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의원, 4년 전에 22명 무투표 당선 ‘역대 최다’ 기록 올해도 민주당 후보 독주, 경쟁후보 없는 선거구 곳곳 관측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전북의 투표소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전북 광역의원 선거구 36곳 가운데 22곳(68.75%)에서 투표함이 끝내 열리지 않았다. 유권자가 투표지를 받아들기도 전에 당선자가 결정되는 ‘무투표 당선’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율 평균이 13.5%였던 점을 감안하면 전북의 상황은 유난히 두드러졌다.
4년이 흐른 지금, 6·3 지방선거를 앞둔 전북 정치 지형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우세 속에 정당 간 경쟁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유권자보다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정치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등에 따르면 제9회 지방선거 후보자 접수 결과 전북 상당수 지역에서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못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완주군 제1선거구에서는 현직 윤수봉 도의원이 단독 신청하면서 재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력 경쟁자였던 유의식 완주군의회 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다. 완주군 제2선거구 역시 유력했던 경쟁 후보가 민주당 전북도당 자격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서 권요안 도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커졌다.
고창군 제1선거구도 현직 김성수 도의원 외에는 도전자가 없는 상태다. 순창군에서는 야권의 강자로 꼽히던 정의당 오은미 의원이 군수 선거로 선회하면서 광역의원 선거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다. 전주시 10개 선거구와 익산 4개 선거구, 군산 3개 선거구 역시 민주당 후보 외에 뚜렷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 ‘1당 독식’ 구도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 같은 ‘무투표 당선’ 현상은 단순한 정당 지지율 격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도적 문제 역시 경쟁 실종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인구 편차 기준 위반을 이유로 장수군 도의원 선거구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아직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가 길어질수록 자본과 조직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들은 출마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 반면 지역 조직을 장악한 현역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결국 국회의 선거제도 정비 지연이 현역 중심의 기득권 구조를 강화하고 유권자의 선택권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는 경쟁 없는 선거가 지방의회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투표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정 활동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주민보다 공천권을 쥔 정치권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회 지방선거 이후 전북 일부 무투표 당선 의원들은 조례 발의나 행정사무감사 질의 등 의정 활동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무임승차’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창엽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소선거구제가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무투표 당선”이라며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이 치러진 지 1년 사이에 열리는 만큼 민심과 여론의 향배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도 후보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무투표 당선 지역에서도 유권자의 주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대안으로는 무투표 당선 예정자에 대해 유권자가 찬반을 묻는 ‘사후 찬반 투표’ 제도와 한 선거구에서 2~3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무투표 당선 예정자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반대가 나올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하거나 재선거를 실시해 의원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하자는 취지다. 또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소수 정당이나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자연스러운 경쟁 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구 획정 지연과 정당 경쟁 실종이 맞물리면서 전북의 이번 지방선거는 시작도 전에 ‘투표권 없는 선거’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유권자가 선거의 주인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남지 않도록 정치권의 제도 개선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육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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