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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시간을 이어 붙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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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자 망해사는 더 이상 바다와 살 수 없게 되었다. 망해사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망해사(望海寺)를 '망해사(亡海寺)'로 불렀다. 망해사 앞바다 물고기들도 바다를 따라 떠나 인연이 단절되었다. 어느 날, 자그만 풀들이 망해사 앞바다에 자라기 시작했다.

점점 자라더니 커다란 '모래고래' 한 마리가 푸른 물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단절된 시간을 이어 붙이는 바람의 이마가 젖어있었다. '모래고래'가 제 등을 헐어 숲을 키우는 동안, 그 숲이 날마다 우거지는 동안, 사랑을 놓친 낙타의 영혼은 빠르게 사막이 되어가고 있었다. 낙타는 돌아오지 않는 뿔을 기다리고 있었다.

뿔을 돌려주지 않고 제 것이라고 호도하는 사슴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낙타의 끼니는 거친 모래 한 그릇과 날것으로 올라온 가시투성이의 하르간 한 접시였다. 오히려 낙타가 뉘우침을 강요받기도 했으나 삶의 여정에서 누구나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 결론짓기로 했다.

몽골에 갔을 때였다. 새벽에 일어나 사막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네발로 기어서 겨우 모래언덕에 올랐다. 걷고 눕다가 가만히 오래 앉아 있었다. 사막에서 묻혀온 모래를 털어내느라 게르 문밖에서 부산을 떨고 있던 때였다. 지나가던 통역이 주의말을 했다.

 '집 밖에서는 머리를 빗지 마세요' 무슨 말인지 몰라 재차 물었다. 그러자 통역은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새들의 발목에 감기면 족쇄가 될 수도 있어요' 라고 짧게 대답하더니 제 거처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언어가 거느린 허공이 그렇게 깊게 울리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다만 모래언덕에 뉘었던 머리카락을 털고 머리를 빗어 넘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평선을  거뜬히 들어 올려 창공을 누비는 새들의 발목에 족쇄가 될 수 있단다.

발목을 감는다는 것은 새의 날개를 꺾는 것이다. 그 새를 세상 밖으로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구나. 그가 나를 절벽으로 밀어버린 것도, 진물이 흐르는 내 상처도 상대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구나. 삽시간에 무언가가 쭉 빠져나갔다. 신념하나가 빈 자루처럼 허물어졌다. 모래더미 곳곳에서는 이름 모를 짐승들의 백골이 하얗게 빛났다.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장엄하기까지 했다. 두려움에 도망치려 몇 번이고 벗어던졌던 도마뱀의 허물도 순명하게 사막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몸통에서 잘려 나온 나뭇가지도 고요히 삭아가고 있었다. 라싸의 포탈라궁을 향해 가는 수행자 같았다. 필사적으로 무슨 말인가를 남기려는 전쟁터의 장수 같기도 했다. 나뭇가지가 모래더미에 온몸으로 쓰는 문장을 읽는다. 뼈만 추려낸 그림문자가 낙타의 마음속 폐허를 흔들었다. 사막화가 진행되는 낙타들의 마음이 나뭇가지의 푸른 전언을 새겨들었다.

신념이란 무엇일까? 서로의 관계 사이에 절대적인 교집합은 존재하는 걸까? 라싸로 가는 길은 결국은 신념을 털어내는 길이었다. 귀의하는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귀의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찌든 신념을 털어내는 일이 힘든 일이었다. 아침 햇살이 낙타 이마를 겨냥하고 있었다. 라싸로 가는 수행자들의 이마처럼 핏물이 붉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돌아보니, 좌표 설정을 위해 임의로 찍은 점 하나가 나를 끌고 다니고, 끝내 나의 신이 되었던 과거가 있다. 그 좌표를 생의 목표로 착각한 나는 늘 누군가와 부딪혔고 무언가에 골몰했다. 임의의 점은 아무리 오래 묵혀도 임의일 뿐인데 생의 절대적인 목표로 오독 했기 때문일까? 나는 관계에서도 자주 미끄러졌다. 다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음 마음은 쉽게 얼굴을 바꾸었다. 악수했던 촉감과 외면했던 기억을 데리고 모래고래가 키우는 검은 숲으로 갔다.

낙타가 다가가는 검은 숲에서 물소리가, 물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김영은 <자유문학>에서 시로 등단했다. 김제예총 회장, 전북예총 부회장, 전북문협 부회장을 거쳐 현재 전북문인협회 회장으로 있으며 수필집 <잘가요 어리광> <쥐코밥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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