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열정과 판단력이라는 두 연장을 가지고 송판에 못으로 구멍을 내는 일이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작가이자 명연설가로,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이름을 전하고 있는 세네카가 말하는 ‘정치’다. 짧은 문장이지만 곱씹을수록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절창(絶唱)이다.
정치에 필요한 연장들은 물론 열정과 판단력 외에도 많이 있다. 지식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인덕도 있어야 하며, 건강한 신체나 적당한(?) 재물도 필요할 것이다. 때로는 간교한 책략을 써야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네카는 열정과 판단력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으로 꼽았다.
‘못을 박는다’가 아니라 ‘못으로 구멍을 낸다’는 표현도 절묘하다. 비교적 무른 것이 송판이라지만, 못을 이용하여 나무판자에 구멍을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작정 세게 내리쳐서는 못이 송판에 박혀 움직일 수 없게 될 것이고, 더 큰 힘을 가했다가는 송판이 쩍 갈라져 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열정’은 어쩌면 끈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네카 관점에서 보면 한국정치는 열정도 없고 판단력도 부족하다. 핵심 연장도 없이 못질하는 시늉만 내는 어설픈 사이비판이다. 정치인이 최고의 불신 대상이 되고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동네북이 된 지도 오래다. IMF위기의 광풍과 한파에 시달리며 온 나라와 국민이 개혁에 매진할 때, 아랑곳하지 않고 방탄국회다 야당탄압이다 하며 이전투구 정쟁만 벌이던 자들이다.
이런 정치 덕분에 우리는 다시 위기의 파도가 몰려드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열정과 판단력이 결여된 정치가 나라와 국민을 위기로 몰아가는 셈이다. 이런 무능한 정치에 한국號의 조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이 서글플 뿐이니, 실로 정치의 위기, 국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정치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다. IMF위기의 진정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와 국민이 쪽박 찰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금을 통틀어 탁월한 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과 국민을 현실 위에서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구사했다. 고상한 이상주의에 도취되지도 않고, 지도자 개인의 취향에 치우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한 길,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길로 나갔을 뿐이다. 문제는 그 길이 어느 길인지를 모를 때 발생한다.
어느 지도자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며 앞서 갔지만, 대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갔다. 협곡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거나 미로에 빠져 길을 잃고, 아니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이들도 많았다. 역사는 이들을 실패한 리더십이라 부른다.
리더십의 위기는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낳는다. 지금 우리에게 팽배한 바람 가운데 하나가 성공한 정치,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든 아니면 경제나 비정치 영역이든 관계없다. 어느 분야에서든,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길로 이끄는 리더십이면 된다.
다시 세네카로 돌아가면, 송판을 깨뜨리거나 못을 휘어버리지 않은 채 송판에 구멍을 낼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한다. 성공한 리더십의 부재야말로 우리가 처한 가장 본질적인 위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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