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1000만명이 넘게 찾는다는 전주 한옥마을. 그 건너편 광장에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천막 분향소가 눈에 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희생자를 위한 작은 추모공간이다. 2014년 7월, 46일간 단식투쟁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부르짖은 정읍출신의 유가족 김영오씨. 그가 서울 광화문 뙤약볕 아래서 목숨 건 투쟁을 벌인 직후 전국 곳곳에 천막 분향소가 세워졌다. 노란리본 물결이 국민들 가슴마다 끝없이 이어지며 그해 11월 세월호 특별법이 끝맺음 됐다. 이 분향소는 뜻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세월호 6주기는 4·15총선 다음 날이라 묻힐 뻔 했으나 차명진 후보 막말이 세월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유가족 폄훼논란은 차치하고 그 직후 세월호 관련뉴스가 잇따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유민아빠’김영오씨를 비롯한 유가족을 세월호 참사후 박근혜 정부가 불법사찰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한술 더떠 세월호 특조위 조사도 조직적으로 방해한 증거가 추가로 발견돼 수사에 들어갔다. 6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커녕 뭐 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어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최근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유민아빠’김영오씨의 근황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그가 고향이 아닌 광주로 거처를 옮긴 이유가 궁금했는데 사연이 밝혀졌다. 대인기피증이 심해 술 없인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던 안산에서조차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비웃는 것 같아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다 세월호 추모공원 건립이 혐오시설이라고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런 절망적인 현실에서 손을 잡아준 이가 세월호 투쟁때 가장 뜨겁게 반겨주었던 5·18성지 광주 시민들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런 가운데 기자협회도 세월호 참사 6년만에 유족들에게‘보도 참사’를 공식 사과했다. 지난 달 13일 기자협회 회장단은 피해자 가족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해 세월호 유족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6년전 세월호‘보도참사’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통해 거듭 태어날 것을 다짐했다. 사실확인은 뒷전인 채 정부의 잘못된 발표만을 받아썼다고 언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세월호의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가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더 나아가 지금도 유언비어와 괴담들이 마치 사실인양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베일에 가려진 진상규명 만이 세월호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내는 첫 단추다.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새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295명 사망자 얼굴과 이름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천막 분향소 한쪽 벽면에 이렇게 쓰여 있다.“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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