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월 플라워> 는 한 마디로 아니라고 말한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라며. 영화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출발 지점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디를 향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부연한다. 그곳이 무대든, 길이든, 각축장이든…. 수능 끝나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 이 학생들, 처음에는 “쩐다” 어쩌고 하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더니 차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러분이 세상을 대하는 양식이 어쩌면 평생 갈지 모른다는 말에 겁먹은 탓일까? 월>
영화는 ‘찰리’(로건레먼 분)라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정체불명의 친구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과 중 발생한 사건에다 자기 생각을 담아 정리하는 식이다. 학교에서 홈커밍(Homecoming)행사가 열린다. 찰리 혼자 벽에 붙어 남들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다. 월플라워다. 이 자리에 미친 듯이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가 있으니 ‘샘’(엠마왓슨 분)과 ‘패트릭’(에즈라 밀러 분)남매다. 이복남매이면서 고등학교 3학년인 이들은 평소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다. F 학점을 받아도, 친구들이 비아냥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것에 열중한다. 모범생인 찰리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친구들이다.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이들 셋이 우연히 만난다. 남매는 이곳에서도 광적인 응원을 펼친다. 얼떨결에 찰리도 따라 하고 그러면서 그들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술 마시고, 잡담하고, 춤추고, 우르르 몰려다니고….
어느 날 그들은 무개차를 타고 터널로 향한다. 차에서 벌떡 일어선 샘이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몰아치는 바람을 헤치며 터널을 통과한다. “야! 저기 터널 끝에 다른 세상이 있다. 우리는 지금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어.”
찰리가 월플라워가 된 것은 어린 시절 이모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엄마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준 이모, 이모는 수시로 찰리의 몸을 쓰다듬곤 했다. 그런데 그것을 비밀로 하자고 했다. “싫어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양가감정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 이모가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절명한 것이다.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이란 자책감은 강박감이 되고 급기야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샘 남매의 거침없는 행동거지는 찰리에게 커다란 모멘텀을 제공하게 된다. 알고 보니 샘은 어렸을 때 아빠의 직장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었고, 패트릭은 엄마의 이혼 등 성장기 충격으로 인해 반항아로 살고 있었다. 패트릭은 항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아이’라고 표현했다.
“불량품들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해.”
남매의 찰리에 대한 언급은 이렇게 간명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변하기 마련이거든. 인생은 누구를 위해 멈춰주지 않아.” 남매가 몰려다니며 터득한 진리이자 행동철학이다. 찰리가 샘의 손을 덥석 잡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알고 보니 샘도 찰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달려간 터널 주변에서는 여러 형태의 등(燈)이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파랑과 노랑을 섞은 색, 파랑은 너무 흔해서 기피당한 색이고 노랑은 새로움과 흥분 그리고 놀라움을 변주하니 찰리의 어제와 오늘을 형상화한 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찰리가 차에서 일어나 손을 높이 쳐들고 터널을 통과한다. 샘 때보다 훨씬 센 바람이 온 몸에 휘몰아친다. 바람 뒤에서 이모의 환영이 서서히 스러진다.
“저는요 찰리가요. 홈커밍 파티에서 절대로 춤추러 안 나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가더라고요.” 영화를 같이 본 한 학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벽에 기대고 있는 학생이여. 무엇이 두려운가. 왜 그렇게 서 있는가? 어린 시절의 충격 때문에,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해서, 원래 못나서…? 변명만 할 것인가? 뒤를 돌아보자. 분명 자기 발목을 잡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과감히 떨쳐 버리자.”
‘너 자신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던 찰리도 생각을 바꿨다. 그의 말을 음미해 보자. “내가 비참하지 않다는 걸 안 순간 정말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영화는 질풍노도기를 지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유와 해방이 무엇인지 절절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등을 떠민다. “나가봐, 어서.”·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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