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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김해자 외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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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표지/사진=교보문고 제공

여기 펜이 있습니다. 4+1입니다. 샤프심과 빨강, 초록, 파랑, 검정 펜이 들어있어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찾아봅니다. 플라스틱, 금속, 스테인리스강, 염료, 벤질 알코올, 지방산, 흑연, 햇빛과 달빛의 속삭임, 바람의 귀 기울임 등등 헤아릴 수 없군요. 어느 노동자의 땀과 숨결이 섞였을 수도 있어요. 

걷는사람 시인선 100호 기념 시집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는 98명의 시를 한 편씩 가리어 뽑았어요. 제목은 문신의 시 ‘시 읽는 눈이 별빛처럼 빛나기를’에서 가져왔고요. 생각은 힘이 셉니다. 마을 사진을 찍는 드론에 탈 수 있어요. 빈틈이 있어 많아진 물이 흐릅니다, 적으나 정밀한 불이 타닥타닥 무얼 짓고요. 강하고 견고한 바위가 새소리처럼 질문을 던지기도 하죠. 흩어져 있지만 실한 흙은 콧노래 부릅니다. 두 최고봉을 봅니다.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나무. 다 달라, 하나하나가 시입니다. 

가지가 굽었거나 썩었다고 사람과 나무를 비난할 순 없습니다. 칭찬할 걸 찾아 눈과 귀를 엽니다. 그들이 고래처럼 펄럭펄럭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되어봅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기다리며 한자리를 지켜온 그들은 자신들의 나이테가 읽을거리가 되는지 어떤지 자책에 떨지 모릅니다. 이름을 부릅니다. 누가 지어주었나, 어떤 (무)의미가 있나, 물어봅니다. 그들에게 코를 기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배달하는 그들의 내음이 올라옵니다. 

펜 하나 눌러 시 하나 펼쳐 봅니다. 경제, 과학기술, 외교, 지역 균형, 문화의 심들 하나씩 눌러 민주와 정의를 쓰고 싶듯. “길은 늘 발끝에서 어린 양처럼 멈춰 서곤 했고/ 그래서 양이 잃어버린 것은 길이 아니라 동행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며”(송주성 ‘막북漠北에 가서’ 중). “소가 나를 찾아온 밤엔/ 마음이 잉어를 잡아다 넣어 둔 항아리처럼/ 일렁거려 잘 수가 없네”(송진권 ‘소 꿈’ 중).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고중식 ‘초식동물’ 중). “갓 쌓인 눈에 발이 잠기는 순간까지만/ 바래다 줘”(박진이 ‘바래다 줄게’ 중).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안상학 ‘몽골에서 쓰는 편지’ 중). “내놓고 치라고 슬픔이 밖에 나와 있는 걸 안다 마음에 두었던 색을/ 허리에 매고 나아갈 쪽 반대를 치겠다”(졸시 ‘꽃멸치’ 중).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옆에 커피잔이 놓여 있으면 덜 심심하다/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라고 한다”(하상만 ‘잔’ 중). “나는 누구의 대신일까/ 누가 나 대신 황야를 걸어 노을 속으로 심부름 갔을까”(김안녕 ‘뼈 심부름’ 중). 

시 읽는 일은 낯설지만 본 듯한 곳으로 여행을 가게 합니다. 두근대는 심장을 가슴 밖에 내게 해요.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의 눈을 반짝이게 합니다. 시 속엔 무엇이 있을까요? 경계 없는 유일한 탈것이라는 상상이 기다리고 있어요. 시인이 오래 담가두었던 언어들이 진한 향을 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어요. 내 아픔과 등을 기댈 님의 아픔이 갓 지은 밥풀 냄새를 풍기고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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