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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차가운 장미'로 보는 중년의 위기]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

상처 입은 사람은 위험해요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까

   
 
 

장미의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베트 미들러’의 ‘더 로스’란 곡을 꺼내 듣는다. 폭풍처럼 살다간 여성 라커 ‘제니스 조플린’의 삶을 노래로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9년에 나온 동명 영화에서 그녀는 돈밖에 모르는 매니저의 주문을 거부하지 못하고 싫어도 마이크를 잡는 여린 가수로 그려졌다. 마약에 노출되더니, 급기야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나는 산 채로 묻혀요〉라는 전기로 더 유명해진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우리 영화 〈인간중독〉의 엔딩 곡으로 쓰여 많은 사람의 심금을 미묘하게 휘저었으니 나의 공명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영화 〈향수〉는 장미꽃 1만 송이를 솥에 끓이면 한 방울의 오일이 나온다고 했다. ‘그루누이’라는 냉혈한이 오일을 추출하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만 골라 장미꽃 송이와 함께 밀어 넣는다. 미치도록 고혹적인 향이 사람을 파라다이스로 데려다 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냄새도 사람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인간의 하릴없는 욕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뷰티는 장미(‘아메리칸 뷰티’는 미국 산으로, 사계절 꽃이 피는 장미의 일종이다. 수도 워싱턴의 시화(市花)로, 새빨간 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졌다)로, 장미는 성적 욕구로 표현된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장미는 이를 매개하는 모티프(motif)로 기능한다. 결말에서 식탁 위 장미꽃이 주인공 ‘레스터’가 총에 맞고 벽에 피를 튀기는 장면과 대비되는데 이는 인간의 탐욕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장미는 왜 여러 영화에서 때로는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때로는 천대의 대상으로 극단적 조명을 받아야 하는가.

 

장미의 시름이 깊어지는 6월에 찾아온 영화 〈차가운 장미〉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장미를 매혹으로 또 위기로 표현한다. 장의자 시트, 모포, 쿠션, 목도리 등 수많은 장치에 묻어있는 장미의 향취는 특별한데,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중 ‘미미의 테마’를 삽입하여 폐결핵을 앓는 소녀 미미와 로돌포의 비련을 대치시킨 것이 그렇다.

 

‘폴’(다니엘 오떼유 분)은 존경받는 외과 의사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다. 사방을 유리로 단장한 저택에서 부인 ‘루시’(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분)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평온한 이집에 의문의 장미꽃 다발이 배달된다. 폴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동댕이친다. 꽃은 집과 병원을 번갈아 가며 매일 배달된다. 부부는 크게 당황한다. 그 무렵 폴은 한 카페에서 ‘루’(레일라 벡티 분)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거리에서, 병원에서 자꾸 마주치게 되는 루. 폴은 그녀를 장미꽃 발송인으로 지목한다. 쫓다가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폴은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다. 수술하면서 손이 떨리는 증상을 노출하여 휴직 하게 된다. 애증이 깊어진 루. 집요하게 행방을 추적하는데, 그녀가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몸 파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페를 계속 찾고, 음악을 선물하고, 차 안에서 데이트도 하고…. 낌새를 눈치챈 루시는 정원을 손질하면서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루시에게 돌진하는 폴의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병원 의사인 ‘제라드’(리샤드 베리 분). 설상가상으로 노골화 되는 아들 내외의 불화, 아들의 폴에 대한 반항 등 예기치 않은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폴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녀는 나를 움직이게 했어요. 아주 멀리 돌려놨어요. 시작 전으로. 삶으로.” 덧붙여 말한다. “어느 것도 꿈꿔본 적 없어.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 어이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부닥친 루시가 강한 어조로 반문한다. “우리가 있기나 한 거야?” 사실 루시는 제라드에게 몸을 의지하고도 싶었다. 제라드의 말, “내일 당장 루시를 데리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어.”

 

어느 날 루가 자기 집 목욕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경찰에 의하면 그녀는 돈 많은 상류층 남자들을 몸으로 유혹하여 금품을 갈취해 왔고, 이번이 폴 차례라는 것이었다.

 

영화 〈데미지〉가 떠올랐다. 장관 직함에다 든든한 백그라운드,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플레밍’은 아들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겨났다. 여자는 그에게 접근하며 말했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위험해요. 사는 방법을 터득했으니까.”

 

영화에서 차가운 장미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다. 하나는 싸늘하게 식어간 루요, 다른 하나는 루시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장미다. 평화로운 가정에 불어 닥친 너울,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겠다. 루가 선물한 곡 ‘다정한 양귀비’가 감미롭게 들려온다.

 

‘어느 것도 꿈꿔본 적 없어, 인생이 이끄는 대로 끌려온 거야.’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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