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 에는 ‘이적요’라는 원로시인, ‘서지우’ 라는 30대 소설가, 여고생 ‘은교’가 등장한다. 두드러진 것이 세대차이인데, 이 영화는 유난히 쓰리 숏을 많이 사용한다. 젊음과 늙음이 욕망 앞에서 어떻게 경합하는지 한 장면에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은교>
<야간비행> 이란 우리 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보았다. 영화는 네 명의 고등학생을 조명한다. ‘용주’(곽시양)는 편모슬하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자라 서울대 진학이 가능한 수준의 학생으로 성장했다. ‘기웅’(이재준 분)은 아버지가 실직하고 행방불명되어 엄마와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데 주먹패거리 왕초 노릇을 하는 문제아다. ‘기택’(최준하 분)은 두 사람과 중학교 때부터 단짝인데, 어느 순간 왕따가 되어 패거리의 샌드백이 되고 있다. 조금 떨어져 ‘준우’(이익준 분)가 있다. 방치된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야간비행’이라는 게이바에서 가끔 이곳을 찾는 친구들과 동성애를 이야기하고, 불야성이 된 눈 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처지를 한탄하는 아이다. 야간비행>
학교 교실이 화면가득 채워진다. 한참 동안 비어있던 기웅의 자리에 주인이 앉는다. 화가 난 선생님이 책을 내려놓더니 모두에게 복창을 지시한다. “1 · 2 · 3등급은 통닭을 시키고, 4 · 5 · 6등급은 통닭을 지키고, 7 · 8 · 9등급은 통닭을 배달한다.” 입 따로 머리 따로 인 이들의 합창이 복도 끝에서 메아리 된다.
기웅의 탈선이 싫은 용주, 기웅 패거리의 주먹이 아픈 기택. 그러나 정말 상처가 깊은 아이는 이유 있는 반항아 기웅 아닐까. 그는 툭하면 아이들에게 경고한다. “가까이 오지 마라, 죽는다.”
용주가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엄마와 마주 앉는다. 엄마가 실연하여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들이 침묵을 깬다. “무슨 일 있어?” “너네 엄마가 또 채였다는 소식이다. 야! 사랑이 나란히 서서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런 사기꾼 같은 말 믿지 마! 새끼야. 사랑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거야. 그리고 꽃이 봄에만 피냐? 가을에도 핀다고! 너는 세상사람 눈 꼬라지 신경 쓰는 병신으로 살지 마.” 용주는 차마 자기 외로움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일어난다.
“등보이지 마! 내게 등보이지 말라고.” 용주의 하소연은 그런 것 이었다. 기웅은 이 말을 보기 좋게 묵살하듯 기택을 다리 밑 콘크리트 교각에 세워놓고 등을 사정없이 내갈긴다. 오토바이 타고 어둠을 헤치며 달리는 기웅의 뒷모습이 폐허처럼 검다. 그의 기착지는 항상 어두운 뒷골목이다. 맨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힘껏 빨아들인다. 명멸하는 담뱃불이 숨 쉬고 있음을 알려준다.
‘생텍쥐베리’는 그의 책 <야간비행> 을 통해 말한다. ‘빛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어둠이다. 우리는 어둠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지상의 불빛과 하늘의 불빛을 발견한다. 지상의 불빛과 하늘의 불빛 모두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신호인 셈이다. 지상의 불빛이 일상적인 삶이라면 하늘의 불빛은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삶이다.’라고. 야간비행>
기웅이 아버지를 찾아 화해하고 용주에게 돌아오지만, 기택의 반란(용주의 동성애를 부풀려 소문낸 것)을 무마시키려다 실패한다. 학교에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다가 배신한 패거리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용주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퇴하고, 준우는 전학 가고, 기택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빠의 아픔이 또 엄마의 슬픔이 이들의 외로움 속에 고스란히 스며든 게 너무 안타깝다. 누가 이들에게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 사회라는 유기체 속에서 학교도 학생도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을.
영화는 ‘친구가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기웅 아빠, 용주엄마의 싱글 숏이 이를 증명한 셈이다.
이런 속에서 영화는 어둠을 헤치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는 비행기를 상기시킨다. 불빛 깜박이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유영하는 저 비행기는 외로움의 상징 같지만, 눈길을 비행기 위로 가져가 보면 다르다고 말한다. 하늘에는 별빛, 땅에는 불빛, 도착지에는 찬란한 여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황홀하겠느냐며….
야간비행,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인생이다. 비행기에는 조종사만 타는 게 아니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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