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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고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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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나의 고향은 김제다. 어느 고을처럼 박사를 많이 배출했거나 그렇게 뭐 하나 제대로 내놓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 고향이 심산계곡은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의 지평선을 보며 호연지기를 키우며 자라왔다. 역사적인 비골제, 새만금 등 많은 보물이 있지만 어느 누가 인내를 가지고 시시콜콜 남의 동네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접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내 고향의 빛과 그림자를 내보이려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있다.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경우에 따라 악이 양을 구축하는 모순도 존재한다.

1997년 어느 날 부산 교도소에서 도둑놈 하나가 탈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영화에나 나올 법한 탈옥을 했다. 경찰은 처음 500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으나 잡히지 않자 5000만 원으로 인상했다. 당시 기록적인 이 현상금은 모두가 욕심을 낼 만한 거금이었다.

그 도둑놈이 바로 김제 금구면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신창원이다. 그런데 옛날 시골은 가난했으며 술 마시고, 노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삼박자를 갖추었다. 신창원도 돈 잃고 홧술에 취한 아버지로부터 복날 개 맞듯이 맞고 자랐을 것이다. 배가 고프니 닭서리를 했을 것이고 이 발단으로 전과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닭이나 과일 서리는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신창원은 도둑놈의 기질이 풍부했던 것 같다. 도를 넘는 절도 행위를 어느 누가 고발하지 않았겠는가?

필자도 어려서 가끔 무지막지하게 매타작을 당하며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술도 안 드시고 노름도 안 하셨다. 그런데 내가 쌀 퍼다 술 마시고, 학교는 안 가고 극장에 앉아있다가 정학당하고, 싸우다 입원시켜 놓기도 했으니 아무리 인내심 많은 목사라도 한계가 있을 터라 맞아도 싸다. 그래서 필자는 반항하지 않고 사랑의 매로 알고 겸허히 수용하며 반성해서 도둑놈의 길은 가지 않았다.

어쨌든 신창원이 709일 동안 홍길동 같은 도피 행각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고 6번에 걸쳐 경찰과 마주쳐 탈출한 장면은 국민들을 흥분시켰으며 탈옥한 도둑놈을 응원하는 팬클럽까지 생길 지경이었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추적 도중 발견한 일기장에서 고아원에 200여만원을 기탁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번번이 눈앞에서 놓친 경찰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심지어 신출경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도둑놈 하나가 김제라는 지명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셈이다. 어쩌면 부끄러운 흑역사이기도 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이제 빛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는 그 유명한 고름 우유 파동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성진 목장을 운영하다가 1973년에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하여 기존 고온 살균 방식 기법을 저온 살균 방식으로 바꾸고 고름 성분이란 화두를 기존 우유업계에 던져 태풍을 몰고 왔다. 항간에서는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그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우유 산업은 놀라운 혁신을 가져와 국민들 건강을 증진시켰다.

특히 우리 교육계에 놀라운 그의 업적은 1993년 민족사관학교를 개교하여 최고의 선생님을 초빙하여 전액 무료로 최고의 인재를 양성했다는 일이다. 그가 바로 김제 만경 출신 최명재 회장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를 이끌어 나가다가 2022년 95세로 영면하였다. 

수필의 덕목은 '겸손'이라 배웠다. 그래서 도둑놈도 하나 끼워 넣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조건 수필가는  '한국 창작 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수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행촌 수필, 꽃밭정이 수필, 은빛 수필, 전북펜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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