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많은 한국사람들은 한국대표팀의 16강 진입을 염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한번도 이루지 못한 첫 승만 올려도 다행이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것도 강력한 우승후보국들을 줄줄이 무너뜨리면서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에 진입했다. 도대체 히딩크 감독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단 말인가.
가장 간단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유럽 팀과 치룬 과거 게임과 이번 게임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과거보다 체력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전 후반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앞에 유럽의 강팀들은 차례차례 무릎을 꿇고 말았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가장 확실하게 변화시킨 것은 체력의 향상이다.
태극전사 체력향상 큰 변화
체력의 향상, 어찌 보면 축구의 전문가가 아닌 누구라도 내 놓을 수 있는 단순하고 명쾌한 해법이다. 해법은 간단하지만 그 실천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체력의 향상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필자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매주 등산을 해온 터라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봉우리 하나 오를 때마다 더도 말고 지난주보다 1분만 단축하자고 모지게 다짐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지난주도 이미 베스트를 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이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내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숨은 목까지 차오르는데 이것은 지난주에도 똑같이 경험한 일이다. 그러나 체력의 향상은 이때부터다.
이러한 체력의 한계 상황을 뛰어 넘어 단 몇 초라도 단축하면 비로소 눈꼽만큼의 체력향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은 이 상황에서 주저 않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지난 주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외면받는 대학 심화교육과정
운동의 기본이 체력이듯이 학문의 기본은 지력이다. 많은 학생들이 지력향상을 통한 자신의 경쟁력 제고를 바라면서도 막상 그것을 얻기 위해 치뤄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그 과정을 통해 수강생의 지력을 몇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체력향상과 마찬가지로 지력향상에도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강의 한 시간 듣고 나가면서 "오늘 강의 편안하게 부담없이 잘 들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력향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강의를 수강한 것이다.
등산에 비유한다면 땀도 나기 전에 숨도 차기 전에 주저 앉아버린 것과 다름없다. 편안하고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강의라면 구태여 수강할 필요가 없다. 소설책과 신문은 혼자 읽어도 충분하다. 체력향상 때와 마찬가지로 지력을 한 단계 올리는 강의는 강의 끝난 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피곤함을 느껴야 정상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그렇게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면 구태여 대학의 강의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힘들고 어렵지만 교수가 옆에서 도와주고 안내하기 때문에 혼자 할 때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많은 대학에서 고학년 심화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외면해 버린다. 보다 깊이 있는 과정을 이수하여 몇 단계 향상해야할 이때 쉽고 부담 없는 과목의 강의실로 전전한다.
당장은 편하고 좋을지 모르나 다시없는 지력향상의 기회를 스스로 외면해 버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인식해야 한다. 히딩크의 기적에만 열광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주는 명백한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남천현(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겸직교수, 대한상공회의소 ERP경영지원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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