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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정신머리- 임석재

임석재
임석재

이게 어디 갔지? 분명히 수첩과 함께 샤프연필과 볼펜을 넣었는데 연필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선 볼펜으로 조경업자와의 상담내용과 조감도를 그려 놓았다. 내가 찾는 샤프연필은 본체가 노란 플라스틱으로 두껍고 견고하다. 그래서 들고 쓸 때는 묵직한 느낌이 나서 즐겨 쓰는 필기도구이다.

또한 쓰고 지우기도 쉽고 부드럽고 진하지 않은 색깔이 거부감을 주지 않아 십여 년 넘게 써온 것이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가방 속에 숨었나? 가방 속의 물건을 다 꺼내고 찾아보아도 없다. 그렇다면 처음에 챙겨 넣으면서 바닥에 흘린 것인가, 아니면 산소 입구에서 수첩을 꺼내면서 빠졌을까?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 실수가 더 잦아졌다. 지난 봄에는 그동안 오래 써온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맘먹고 좋은 것으로 장만한 것이라 금전적인 손실도 크지만 어디서 잃어버렸는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였다. 운동을 하면서 벗었다가 다시 쓰고 물리치료실에 와서 양복의 안주머니에 넣어 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았다.

다시 되짚어 차 속을 찾아보고 그날의 족적을 되새기며 추적을 해 보아도 허사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늘 끼고 다니던 반지가 없는 것이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손가락이 허전하여 바라보니 왼손 약지에 반지가 없어졌다. 혹시 지갑 속에 두었나 하고 안방 탁자 위 지갑을 급히 찾아보았다.

그 지갑은 아내가 헝겊으로 만들어준 손지갑이다. 검은색 테두리에 갈색과 노란색을 한 줄씩 넣어서 바느질로 꿰맨 퀼트 작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죽으로 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만 나는 아내의 사랑어린 이 지갑을 애지중지 한다. 돈을 지불하러 지갑을 꺼내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지갑 속 종이봉투 속에서 돈을 꺼내면 실소를 짓는 사람도 있다.

쌈지 같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 깔끔을 떤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손지갑의 안쪽에는 옷핀을 꽂아놓았다. 이 옷핀은 쓸모가 많다. 반지도 끼지 않을 때는 이 옷핀에 꿰어 놓았었다. 손이 붓거나 일을 할 때는 반지를 빼서 두어야 하는데 잃어버릴까 염려되어 궁리한 것이다. 지갑 속의 카드며 명함 모두를 꺼내 보아도 없다.

아내까지 동원해서 탁자의 서랍 속이며, 내가 신문이나 TV를 볼 때에 자주 앉는 소파의 방석까지 들치며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내 나름 언제나 잃어버리지 않으려 세심한 주의를 하였건만 이런 일이생기고 말았다. 아깝고 서운하고 ‘아, 이렇게 정신이 없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에 더 가슴이 쓰렸다.

아내는 어딘가에 잘 두었지만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였다. 하지만 손에서 반지를 언제 뺀 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다니 정녕 이것이 일종의 치매기가 아닌가 걱정도 된다. 그러다가 화장대 옆의 반지 상자를 보았다.

<나의 반지 함, 잊어버리지 말자> 볼펜으로 또렷하게 쓴 글자들도 내가 한심한 듯 바라본다. 아, 나는 왜 이리 정신이 없을까? 내가 미웁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소멸되고 희석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인데도 ‘내 탓이오.’하고 가슴 칠 수밖에 없는 내가 싫다. /임석재 수필가

임석재 수필가는 김제금산초등학교에서 정년하고 대한 문학으로 등단을 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 수필 회원이며 현재 아람수필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수필집 <나, 또 하나의> 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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