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황동규’님의 ‘미시령 큰바람’이란 시구(詩句)를 음미하며 길었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미시령에서 흔들렸다/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바람이 되어 흔들리고/설악산이 흔들리고/내 등뼈가 흔들리고/나는 나를 놓칠까 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세파에 찌들고 몸도 아픈 내가 선택할 것이란 없었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는 도피처였는지 모른다. 극한상황에 온몸을 내맡기면 무엇이 달라지려나? 종주는 뜻밖의 과제를 안겨주었다.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과 외로움, 두려움까지 가세한 여정에서 나는 내면에 우주 쓰레기처럼 떠다니는 기억의 파편들과 만났다. 800km에 이르는 산길을 묵묵히 걷다 보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고, 살면서 내가 서둘러 봉합해버린 아픔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와일드> 라는 영화를 보는데 미시령 바람 밭에 서 있는 내가 떠올랐다. 뭐지? 와일드>
영화는 ‘세릴 스트레이드’란 여인이 쓴 《와일드》란 자전적 소설로 만들어졌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Pacific Crest Trail)을 완주한 여인의 이야기. 이 코스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장장 4,285km로 알려졌다. 당시 26세였던 여인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 코스에 도전하였으며 94일 만에 성공을 거둔다. 도전의 목적이 ‘버리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따라가 보자.
영화는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나 던진다. “개인적 상처에서 튕겨 나오면 무엇이 될까요?” 부랑자가 되고 말 것이라며. 어떻게도 수습할 수 없는 파탄 난 삶 앞에서 다른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세릴의 엄마 ‘바비’(로라 던 분)는 주정뱅이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남매를 등에 업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밑바닥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지만,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남매가 멋지게 성장한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나이 마흔다섯 살에 암으로 절명한다.
자기 전부랄 수 있는 엄마를 가슴에 묻은 세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분)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헤로인을 맞고, 아무 남자나 닥치는 대로 상대하고,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맨다. 어쩌다 한 남자를 만나는데, 행실이 탄로 나 이혼당한다. 그녀가 갈 길이 뻔해 보인다.
그런데 세릴이 뜻밖의 결정을 한다. PCT 종주에 나선 것이다. 극한의 도보여행지 라는 곳. 준비 과정에서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비척거리다 엎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상처에서 튕겨 나온 현실을 방증 한다. 출발이다. “버틸 수 없으면 내려가자.” 주문을 외우며. 첫날을 용케 버틴다. 걸은 길은 고작 11km. 녹초가 된 몸을 텐트에 부린다. 잠이 올 리 없다. 뒤척이다 아침을 맞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이 공포의 도가니다. 텐트 틈으로 야생동물 울음소리가 빨려 들어간다. 이어 거친 모레 바람이 들어가더니, 드넓은 평원의 온갖 두려움이 떼 지어 들어간다. 하늘에는 아름다운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눈을 뜰 수 없다.
이틀, 사흘…. 걸음 사이로 감미로운 곡 ‘엘 콘도 파사’가 흘러 들어간다. 노랫말의 의미가 깊다.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요. 못이 되기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요. 길거리가 되기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요.’
차츰 걸음이 안정되고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다. 반면 외로움은 더 커진다. 생각이 깊어진다. 기억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엄마 껴안고 잠들던 침대, 아빠의 주먹, 불량배가 된 남동생의 성난 얼굴…. 아픔은 남편 폴의 모습이 치솟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 임신하고 힘들어하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될 때는 몸부림을 친다.
발톱이 빠지고, 살갗이 짓무르더니 터지기 시작한다.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짐을 버려야 한다. 급기야 트레일 안내서까지 버리고, 애지중지하는 책까지도 읽은 부분은 모두 찢어 불태운다. 새로운 발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상처로 점철된 내면의 아픔도 이처럼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려니.
여행이 끝날 무렵 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우리도 잘 아는 노래 ‘홍하의 골짜기’를 불러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어쩌면 유산한 아이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릴이 맨땅에 엎드려 펑펑 운다. 서러움이 눈물로 흘러들어가 저 골짜기를 적실 것 같다. 산 그림자 드리워진 호수 위 ‘신의 다리’에 선다. 다리가 끝나는 곳에 표지판이 서 있다. STOP. 왜 END가 아닐까?
세릴은 말한다. ‘슬픔의 황야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 산악인 엄홍길도 《8000m 의 희망과 고독》이란 책에서 말했다. ‘극한상황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일 뿐, 거기서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차츰 무의식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상처는 고통을 통해 떠올리고 그 속에서 지워야 하는가 보다. 아무래도 나는 백두대간 남진(南進. 진부령에서 지리산)에 들어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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