌도 든다. 부산 일대에서는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의 논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전북으로의 금융중심지 지정이 결국 부산에 집중가능한 금융공기업을 전주로 빼앗길 것이란 우려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전북은 해양금융중심의 부산시와 달리 세계 3위 자산운용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만큼 기금운용의 인프라를 이용하면서 기금운영의 안정성과 고수익율 창출을 도모시키기 위한 지역적 특수성이 있다고 한다. 금융공기업 이전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 부산 등의 금융중심지와 경쟁이 아닌 자산운용 위주의 금융산업 발전을 통해 금융산업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전북에서 말하는 것일뿐 아직 부산 지역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이게 풀어야 할 과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4.08 20:46

집토끼 키우기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가 인구 65만에서 머물러 있다. 전주시는 산업시설이 빈약하고 인구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좋지 않아 사람과 돈이 모이지 않는다. 그간 김완주지사가 시장으로 있을 때부터 도와 시의 관계가 좋지 않고 엇박자를 낸 것이 결과적으로 전주발전을 어렵게 했다. 전주시장이 되고 나면 전주 유권자가 많기 때문에 그 기반을 정치적 토대로 삼아 도지사를 넘보았다. 그 결과 전주시장 2명이 지사가 되었다. 송하진 지사가 전주시장직에 취임하자마자 김완주시장이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경전철 건설을 백지화 시킨 것은 잘했다. 현직지사가 시장 때 추진했던 사업을 후임시장이 백지화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당시 송시장이 김완주시장이 추진했던 경전철 사업을 그대로 승계해서 2개코스로 추진했더라면 지금 전주시는 빚더미에 나 앉았을 뿐더러 부채로 각종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 시장이 경전철 용역비나 관계공무원 해외시찰 등으로 자그만치 40억 정도를 날렸다. 누누히 지적했지만 전북도가 전주시에 양여해준 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을 지금까지 추진않고 방치한 것은 전주발전을 뒷걸음질 치게 한 것이다. 이 사업은 강현욱 지사와 김완주 전주시장 때부터 이뤄진 사업이라서 양여조건에 맞게 개발했어야 했다. 시민 70% 가까이가 찬성한 사업을 김승수 시장이 취임 1년 지난뒤에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처럼 공원으로 조성해서 시민들에게 돌려 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선 한 지금까지 가시화 된 게 아무것도 없다. 이 사업은 전주혁신도시 제3금융중심지 지정과도 연관이 깊다. 혁신도시 입주기관들은 대규모 컨벤션이나 호텔 위락시설 등을 필요로 한다. 국민연금공단이나 기금운용본부가 전주혁신도시에 있어 외국 큰손들까지 전주를 찾지만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만한 부대시설이 없어 KTX를 이용, 일만 보고 서울로 돌아간다. 소비력이 왕성한 큰손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주 야구팬들은 야구장 시설이 없어 전주에서 프로야구 관전을 못한다. 서울 등 대도시를 전전긍긍하며 야구 관전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더 한심한 것은 전주에 대형 유통매장이 없어 대전 코스코나 부여 롯데아울렛 매장 고객 30% 이상이 전주시민들로 채워진다는 것. 지금은 글로벌경쟁시대라서 담 치고 울타리만 친다고해서 상권이 보호되는 때가 아니다. 영세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제약을 가해야겠지만 무작정 로드숍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종합경기장 개발을 안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전주에서 광주 등 외지업체들이 아파트분양가격을 맘대로 천만원대까지 끌어 올려 그간 8조원을 챙겨갔지만 모두가 유구무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자광이 대한방직 부지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을 전주시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모순이다. 잡히지도 않는 산토끼를 잡겠다고 나서는 것 보다 집토끼를 잘 길러 도시발전을 하는게 낫다. 김 시장이 특혜만 안주면 걱정할 게 없다. 자광 로비 받아 다음 지사선거에 나선다는 말도 안 나올 것이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4.07 20:27

‘나무를 심은 사람’ 그 이후

애니메이션 거장 프레데리크 백 감독(1924~2013)은 우리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 출신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그는 환경운동가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첫 작품 <아브라카다브라>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그는 <일루션> <크랙> 등의 작품을 통해 독창적인 세계를 인정받았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의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사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원작은 따로 있다. 프랑스 출신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이 그것이다. 한 양치기가 버려진 황무지에 40여 년 동안 도토리를 심어 결국은 생명을 가진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나고 감동시켰다. 주인공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비록 가공인물이었지만 프레데리크 백은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폐허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뀌는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이 애니메이션이 상영된 후 영화가 제작된 캐나다 전역에서 나무 심기 운동이 일어나 2억 5천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무를 심는 주인공의 헌신과 노력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덕분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에 비판적이었던 프레데리크 백 또한 나무를 심는 일에 앞장서 수많은 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가공인물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자신을 바쳐 나무를 심고 가꾸어 후대에 귀한 선물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귀화해 한국 사람이 된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 1921~2002) 선생도 그 중의 하나다. 그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된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유산으로 남겼다. 일찍부터 식물의 다양성에 눈을 뜬 그는 스스로 나무를 구해 심고 가꾸는 일에 평생을 바쳐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을 가진 수목원을 만들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봄이면 절정을 이루는 700여종의 목련과 600여종의 호랑가시나무를 비롯해 1만 3천여 종의 온갖 식물들이 계절을 기다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란다. 1960년대 초반 조성된 천리포 수목원은 10년 전부터서야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기다려 문을 연 이유가 있었을 터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나무의 나이테는 일 년에 한 개만 생긴다. 그 울림이 깊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4.04 20:42

내로남불식 인사청문회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구성을 앞두고 전북출신 장관 후보자 3명 중 2명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특히 익산 출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의 자진 사퇴에는 아쉬움이 크다.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비롯해 정읍~남원 동부내륙권 국도건설, 익산 국가산업단지 재생사업, 전주역 시설개량 등 국토부 현안이 산적한 전라북도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30여년간 국토부에서 근무하면서 주거와 교통 분야 요직을 두루 경험한 국토교통 전문가다. 국토부 내에서도 첫 여성장관인 김현미 장관의 파격 등용에 이어 안정적으로 국토부를 이끌 적임자라며 크게 환영했다. 탁월한 업무 능력과 직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기에 공무원 노조에서도 환영과 함께 청문회 통과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다주택 보유 논란에 그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여기에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재개발 부동산 투자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자진사퇴의 길을 택했다. 참여정부 이후 국토부 장관 후보자 중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처음 낙마한 사례가 됐다. 물론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세종시에 아파트 분양권을 소지한 것은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경륜과 역량 업무능력, 그리고 공직사회 평판까지 상쇄시킬 정도인가에는 의문의 여기가 남는다.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동정론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20대 국회의원 289명 가운데 두 채 이상 다주택자는 117명으로 40%가 넘는다. 이들 가운데 이른바 강남 3구에 주택을 보유한 의원도 71명에 달한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이주영 국회 부의장과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은 각각 주택 6채를 소유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도 2018~2019년도 공직자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1년동안 평균 1억원 시세차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재산이 94개에 달하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은 1년새 10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보았다. 부동산 57개를 보유한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은 14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인사청문회가 아닐 수 없다.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 능력과 자질 검증은 뒷전이고 오로지 흠집내기와 트집잡기, 망신주기식 행태로 일관하는 청문회는 국민들을 식상하게 만든다. 이런 청문회를 우리가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 것인가.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4.03 20:47

하숙마을

70~80년대 학교 주변 곳곳에 하숙촌이 자리했다. 대개가 허름한 개인 주택이었고, 하숙생 수도 평균 대여섯이었다. 주인과 하숙생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생활했기 때문에 하숙집 자체가 한 가족이었다. 고교생 하숙생에게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이른 새벽밥을 짓고, 점심저녁 도시락까지 챙기는 데 정성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그런 하숙촌은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됐다. 대학은 물론, 고교까지 기숙사가 생기면서다. 전주와 서울 유학생을 위해 시군별 장학숙도 운영되고 있다. 하숙을 치던 학교 주변의 낡은 주택들은 거의 모두 원룸촌으로 변했다. 원룸 주인들이 대학 기숙사 확충을 반대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던 때도 있었으나 사회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하숙촌의 쇠퇴는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이를 역으로 활용한 곳이 교육도시인 충남 공주다. 공주시는 주민들과 함께 과거 하숙촌에 민박과 식당, 카페, 사진관, 갤러리, 문학관 등을 조성해 하숙마을로 이름 붙였다. 1960년대 이후 지역민들의 삶이 담긴 게스트하우스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추억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전북혁신도시를 지나다보면하숙마을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곳 하숙마을은 공무원 연수기관인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이 완주 이서에 둥지를 틀면서 전용 하숙단지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원룸과 주택 100여 채 중 80여 채가 하숙집으로 운영되고 있고, 객실 수만 1200개에 이른다. 과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하숙촌과는 거리가 있지만, 하숙마을이라는 이름만으로 정겹다. 이 하숙마을이 채 정착도 전에 존폐 기로에 놓였다. 경기도가 인재개발원으로 교육생을 보내지 않고 자체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고 행자부에 요청하면서다. 인재개발원이 떠난 뒤 수원의 하숙마을이 쇠퇴하고, 해당 지역의 상권이 무너진 것을 직접 경험한 곳이 경기도다. 경기도가 이제와서 공무원교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자체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동안 인재개발원의 특수를 누렸던 지자체로서 도리가 아니다. 경기도의 몽니와 행안부의 안이한 대응으로 인재개발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하숙마을을 포함한 지역상권이 위협받을까 걱정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9.04.02 20:2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일제 침략기 군항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한때 요처로 꼽혔던 경남 진해에는 해마다 군항제가 펼쳐지는 이즈음 전국에서 몰려드는 벚꽃 관광객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화사한 벚꽃의 정취는 특히 밤에 멋드러진 조명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그런데 청명을 며칠 앞둔 요즘 날씨는 한마디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절기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 같지 않은 추운 날씨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씨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많은 이들은 유신 독재의 총수인 박정희가 불과 몇달전 사라졌기에 이제 곧 민주화가 이뤄지고 김대중 또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소한 김종필이나 최규하가 상당 기간 끌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3김 회동에서 김종필은 묘한 말을 남겼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을 아십니까아직 봄이 오직 않았다는 의미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이미 1212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518 광주를 통해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렸다. 시간이 한참 지난뒤 반추해 보면 춘래불사춘을 언급했던 김종필의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역사의 고비고비 마다 확실히 매듭을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만 새 출발이 가능하지만, 결말이 나지 않았을때 비극은 오랫동안 계속되곤 한다. 대표적인게 임진왜란이다. 이 전쟁을 거치면서 명나라가 망해버리면서 청이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도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의한 에도 막부 시대가 펼쳐졌다. 하지만 전장터를 제공하며 숱한 백성이 죽어나간 한반도에선 정작 조선이 망하지 않고 멀쩡히 이어졌다. 어쩌면 조선이 그때 망하지 않고 생불여사(生不如死) 같은 모습으로 살아남은게 큰 저주였음이 훗날 역사는 보여준다. 소위 촛불혁명으로 새 정권이 탄생했으나 요즘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아직 봄은 오지 않았나보다. 누구보다 법을 지켜야 할 법무부장관 출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진해 바로 옆에 있는 창원에서 프로축구 경기장에 난입, 불법선거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법을 몰랐다고 하면 그뿐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 여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처신으로 자꾸 민심을 잃고 있다. 민심과 거리가 먼 인사를 하고, 요석인 박영선김연철 카드를 살리기 위해 폐석인 최정호조동호를 버렸다는 말도 들린다. 한비자는 일찌감치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고 했다. 도리가 아닌 것은 이치를 당하지 못하고, 이치는 법을 당하지 못하고, 법은 권세를 당하지 못하고, 권세는 하늘(=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어떤 권력도 민초의 저변 민심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4.01 20:28

촛불 국회의원

지금도 선출직에 나서려면 능력에 상관없이 돈부터 걱정한다. 아직도 돈선거가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 같은 생각을 한다. 능력이 출중하면 돈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법정선거비용이 한정돼 있지만 알게 모르게 영수증 처리도 못하고 쓰는 돈이 꽤 많다. 5만원짜리 고액권이 나온 후로는 그 만큼 돈가치가 하락해 예전보다 돈을 많이 쓴다. 선거가 잦아지면서 선거브로커들이 각 지역별로 활개쳐 돈선거의 유혹이 상존한다. 21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상 출마자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선거법이 확정되지 않아 선거구가 어떻게 획정될지가 미지수지만 일단은 지역구가 줄고 비례대표가 늘 전망이어서 전북은 의원축소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10석의 의석수가 1~2석 정도 준다면 전북은 완전히 분대급 정치권으로 전락하면서 지역구 경쟁만 치열할 전망이다. 2석 밖에 안된 민주당은 지역구별로 후보경선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이 녹색 돌풍을 일으켜 7석을 석권 압승하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그간 와신상담하면서 재기를 넘보지만 그 어느때보다 당내 공천경쟁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지난 장미대선 때 민주당이 압승해 그 여파가 21대 총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3선의 이강래 한국도로공사사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이 절치부심하고 있고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였던 김금옥씨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내 비례대표로 안전하게 국회에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전주 완산갑으로 출사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DJ가 낙선한 후 영국에 가 있을 때부터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DJP연합의 밑그림을 그렸던 이강래 사장이 최근들어 내년 총선 출마의지를 강하게 불태운다는 것. 민주당 복당이 좌절된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계속해서 민주당 복당을 노리지만 이 사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당내 경선을 통해 4선고지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는 것. 민주당 실세들과 끈끈한 맥을 갖고 있는 이 사장이 한때 국정원장 발탁설이 나돌 정도로 조용한 실력자로 알려졌는데 그가 총선에서 성공하면 후반부에 들어간 문재인 정부나 국회에서 부의장 이상 요직을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간 보수정권이 전북 출신들을 소외시켜 전북인재 풀이 제한됐지만 문재인 정부 때부터 장차관 기용이 많아져 민주당쪽의 지역구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라승용 전 농진청장(김제) 행정부지사를 역임했던 심덕섭 보훈처차장(고창) 심보균 행안부차관(김제) 등이 눈에 띤다. 문제는 누가 더 많은 권리당원을 확보하느냐가 관심사다. 촛불혁명을 통해 무능한 박근혜 전대통령을 탄핵시켰던 도민들이 촛불정신을 되살려 나갈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21대 총선은 물갈이냐 아니면 인물키우기냐로 여론이 갈리겠지만 유권자들이 연고주의에 현혹되지 않고 인물을 잘 뽑아야 전북발전도 가능하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31 19:59

레지던시의 진화

예술가들에게 창작 생활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 레지던시(residency)가 진화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기업 뿐 아니라 사설미술관과 단체까지 레지던시를 주도하고 있는 덕분이다. 전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불과 3-4년 전 만해도 어려움을 겪었던 입주자 모집 여건은 넘쳐나는 신청자들로 이미 반전되었다. 지역의 한계를 넘어 외국작가들의 참여도 해마다 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예술가가 특정 공간에 거주하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지원을 받는 레지던시는 유럽을 비롯해 예술가 지원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좀 더 일찍 시작된 제도지만 그것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국내 도입 역시 그즈음인데 공공기관 보다는 기업의 예술가 지원 사업이 오히려 레지던시 환경을 북돋아온 경향이 짙다. 사실 레지던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시작은 독일의 창작공간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enstlerhaus Bethanien).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예술가 스튜디오이기도 한 이 공간은 병원 건물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의료시설로서의 기능을 잃고 훼손되어 폐허가 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예술공간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베타니엔이 본격적인 창작 지원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5년, 본격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이후 40년. 지금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 작가들이 상주하면서 실험정신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창작 실험실이 됐다.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베타니엔의 명성을 높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우선 특별한 것은 입주작가의 자격. 자국의 작가들이 아닌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외국 작가들이 대상이다. 국제예술교류를 지향하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베타니엔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공공예술단체와 협약을 맺고 해마다 추천을 받아 입주 작가를 선정하고 1년 동안 창작공간과 전시공간, 활동비를 지원해준다. 그러면서도 창조적 관점을 지켜 생산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하는 덕분에 입주 작가들은 1년 동안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하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며 창의적인 작업을 마음 놓고 펼치게 된다. 근래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레지던시를 들여다보니 형식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게다가 유독 미술 분야에만 편중되어 있다. 지역적 특성으로도 문학과 공연 등 분야의 확장이 아쉽다. 이대로는 레지던시의 건강한 진화가 멀게만 보인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3.28 20:20

지역 격차의 복지서비스

대한민국 복지사업 현황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정부 운영의복지로(www.bokjiro.go.kr) 시스템이 있다. 생애주기(임신출산부터 노년까지)가족상황(장애인한부모)주제별(교육고용주거) 등 분류 검색과, 지역별 검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전체 검색을 눌러보니 무려 7152건에 이른다. 가히 복지정책의 홍수시대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가짓수의 복지사업이 이뤄지더라도 나를 위한 복지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지자체별 재정격차에 따라 갈수록 복지서비스에서도 차이가 벌어지면서 다른 시도에서 받는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실제 경기도의 몇몇 복지사업만 보더라도 전북 지역민들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다. 경기도는 올해 만 24세 청년 1인당 연 100만원 지역화폐로 지급하는청년배당과, 최초 국민연금 보험료를 1회 지원하는 생애최초 국민연금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청년구직지원금, 일하는 청년통장, 청소년학업장학금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 또한 여럿이다. 0세아 전용 어린이집, 365어르신돌봄센터도 운영 중이다. 경기도청 본청에서만 140건의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성남시는 경기도와 별도로 자체 54건에 이르는 복지사업을복지로에 올려놓았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복지서비스만 해도 오케스트라와 유소년 축구단을 운영하고, 다문화모국방문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와 비교할 때 전북 지자체의 복지사업은 그야말로 면피용 수준이다. 도청 본청에서 시행하는 자체 69건의 복지사업이라고 해야 저소득층노인 등 취약계층 시설과 단체 운영과 행사 등을 지원하는 정도다. 34개의 자체 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전주시 역시 마찬가지며, 청년 대상 복지사업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게 고작이다. 지자체의 복지사업을 두고 선심성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그것도 재정이 뒷받침 될 때 가능하다. 재정여건이 안 된 지자체들은 정부 복지사업의 매칭펀드를 메꾸기도 버겁다. 복지예산 비중이 전국에 가장 높은 전북이 그렇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부모뿐 아니라 지역으로도 결정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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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9.03.27 20:42

일제 잔재 지명(地名)

고향의 마을 이름이 구암리다. 마을 뒷동산 아래에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기에 구암(龜岩)마을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구암(九岩)마을로 한자표기가 바뀌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구산리도 산 모양이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산(龜山)이었지만 역시 거북 구(龜)가 아닌 아홉 구(九)로 개명됐다. 동네 어른들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때문에 왜구가 패망했기에 우리 지명에서 거북 구(龜)를 못쓰게 했다고 한다. 거북 구(龜)뿐만 아니라 지명에 용(龍)이나 봉황(鳳凰)이 들어간 곳도 일제가 바꿨다. 대전 계족산의 원래 이름은 봉황산이었다. 장수 용계(龍鷄)마을도 고려 말기 왜구 토벌에 나선 이성계 장군이 깜박 잠이 들었다가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왜구를 무찔렀다 해서 그렇게 불렸지만 일제 강점기 때 닭 계(鷄) 대신 시내 계(溪)로 바꿨다. 1910년 대한민국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1914년 3월부터 1917년까지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통해 우리 고유의 지명을 모조리 바꾸었다.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전국 3만4233개에 달하는 고유의 지명을 한자 표기로 고쳤다. 새터마을은 신기(新基)로, 큰 골은 대곡(大谷), 장터는 장기(場基), 대밭골은 죽전(竹田), 솔고개는 송현(松峴) 등으로 개칭했다. 또한 관청을 중심으로 방향을 뜻하는 동면서면남면북면으로 지명을 정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때 바뀐 지명 가운데 아직도 30% 정도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87년부터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지명 정비사업을 추진했지만 지금까지 전국에서 60여 곳만이 이름을 되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일제 잔재를 뿌리 뽑겠다며 지명 개정대상 31곳을 선정했지만 14곳만 고쳤다. 엊그제 전주 동산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창업주 이와사키 야타로의 호를 딴 동산동 지명을 바꾸기 위한 첫 설명회를 가졌다. 동산동의 원래 이름은 쪽구름마을이었다. 전주시는 이달 말까지 명칭변경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지명 개명에 나설 계획이다. 군산 서수면도 악덕 일본인 농장주 가와사끼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신사를 옮겨와 세워놓고 서수(瑞穗)라 지은 이름이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지명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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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택
  • 2019.03.26 20:49

미원과 미풍

삼성 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생전 못한것이 3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자식들을 서울대에 못 보낸 것, 삼성계열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를 못 이긴것, 제일제당이 생산하던 조미료 미풍이 대상에서 생산한 미원을 능가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녀들은 서울대 보다 더 좋은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을 나왔고, 중앙일보는 오래전 동아일보를 넘어섰으나 끝내 미풍은 미원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굴지의 재벌이 시장을 독점하던 시대 상황에서 미원을 이기지 못한 이병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원과 미풍은 반세기 동안 라이벌 이었다. 하나는 호남을 대표하고 하나는 영남을 대표하는 지역색까지 입었으니 얼마나 관심이 클지는 불문가지다. 전주의 명물이던 미원탑은 전주시 팔달로 옛 전주시청 사거리에 있었으나 지금부터 꼭 40년전 전국체전을 앞두고 철거된 바 있다. 미원탑은 1956년 창립해 지금은 대상그룹으로 이름이 바뀐 미원그룹이 순수 국내 발효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끈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을 알리기 위해 1967년 설치했던 광고탑이다. 정읍 출신 고 임대홍 미원그룹 회장이 사비를 들여 설치한 미원탑은 조미료인 미원을 알리는 광고탑 역할도 했지만 전주의 상징물이었다. 전주시가 지난해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쳐 미원탑 터와 함께 전주 남부시장, 호남제일문, 어은쌍다리, 한성여관 등 38곳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와 자본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미원이 미풍을 누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실제로 전북이 서울,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와 공정한 경쟁을 했을때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지역과 특화된 재화와 용역을 바탕으로 누가 보더라도 합당한 명분을 갖추면 못할 것도 없다. 요즘 제3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공식 발표는 안됐으나 KDI의 용역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좀 부족한 것으로 결론이 도출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북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나 마냥 포기할 일만은 아니다.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현실을 감안해 향후 정무적 판단을 곁들일 경우 얼마든 명분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북이 추가 선정되면 부산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생임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정치공학상 전북이 부산을 넘어서기 어렵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2의 미원 신화가 창조되는지 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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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9.03.25 20:18

파이 키우기

그간 전북이 산업화과정에서 뒤쳐지다보니까 제반여건이 안좋아 돈벌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었다. 설사 돈 벌어도 준조세 성격의 뜯기는 돈(?) 때문에 귀찮게 여겨 사업체를 서울로 어디로 옮긴다는 것. 서울로 가면 규모가 적어 익명성이 보장돼 누구한테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돈 벌어가며 사업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것. 자연히 돈 좀 번 업체들이 전북을 떠나다 보니까 전북은 인심만 사납고 사람과 돈이 모이지 않는 황량한 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시가 1백만이 넘어야 그런대로 자체소비와 생산이 이뤄지면서 돈과 사람이 모이게 돼 있다. 인접 광주가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부정적 요인이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전주와 전북은 그나마 적은 파이를 놓고 서로가 그걸 먹어 치우려고 아귀다툼 하는 바람에 인심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졌다. 건설업체들은 입찰이 안되는 바람에 수주량이 적어 대기업한테 하도급 받으려고 안달이다. 경쟁업체를 제압하려고 헐뜯거나 심지어 악성 루머까지 만들어 퍼뜨린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전북이 그 도가 심하다. 65만 전주에서 돈 벌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규모가 적고 날마다 형님 동생하며 살아가는 연고주의와 온정주의가 지배하는 구조라서 더 어렵다. 좋게 말해 경쟁이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전투구 해 더 어렵다. 예전 인심 좋았던 때와는 달리 돈 앞에서 의리도 그 무엇도 없는 비정한 세계만 펼쳐졌다. 투서 무고 진정 자살률 이혼률 등 안 좋은 지표만 전국 최고다.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전주가 잠자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전주는 고층아파트를 짓기 위한 타워크레인 몇대가 겨우 움직인다. 수도권이 평택 청주까지 남하하면서 상전벽해를 이룬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자광이 도청 옆 대한방직 부지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걸 이유도 아닌 이유를 들어 전주시가 거절한 것은 납득이 안간다. 143층 높이의 익스트림 타워와 대단위 아파트를 건립해야 역동성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발전하는데 시는 목소리 큰 반대측만 일방적으로 의식해 불허가 처분을 내렸다. 더 한심한 건 전주 아파트 시장을 광주 외지업체들이 안방으로 만들어 평당 분양가를 천만원대로 형성해 수조원씩 벌어 가는 것은 불평이나 불만을 않고 유독 자광만 목줄을 죄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전주시가 익스트림 타워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 서면 다른 곳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한 것은 기우다. 빈 아파트가 늘지만 수요가 또다른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문제는 아니다. 서울에서 전주에다가 무슨 수요가 있다고 익스트림 타워를 건립하냐고 비아냥 거리는 것은 전주를 하대한 것으로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 전주한옥마을의 기존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계하면 관광객도 1000만 이상이 유지되면서 숙박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표만 의식해 포퓰리즘으로 시정을 이끌지 말고 파이를 키워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3.2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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