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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사랑

정석곤

정석곤 씨
정석곤 씨

어릴 적에는 생활주변 자연물로 만든 우리의 악기들이 있었다. 풀잎을 뜯어 입술에 대고 불어 연주하던 풀피리, 보릿대로 만든 보리피리, 버드나무 껍질 대롱에 서를 만들어 부는 호뜨기 등이 있었다. 겨우 단순한 고저장단 소리를 내는 정도라 노래를 연주한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쏘다니며 불고 다녔다.

몇 년전에는 문화예술교실 하모니카반에 등록을 하고 하모니카도 샀다. 20여 명의 수강생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면 3층 학습실에 모여 2시간 넘게 연습했다. 주로 하모니카 기초 연주법인 다장조의 음계를 따라 들숨과 날숨을 익히고 다장조 동요와 가곡 그리고 가요를 연습했다.

11월 초에는 중강당에서 우리만의 ‘음악으로 즐기는 100세 인생 소소한 음악회’도 열었다. 연말에는 전북교육문화회관에서 송년의 날 큰 잔치를 벌였는데, ‘갑돌이와 갑순이’ ‘서울의 찬가’를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음과 저음의 음계가 서툴지만 하모니카를 연주한다는 자체가 기뻤다.

계속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어 노인복지관 3층 소망반에서 활동하는 ‘하모사랑 동아리’에 갔다. 책상에는 하모니카가 6개씩 놓여 있고, 보면대에는 두툼한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회원 20여 명이 바른 자세로 앉아서 연주를 막 시작했다. 옆 반주기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며 앞 모니터는 악보와 계이름이 나오고, 파란 세로막대는 하모니카가 연주할 음의 노랫말을 가리키며 부지런히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사는 컴퓨터에 곡명을 입력하더니 왼손은 마이크를 잡고 오른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며 지도를 하는 베테랑이었다. 수업 분위기와 연주 실력에 주눅이 들어 부풀었던 기대가 어긋났다. 내 연주 실력은 유치원 수준인데 동아리 회원들은 모두 대학생 수준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없다. 그래서 악기 연주를 잘하는 이들을 보면 부럽고 내가 작아 보인다. 대학 입학시험에 음악이론과 실기가 있었다. 그래서 3학년이 되어서야 풍금을 처음 만져보았다.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밤 늦게까지 혼자서 교재만 보고, ‘똑같아요’ ‘학교 종’ 등을 독학했으나 시험 당일은 전혀 쳐보지 않은 지정곡을 연주했었다.

초임발령을 받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었다. 순창 섬진강 상류 건너에서 근무하는 동창은 여러 악기연주에 재능이 많아 아이들을 잘 가르쳤다. 그래서 그에게 하모니카를 배워볼 욕심으로 가서 모니카를 빌려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한 번도 연습을 못한 채 잃어버렸다. 그 뒤에도 하모니카를 배우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새 하모니카를 샀다. 그 하모니카는 지금도 긴 세월 동안 내 책상 서랍을 지키고 있다.

내 귀에는 지금도 ‘하모사랑 동아리’를 찾아갔을 때 들었던 말이 들리고 있다. 강사는 개인 교습을 받아야 따라갈 수 있다고 했다. 반장은 그냥 들어와도 연습하면 따라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분의 말 중 어느 한쪽을 택했더라면 지금쯤 하모니카 연주 실력은 제법 늘었을 것이다.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새가 모이쪼듯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정석곤

 

 

△정석곤은 관촌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하여 <대한문학> 수필 등단했다.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풋밤송이의 기지개> 등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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