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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오디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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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섭

아직도 봄인데도 초여름으로 치닫는지 이른 더위가 피어난다. 아파트 철책 담장에 널브러지게 핀 개량종 장미가 요염한 미소로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놀러 가는 건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코로나19도 다소 진정되었고, 마스크 착용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되니 살 것 같다. 이렇게 모임도 무시로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가는 곳은 정읍에 자리한 농촌 마을이었다.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 숲속에 집을 짓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사는 지인이 우리 일행을 초대했다. 승용차가 전주를 출발해서 국도를 따라 교외로 삐지니 신록의 계절이라서 산도 가로수도 녹음이 짙고 풋풋한 내음이 상쾌하고 싱그럽다.

한참 신나게 달리니 들녘이 나오고 낮은 야산에 자리한 마을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동리 이름이 대산리라서 큰 산 밑에 있을까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좁다란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니 얕은 산자락 숲속에 지은 아담한 집과 넓은 마당이 나왔다. 이름하여 '행복제작소'란다.

마당 주위엔 각종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주차장으로도 쓰고, 캠핑 장소로 이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이라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야외 취사 설도 갖춰 있고, 불판과 장작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내 짐작이 들어맞은 거다. 의자에 앉아 모처럼 느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데, 동료 하나가 나를 부른다.

 '오디'가 익어 한창이란다. 귀가 번쩍 띄어 가보니 마당 한쪽에 뽕나무가 몇 그루 있고, 검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얼마 만인가! 20여 년도 넘지 싶다. 대수술의 후유증을 겪으면서부터 시골가는 일들이 멀어진 탓이다. 하나씩 따먹으니 양이 차지않기에 한주먹씩 따 서 털어 넣어도 시원찮았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따먹었더니 이러다간 점심을 못 먹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한 내 입술이 흡혈귀 같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거울 속의 나는 영락없는 '쥐 잡아 먹은 고양이 입처럼 검붉었다. 완전 동심에 젖어본 순간이었다.

문득 7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일요일 오후에 여느 때처럼 백구를 데리고 백화산 자락으로 놀러를 나갔다. 앞서가던 백구가 짖어대 굽어보니 어린티를 갓 벗은 멧돼지와 싸움이 붙었는데, 멧돼지가 개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나는 순간 옆에 있는 오디나무로 얼른 올라갔다. 그랬더니 멧돼지가 오디나무를 떠받는 바람에 하마터면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휘청'하고 나무가 흔들리니 생 땀이 났고 정신이 아찔했다. 그때 개가 멧돼지 목을 물고서 뒹굴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멧돼지가 줄행랑을  쳐 싸움은 끝이 났다.

그제서야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난 백구를 끌어안고 눈물 바람을 했었다. 개는 영특하고 의리가 있어 주인을 버리고 도망치는 법이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걸 이후에도 본적이 있다. 비록 지금은 개를 키우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때, 산을 내려오기 전 검게 익은 오디를 한참 동안 따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던 일은 평생 못 잊고 산다.

오랜만에 검게 잘 익은 오디를 따먹으며 지난날의 추억도 돌아보는 행복한 시간을 대산리에 자리한 행복제작소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문광섭 수필가는 2014년 대한문학 여름호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표현문학, 가톨릭문우회, 전주문인협회 회원과 전북수필,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 이사, 꽃밭정이수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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