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뒤에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영화 사조를 ‘네오 리얼리즘(Neo realism)이라고 한다. 당시 감독들의 다짐은 영화에 대한 미학적 근심이 아니라 진실을 영상에 담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토로하자는 것이었다. ‘스토리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남긴 새로운 사실주의 영화작업은 민중의 삶을 진실한 시각으로 조명했다는 데 커다란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개(Publicity, 퍼블리티)와 시민(Citizen, 시티즌)의 영문 합성어인 ‘퍼블리즌(publizen)’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거나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이 신조어를 보면서 자꾸 네오리얼리즘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삶을 자꾸 웹상에 공개하는데, 여기 올라오는 이야기가 가공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이야기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라는 미국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봤다. 영화는 기간제 교사로 전전하는 ‘헨리 바스’(애드리안 브로디 분)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인터뷰 형식으로 조명한다. ‘내 마음속에 뭐가 있던 그건 진실한 나의 감정이다’라고 말하는 사람. 그는 세상과의 거리 두기가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 믿고 있다. 제목도 그의 사는 방식을 반영했다.
그가 한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계약기간은 한 달. 말썽 많기로 유명한 학교다. 폭력배 수준의 아이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서 냉기가 흐른다. 선생님들은 수업보다 아이들 달래기에 바쁘다. 상담 선생님은 학과성적이 모두 F인 한 학생과 상담하다가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고야 만다. “매일 너 같은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내 삶이 얼마나 망가진 줄 알아?” 학생은 남자친구랑 놀다가 모델이나 밴드를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학부형 회의가 열린다.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딱 한 명이 참석한다.
헨리가 칠판에 단어 하나를 적는다. ‘Double think(더블 싱크)’. 이중사고라는 뜻으로 영화는 한 학생의 입을 통해 ‘서로 반대되는 신념을 둘 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뚱보 여학생 ‘매러디스’(베티케이 분)는 이런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을 인화해서 수북이 쌓아놓고 그 위에 눕는다. 그 속에 헨리의 것도 있다. 얼굴에서 눈, 코, 입을 지우고, 텅 빈 교실과 나란히 배열한다. 왜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슬퍼보였어요.” 라고 답한다. 헨리가 자문한다. “복도를 걷거나 수업할 때 마음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헨리는 왜 그렇게 비쳤을까. 그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셋이 살았다. 어머니는 자살하고, 외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신으로 처리할 뿐. 그는 문병 갔을 때 외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시내버스에서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는 헨리, 거리에서 몸 파는 소녀를 집에 데리고 와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준다. 소녀가 차려주는 밥상을 보며 감동한다. ‘날 위해 요리하는 손길이 있다니…….’ 헨리의 혼란스럽고 슬픈 일기장은 그렇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계약이 끝나는 날 한 학생이 헨리에게 묻는다. “옮겨 다니는 것 힘들지 않아요?” 헨리가 답한다. “이게 내 일이야. 사람의 삶이란 게 그래.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나쁘지. 때로는 타인을 위한 제한된 공간을 가지기도 하지.”
그렇게 그는 학교를 떠난다. 정리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은 채. 그리고 먼발치에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해요. 아무나 부모가 될 수는 없죠. 또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 필요해요. 그런데 누구도 그 복잡함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누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지 생각하고 싶어 하지도 않죠.”
영화는 애드거 엘런 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에 나오는 명구를 인용하며 끝난다. ‘나의 우울한 영혼과 썩어버린 나무를 보았다. 그것은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이었다.’
무엇인가에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게 생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확인한다. 때로는 애착으로, 때로는 무심함으로. 그 속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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