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말을 하고 살기 때문에 때로는 시끄럽다. 아무렇지 않게 입들끼리 넘나드는 말들은 잡음이 되지만 때로는 화음이 되어 변덕이다. 사실 화자의 즐거움과 청자의 괴로움이 서로 다르다.
며칠 전, 우리 동네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전주에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식재료가 깔끔하고 간이 입에 맞아 시나브로 정이 들어가던 중이었는데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입간판을 세우고 있는 주인인 듯한 아저씨에게 여기 식당 어디 갔냐고 묻자 뚱한 눈길만 보탤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간 우리 마을에서 가뭇없이 사라진 가게만 해도 벌써 열 곳이 넘는다. 그에 반해 대기업의 프랜차이즈는 우후죽순처럼 번창하고 있다. 향긋한 국화차의 전통찻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피자집이 들어와 동네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재래시장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와 순대와 옥수수까지 팔고 있다. 신문이나 미디어에서는 매일 같이 대기업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고 성토하지만, 친구의 세탁소도 언제 문을 닫을지 걱정이 앞선다.
걱정스런 것은 TV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고 신조를 쏟아내야 예능 프로 시청률 1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 나무는 고목일 때 불 때기가 좋고, 책은 옛날 것이 좋은 것이니 많이 읽어야 하며 친구도 죽마고우가 정답고 좋으며 술도 묵혀둔 술이 맛이 있다 했는데 이러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덕목으로 살다가 빠르게 변하는 세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현재의 삶은 얼마나 새로움을 체험하려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제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단순히 머리로만 익히는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따뜻한 지식(知識)과 체험(體驗) 그리고 인간애(人間愛)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말은 소통과 화합의 수단이다. 말은 진흙 속에 연꽃처럼 신중함을 품고 느림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살아가며‘입만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는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화려한 말은 우리를 짜증 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한다. 신이 아닌 이상 내 마음과 다르게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말 실수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나라에 위정자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가는 정제된 언어 구사와 신의가 있어야 한다. 그네들이 말만 앞세우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계속 뒷걸음질만 칠 것이다.
장마가 지나간 황방산은 더없이 푸르고 청신하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고 있는 꽃과 나무들이 제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는 다툼이 없고 장미꽃은 족두리 꽃을 깔보지 않는다. 함께 하지 않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니 큰 숲을 이루고 푸른 산이 된다.
나는 오늘 무슨 말을 했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나. 택시기사님의 말뜻은? 친구의 하소연은…. 또 나는 그네들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었는가. 제일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의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걸까. 언제 어디서든 누구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말만 늘어놓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말은 점점 말이 아닌 다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거리를 구르는 낙엽이거나 휴지통 속에 담긴 쓰레기거나….
박경숙 수필가는 <계간수필>에서 수필 천료로 등단하였으며 전북 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전북수필문학상, 산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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