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의 무대는 조분조분, 속삭이듯 건너오는 말로 시작한다. 들릴 듯 말 듯 저렇게 조용한 목소리가 일단 노래를 시작하면 삶의 사소한 뉘앙스를 들려주는 잔잔한 독백에서 돌연한 급전직하까지 다양한 높낮이를 오르내리며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전성진)과 전주MBC(대표 원만식)가 지난 18일 모악당에서 마련한 나윤선 크리스마스 콘서트. 이번 특별 무대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몇 곡 있을 줄은 알았지만 다섯 곡은 좀 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윤선이었다. 그의 대표곡이라 할 ‘Momento Magico’가 나오자 무대는 순간 끓어올랐다. 나윤선의 현란한 스캣은 여러 곡에서 관철되지만 특히 이 곡은 스캣 자체였다. 음악을 몸으로 드러낸다고 할까. 가사가 아닌 의미 없는 음절을 자기 맘 내키는 대로 뱉어내며 언어 바깥의 언어로 색다른 진경을 드러내는 스캣 창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높이와 속도, 감정을 치고 어르는 선율의 진폭이 매번 새롭다.
나윤선의 음색과 창법을 두고 샹송 콩쿠르 입상으로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재즈를 배운 이력을 들어 프랑스적 느낌이 난다고들 한다. 나윤선이 구사하는 스캣의 매력, 그의 독특한 음색은 미국적인 분위기의 재즈 보다는 정겹게 떠드는 수다인 샹송과 프렌치 팝의 분위기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윤선이 한 인터뷰에서 “저는 음악의 장르에 구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항상 제 안에 음악적 다양성을 갖고자 노력한다. 좋은 음악, 감동을 주는 음악이 있을 뿐이다”고 했듯이, 그의 음악은 재즈라는 규정 바깥에 있다.
이번 레퍼토리에는 없었으나 나윤선이 부른 ‘초우’나 ‘아리랑’, ‘사의 찬미’를 듣노라면 음악은 연주자에 따라 악보 너머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번 연주에서 가장 감동을 준 곡도 사실은 마지막 앵콜곡 ‘사노라면’이었다. 그 노래를 부를 때 무대 뒤편은 별빛 가득한 천공으로 바뀌었다. 사위가 더없이 조용한 가운데 오직 스스로 연주하는 오르골 하나에만 기대어 나윤선은 노래했다. 사는 일에 가득한 물기와 끝내 놓을 수 없는 희망을 그토록 맑고 깊은 목소리로 붙들어 주다니.
인간의 목소리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것을 확인한 밤이었다. 나윤선은 눈물 글썽한 눈으로 노래했고, 나는 귓속 가득 물기로 출렁거렸다.
이재규(작가· ‘작가의 방’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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