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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 전북도청 이전

지금부터 약 200 여년전, 조선 정조때 전세계를 통틀어 인구 100만명이 넘는 도시는 중국의 베이징, 일본의 에도(오늘날 도쿄), 그리고 터키의 이스탄불 등 단 3곳에 불과했다. 조선 수도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남짓할때 100만이 넘었으니 이들 3대 국제도시의 명성과 규모는 가히 짐작할만 하다.그런데 이러한 수도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진게 아니고 새로이 정치권력의 주도 세력이 된 집단이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대표적인게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다. 정치, 종교, 사회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어쨋든 기존 수도 로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질서를 표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바로 오늘날 이스탄불이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를 이전한다고 하면 기존에 터를 굳건히 다졌던 기득권층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강제수단을 동원하고, 당근을 줘가며 만든게 서울을 비롯한 오늘날 대도시의 변천사다.사실, 우리역사에 있어서도 수도 이전과 관련한 논쟁은 적지않다.대표적인게 개경파와 서경파가 맞대결한 소위 묘청의 난이다. 수도를 개경으로 해야하느냐, 서경(오늘날 평양)으로 해야하느냐 하는 논쟁끝에 커다란 내전으로까지 치달은 사건이다. 조선건국 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도 공신들 사이에서 숱한 논란이 일었고, 태조 이성계는 골머리를 앓았다. 박정희 정권 때 수도이전을 추진하다 중단했는데 그게 오늘날의 세종시와 별반 멀지 않은 곳이다.노무현 정권 때 헌법재판소의 관습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판결에 수도이전은 무산됐고, 그후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국회의원의 2/3 이상이 수도권에 터전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세종시를 명실공히 행정수도로 조성하는것 또한 큰 저항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수도 이전은 단순히 몇개 기관이 옮겨가는데 그치지 않고 국운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사안이다.오늘날 베이징, 이스탄불, 도쿄 등이 세계적인 중심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엄청난 저항을 물리치고 수도이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범위를 좁혀 지방행정도시를 옮기는 것 또한 엄청난 저항과 파급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일이다.경북 안동, 전남 무안 등 새로이 도청 소재지가 된 곳은 오랫동안 갈등과 논쟁을 거듭한 끝에 결정됐다.전북도가 향후 장기발전 방향을 새만금으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중 하나는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안 시대에 걸맞게 도정 역량을 집중한다는 의미가 있고, 특히 향후 새만금이 중국의 푸동이나 인천 송도처럼 상전벽해가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검토할만한 과제다. 다만 새만금이 빠르게 정착되고 살아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전주는 명실공히 역사적문화적 전통을 지닌 고을이라는 점에서 전주를 떠나 도청사를 당장 옮기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특히, 무진장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 발전이 더딘 점을 고려하면 서해안으로 진출하는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비전을 서해안에 둔다면 장기적으로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도 그냥 묵살할 일이 아니다. 경북의 경우 포항에 동해안 발전본부란 기관이 곧 문을 여는데 이곳은 2급 상당 공무원이 책임자를 맡아 도청 제2청사 격으로 활동하게 된다.우리에겐 타산지석이 될 법하다.뭐든 하려고 하면 합당한 이유가 당장 10가지가 생각나고, 하지 않으려 하면 부당한 이유가 10개가 떠오른다고 한다. 향후 발전 방향과 지향점, 서해안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새만금에 도청 제2청사를 두는 것이 장밋빛 꿈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9.27 23:02

민선도백의 승부수 왜 중요한가

1995년 민선단체장 선거가 첫 실시된 이후 도내에선 지금까지 4명의 민선도백이 있었다.유종근 전 지사를 필두로, 강현욱, 김완주, 그리고 송하진 현 도지사가 바통을 잇고 있다.그런데 도단위 지도자들의 승부수는 늘상 성패가 있었지만, 그가 어떤 승부수를 띄우는가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지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극히 소시민적 시각으로만 보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누가되든, 도지사나 국회의원, 또는 시장군수가 누가되든 나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게 사실이다.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거나 공동체의 틀속에서 본다면 지도자의 결정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극단적인 경우지만 국가 지도자가 전쟁이나 평화를 선택했을 경우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 누구도 그러한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이런점에서 민선시대 개막 이래 도내 단체장들이 던졌던 굵직한 승부수가 갖는 의미는 심대하다.때로는 결실을 맺기도 하고, 때로는 부메랑이 돼 아프게 돌아오기도 했지만 말이다.22년전 혜성처럼 등장했던 유종근 전 지사는 기존에 봐왔던 관선 도백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그는 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 새만금지역 다우코닝사 유치, 군산 F1 그랑프리 유치를 선언하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김대중 정부의 유력한 인물이었던 그는 역대 전북지사중 가장 파워있는 사람으로 당시로서는 지역주민들이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를 표방하면서 기대를 키웠으나 아쉽게 성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대형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무주~전주 도로 확충 등 민선도백의 승부수는 나름대로 지역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IMF 파동 와중에서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건립, 새 전북도청사 건립을 이뤄냈고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인프라를 크게 구축한 것도 나름의 평가를 받을만 하다. 뒤이어 등장한 강현욱 도지사는 강만금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유달리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 진력했으나 야당 도지사의 한계는 뚜렷했다.그는 무주 세계태권도공원 유치, 전북혁신도시 유치 등의 성과를 일궈냈으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는 버거웠고 결국 동계올림픽이나 방폐장 유치 실패를 맛봐야 했다. 다만 오늘날 전북혁신도시가 지역발전의 주춧돌이 되고,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개최를 할 수 있었던 단초가 된 점은 평가할만하다.김완주 지사때에는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요즘 최대 관심사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유치했고, OCI, 도레이 등 국내외 글로벌 기업 유치에도 진력했으나 정권과의 동질성 부족 등으로 대형 프로젝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그는 임기 막판 LH 본사유치,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등에 나섰으나 잇따라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제 막 임기 3년을 마친 송하진 지사는 어쩌면 유종근 전 지사이래 가장 좋은 여건을 맞고있다.DJ의 참모를 지냈던 유 전 지사 이후 다시 한번 집권여당의 두터운 후원을 등에업고 있기 때문이다.시기적으로 뭔가 보여줘야 할 상황도 도래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오늘 아제르바이젠에서 전해줄 세계잼버리대회의 유치 결과가 주목된다.이미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유치나 북한 태권도대표단의 전북도청 방문 등 가시적 성과가 있긴 했지만, 새만금, 농생명 중심지, 금융 허브를 표방한 만큼 지금부터 하나하나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세계잼버리대회는 사실 그 자체는 작아 보여도 이를 지렛대삼아 SOC를 확충하는 등 새만금사업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밤 아제르바이젠에서의 낭보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8.16 23:02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가 오늘날과 같은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스페인 출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타레가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지금부터 약 130년 전, 타레가는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이 작곡한 것을 기타로 편곡했는데 그 과정에서 현대적 주법과 새로운 음향을 잘 담아냈다.결정체는 스페인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작품이다.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타레가의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다보면 트레몰로 주법을 통해 묻어나오는 애잔한 분위기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알함브라 궁전은 과연 무엇이던가.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기도 한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지역에 머물던 아랍군주의 저택이자 왕궁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알함브라 궁전하면 곧바로 생각나는게 있다. 작게는 스페인, 크게는 세계사를 바꿨던 1492년이다.조선의 건국이 1392년, 임진왜란이 1592년인데 딱 그 중간이 바로 1492년이다.1492년 스페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첫째 마지막 이슬람 왕족인 그라나다왕국이 정복되면서 스페인이 이슬람 치하에서 벗어났고, 둘째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연합으로 통합 스페인 역사가 시작됐으며, 셋째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해다. 한 국가에서의 작은 날갯짓 같아도 일련의 역사적 사건은 세계질서의 재편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바로 이 해를 전환점으로 해서 스페인은 유럽의 중심국가, 아니 세계사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페인의 부흥과 영광이 동트는 바로 그 순간, 스페인의 몰락은 이미 한쪽에서 움트고 있었다.그라나다 정복 3개월만에 유대인들의 추방을 명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한 것이다.가톨릭의 순수성, 이민족의 배제를 골자로 한 이 칙령은 승리의 축배를 들면서 발표했으나, 결국 유대인이 대거 몰려간 네덜란드의 번성과 스페인의 몰락으로 귀결된다. 이 시점에서 갑작스레 스페인의 결정적 시기인 1492년을 회고하는 이유가 있다.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는 2018년을 앞두고 지금이 도민들에게 가장 결정적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딴 전라도가 명명된지 천년이 지나는 동안 전북을 포함한 전라도는 번영과 환희 보다는 쇠퇴와 침울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고 하지만, 전라도는 그동안 중추적인 집권세력이 되지 못했다.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면서 전라도는 도전을 통한 쟁취보다는 비관과 체념에 빠진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전라도 정도 천년을 계기로 확 달라져야만 한다. 도민들이 어떤 의식과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그 운명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부터 남은 반년동안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전라도 정도 천년이 웅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새정부 장차관 인선 등 주요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 됐다. 과거 정부에 비해 내각과 국회, 여당의 핵심 요직에 전북인들이 상당수 포진하면서 지역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하지만 정부여당에 주요 인사 몇명이 진출한다고 해서 지역민의 삶이 나아지거나 위축된 도세가 확 달라질 수는 없다.한때 도내 인사들이 국회의장, 장차관, 여당 수뇌부를 차지한 시기가 있었으나 큰 틀에서 보면 그 또한 별개 없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전라도 정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도민의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발전전략을 구상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1492년 스페인의 역사가 천지개벽의 전환점이 됐듯 지금 내린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가 향후 일백년, 일천년 역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07.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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