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세 번, 네 번 보면서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한없는 것일까. 실재일까 허구일까. 프로이트는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에서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킬 뿐’이라고 하였는데….
영화는 칠레 산티아고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글로리아’라는 여인을 조명한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남매는 결혼하여 떨어져 산다. 여인이 홀로 사는 법은 단순하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라디오 듣다가 맥없이 웃고, 청소기 돌리다가 몸을 흔들어대고, 이웃집 고양이 불러들여 쓰다듬다 잠들고. 빈 들판에 서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엄습하면 싱글클럽에 가서 광적으로 춤을 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10여 년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꿈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해군 출신 노신사 ‘루돌프’(세르지오 헤르난데즈 분)다. 이혼 한 데다 놀이공원 사장으로 웬만큼 부도 축적했다. 중요한 것은 그 역시 외롭다는 것.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춤추고, 여행 다니고, 남자 놀이공원에 가서 페인트 총도 쏜다. 그런데 금방 살림을 차릴 것 같던 이들에게서 문제가 드러난다. 먼저 루돌프의 것을 보자. 이혼한 전처 그리고 아이들에게 얽매여 아무것도 자의적으로 하지 못한다. 여행지 호텔에서 가족의 전화를 받고 말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데이트 중 전화를 받으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해결방안을 제시하다 마땅치 않으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다음은 글로리아 쪽이다. 아들 생일 파티에 루돌프가 초대된다. 그곳에는 글로리아의 전남편이 젊은 부인과 함께 와있다. 글로리아는 전남편 내외에게 루돌프를 소개하고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자식들도 동화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모습을 본 루돌프는 또 말없이 자리를 뜬다.
어느 여행지에서 둘은 쿠바로 열흘 간 여행가기로 합의한다. “오늘 만큼은 핸드폰 전원을 끕시다.” 글로리아는 루돌프의 핸드폰을 탕 그릇에 담가 버린다. 황급히 물기를 제거하는 루돌프의 복잡한 표정은 형언하기 어렵다. 억지로 하는 말, “당신 판단이 맞아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 아니잖아요.” 글로리아의 말이 이어진다. “당신도 당신 인생 살아야지요.” 둘은 드디어 그들만의 세계로 날아갈 듯 보인다. 그러나 그날 밤 루돌프는 다시 도망치듯 사라진다.
미친 듯이 루돌프를 찾는 글로리아. 오락실과 나이트클럽을 헤집다가 낯선 남자들과 섞여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해변 모레사장이다. 지친 영혼, 쓰레기처럼 내박쳐진 육신, 절망이 바다보다 깊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호텔을 향해 발을 뗀다. 한발 또 한발, 시름이 깊으니 발자국 또한 깊다.
영화에서 두 개의 욕망을 본다. 하나는 글로리아의 가식 없는 욕망이다. 세상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그녀는 솔직하다. 여생을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데 진지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다른 하나는 루돌프의 굴절된 욕망이다. 자신의 사랑이 전처와 아이들에 의해 왜곡된다. 아니 싱글클럽에서 춤추는 뭇 독신남의 진정성 없는 그것의 대리자 역할인지도 모른다.
욕망의 모방 그리고 비 자발성.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그레지라르’가 말하는 ‘욕망의 삼각형 이론’과 닿아 있다. ‘개인은 스스로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지배받으며 그것이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게 된다.’라는.
글로리아는 선물 받은 서바이벌 총을 꺼내 들고 루돌프에게 달려간다. 놀라는 루돌프에게 다짜고짜 총을 쏜다. 페인트 볼이 터져 몸이 진녹색으로 물든다. 루돌프가 맨바닥에 쓰러져 뒹군다. 다시 싱글클럽으로 돌아가는 글로리아. 신명 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양손을 치켜들고 절규한다. ‘로라 블래니건’이 부른 올드 팝 <글로리아> 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노랫말도 구슬프다. ‘내 가슴을 울리는 눈 속에서 나를 녹여줘….’ 글로리아>
엊그제 강연장에서 만난 경북대학교 김두식 교수는 ‘정직하게 욕망을 분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냥꾼이 되고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욕망은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것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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