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단의 거대한 산이자 전북 문단의 원로로 존경받는 정양 시인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1942년 김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천정을 보며’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등단 후 전북에서 활동하며 이병천, 박남준, 안도현, 이병초, 김병용, 유강희, 정동철, 박성우 등 많은 문인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유신독재 시절 ‘끝’이라는 시를 쓴 뒤 절필했고 참담했던 5공 시절에는 동료 문인들과 무크지 <민족문학>을 기획했다. 전북작가회의를 창설해 후배 문인들을 지도했고, 안도현·김용택 시인 등 문인 20여 명과 함께 지역 출판사 ‘모악’을 설립해 문학의 다양성과 출판의 지속성을 실현했다.
고인은 등단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까마귀 떼>(1980), <수수깡을 씹으며>(1984), <빈집의 꿈>(1993),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1997),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2005), <철들 무렵>(2009), <헛디디며 헛짚으며>(2016), <암시랑토 앙케>(2023) 등의 시집을 펴냈다.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2009), <세월이 보이는 길>(2012)과 연구서·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2001) 등도 내놨다.
고인의 시는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시대의 모순과 사회의 불의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진정성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서사성을 가진 시편들에서는 전북 방언을 과감히 활용해 토속적이고 구술적인 세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백석문학상, 구상문학상, 모악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우석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빈소는 연세대학교 용인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6월 2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용인 평온의 숲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임정순 씨와 아들 정범 씨, 딸 정리경 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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